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둘에 딸 하나, 세 아이를 키우면서 제일 힘들었던 때는 초등 5학년에서 중학교 시절이었다. 사춘기여서 그런지 아니면 학원이나 성적 같은 스트레스받을 요인이 많아져서인지 그 또래 아이들은 집단으로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며칠 전 집 근처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교에서 자살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닌 학교는 아니지만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학교라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녔던 10여 년 전에도 그 이전과 비교해 보면 교권이 추락하여 문제학생과 갑질학부모가 통제가 안 되는 느낌이었는데 현직교사들이 그 때까지만 해도 요즘 같지 않았다고 말한다니 현실이 얼마나 혹독한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나의 두 번째 세 번째 아이들은 딸과 아들인 쌍둥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개별 학급에 배정되어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딸아이 학급은 그야말로 통제불능이었다. 덩치 큰 두어 명의 남학생이 반 전체를 매일 뒤집어 놓았다. 그 당시는 지금 정도로 교사의 지도가 불가능하지 않았지만 문제아들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체격 작은 남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여학생들에게 막말을 내뱉었다. 담임과 피해학생 부모들은 가해자 부모에게 연락을 했지만 거의 연결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의도적으로 연락을 받지 않았다. 큰 사건이 없던 학급에 있었던 아들에 비해 딸아이는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폭력적인 문제아들과의 전쟁에 지친 담임은 2학기쯤부터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교실은 문제아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가장 최악의 학교는 중학교였다고 얘기한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기라고.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았고 학폭위도 자주 열렸다. 학부모들의 내용증명은 사흘이 멀다 하고 학교로 날아왔다.
어떤 학급에서는 세 명의 남학생을 제외하고는 모든 남학생이 한 여학생에 대한 가해자로 판명되어 모두 전반 되는 일도 있었다.
내 자식이 맞고 다닐 바에는 때리고 오는 것이 낫다는 부모들이 있지만 나는 내 아이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라도 모든 아이들이 쉽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학폭사건이 크게 터진 학급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학급 아이들은 모두 상담실로 불려 가 조사를 받았다.
"너도 가담한 건 아닌지"
"폭력현장에서 목격한 걸 자세히 얘기해 봐"
요즘은 덩치 큰 초등생에게 맞는 교사들이 많다고 한다. 훈육을 목적으로 한 체벌을 부모에게 받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정서에 좋지 않다며 때리지 말라고 하는데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제자에게 폭행당한 교사의 치욕감과 무력감은 인간을 어디까지 비참하게 만들까?
학생인권이 지켜져야 한다고 해서 교권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헌법 전문에 나와 있듯이 우리 국민은 모두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
학생, 선생님, 학부모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고 기본권은 똑같이 보장받아야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책임과 의무를 지키지 않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부모도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대학생 자녀의 성적을 자녀의 동의 없이 확인할 수 없는 세상이다. 학비를 대고 용돈을 주며 부양하는 부모도 권리가 없는데 교사의 개인정보가 학부모에게 노출되어 업무시간 외에도 폭언에 시달리는데도 법적인 보호가 되지 않는다는 현실에 놀랐다.
선생님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학부모와의 통화나 접촉은 근무시간 내에서만 가능하게 해야 한다.
친구를 때리고 교실에서 난동을 피우는 학생을 제지하려고 손목만 잡아도 아동학대라서 교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 폭력현장에 노출되어 공포감을 느끼고 무력감을 배우는 다른 선량한 학생들이 심각한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폭력적인 영화도 볼 수 없는 나이의 아이들이 눈앞에서 폭행 장면을 목격하고, 폭력을 당하는 쪽에서 대처할 수 없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 자란다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걱정스럽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갖게 되거나 폭력에 무감각한 폭력적인 성인으로 자라게 되지 않을까?
정서적인 문제 혹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보호되어야 하는 것 맞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이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통합교육을 실시하려면 제대로 된 교육이 될 수 있게 시스템을 먼저 갖췄어야 했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 생활을 하려면 미국처럼 학급마다 보조교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부모의 적극적인 자원봉사도 있어야 한다.
부모도 통제하기 힘든 아이를 20명이 넘는 교실에 넣어놓고 선생님이 다 알아서 하길 바란다는 걸 말이 안 된다. 선생님이 그리 전지전능하다고 여긴다면 선생님에게 많은 권한을 주어야지 훈육할 수 없게 손발을 묶어놓고 비난과 책임만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초임교사가 학교에서 사망한 서이초등학교의 경우 한 반 학생 수가 30명이 넘는다.
어린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을 보고 배우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문제상황이 발생했을 때 교사가 즉시 적극적인 차단과 조치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불가능한 현실이라면 교내에 경찰이나 전문가가 상주하여 즉시 문제학생을 분리하고 대응해야 한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되는 권리는 정당하지 않다.
학생인권과 아동학대방지라는 명목으로 선생님들과 다른 학생들의 기본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방치했다면 교육당국은 마땅히 사과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다.
갈수록 비상식적이면서 목소리 큰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슬프다.
요즘 젊은 부모들이 가정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고 제 자식만 감싸는 잘못된 태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비상식적인 사람보다는 상식적인 사람이 더 많다고 믿는다.
대다수의 좋은 사람들이 계속 좋은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모두가 관심을 기울일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