내가 갖고 싶었던 엄마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그저 잘 먹고 씩씩한 것만으로도 마냥 예뻤던 때가 지나고 아이들이 방에서 문 닫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시기가 왔을 때, 나는 아이들이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또 아이들에게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도 가장 먼저 달려와 소식을 전하고픈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진 아이들과는 집안 곳곳에 따로 있더라도 그냥 한집에 있는 것으로도 마음 따뜻한 사이가 되었으면 했어요. 엄마는 아이가 공부 안 하고 자거나 놀고 있을까 봐 불안해하지 않고, 아이들은 엄마가 감시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집이요.
각각의 공간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다 식사시간이면 같이 밥을 먹으며 공부 얘기가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때로는 실없는 농담으로 웃으며 수다 떠는 가족이 되고 싶었어요.
‘따로 또 같이’가 우리 가족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같이 있으면 편하고 행복하지만 각자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각자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하는 모습이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 많아요.
특히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본인들도 쉽게 상처받지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날 비웃고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날. 모든 일이 뒤얽혀버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숨 쉴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들 말이에요. 학교에서 망신당했다고 생각되거나 친구가 내 약점을 무심코 얘기해서 다른 친구들이 웃을 때는 정말 그 자리에서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지요. 거기다 그런 일들이 계속될 것만 같은 미칠 것 같은 불안감. 그 속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고 여겨질 때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비쩍 말라 늘 반 3대 비실이에 뽑히던 중학교 시절에 난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데도 가끔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냥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했어요. 무거운 책가방과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물먹은 솜처럼 온몸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머릿속에는 생각이 넘쳐서 나를 집어삼키려고 하고 잠을 자도 피곤하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어요. 수업시간에는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어느새 졸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했지요. 집에 오면 숙제를 펼치지도 않고 책가방을 방구석에 던져둔 채 다른 책을 읽었어요.
즐거운 일은 없고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극도로 피곤한 날들만 내 앞에 남아있다면 나는 더 살 이유가 있을까? 사 남매 중 셋째, 아들 하나 딸 셋 중 둘째 딸, 어떻게 해도 그냥 중간에 낀 존재감 없는 내가 죽으면 누가 슬퍼할까? 곧 모두의 기억 속에서 난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지겠지. 아마 우리 집 강아지 멍순이가 제일 슬퍼하겠지. 정말 슬픈 날에는 이런 생각이 날 더 밑바닥까지 끌어내려 더 스스로를 아프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다정한 엄마
마음이 많이 아픈 날, 엄마 얼굴을 보고 그냥 편하게 마음껏 울었으면 했어요.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엄마 얼굴을 떠올리며 더 행복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으면 했어요.
실수나 실패로 아이가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 내 아이의 이야기를 온전히 귀 기울여 들어주고 마음을 이해해 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아이와 나는 다른 존재이니 아이를 100% 이해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아이가 힘들 때 엄마를 찾아와 자기 속내를 편하게 터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어요. 내가 아이에게 아무 말도 못 해 줄 수도 있겠지만 아이는 그냥 다 털어놓았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아이의 실수나 실패를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아이는 다시 기력을 회복하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성적 스트레스, 왕따, SNS 등으로 스트레스받을 일이 더 많은 요즘 어떤 심각한 이유에서든,
갑자기 욱하는 울분을 참을 수 없어서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되는 순간, 날 이토록 사랑하는 우리 엄마 얼굴이 떠올라서 엄마가 나 없으면 못 견딜 것 같아서 엄마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엄마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세상이 살 만하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아이가 50점 맞다가 70점 받아서 기분이 좋은 날 아이를 마냥 축하해 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그냥 그 순간 내 아이가 노력해서 이룬 성취를 있는 그대로 축하해 주고 자랑스러워해 주는 엄마요.
일등은 누구니? 네 친구 누구는 몇 점 받았니? 다음에는 90점 받아야지 하고 아이가 그 순간에 이룬 성취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엄마가 아니고요.
학교에서는 100점 받은 아이만 주목을 받겠지만 엄마인 내게는 몇 점을 받던 내 아이가 제일 소중하니까요.
사람들은 눈 감을 때까지 부모 노릇이 계속된다고 하지만 제 생각에 부모 노릇은 내 아이가 살아있는 한 끝나지 않는 것 같아요.
엄마는 세상에 없더라도 아이들 기억 속에 남아서 아이를 위로해 줄 수도 행복한 기억을 소환하게 해 줄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내 생각으로 내 아이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엄마로서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