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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 Jun 18. 2022

너의 통통한 팔목이 너무 귀여워

엄마는 너는 너무 예쁜데 육아가 힘들어 어떡하지

한동안 나의 세계에 빠져서 아이를 조금 잊고 지냈다. 물론 내 생활의 대부분의 방향은 아이에게 맞춰져 있긴 하지만 최대한 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문득 새벽에 속이 더부룩해서 눈이 떠졌는데,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의 팔목이 너무 귀여웠다.


살짝 만지는 나의 손에 무의식적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 뭔가 모를 뭉클한 느낌과 함께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아이는 인생의 전부가 나로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와 남편은 술을 정말 좋아한다. 대부분의 저녁을 술과 함께 그날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잊고자한다. 그런데 가끔 남편의 회식자리가 있는 날은 혼자 술을 먹고 오는데 그 냄새가 정말이지 지독하다. 그런데 나의 아이는 우리의 술자리에서 항상 그 지독함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독하다는 느낌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져있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회사일과 더불어 나의 자기계발이자 앞으로의 삶을 위한 여러 일들을 하고 있다. 사실 매 시간을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시간에 나의 머릿속에는 나의 일들로 가득차있다. 그런지 1년정도 된 것 같다. 사실 이게 더 재미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휴직 1년을 쓰는 동안 나는 정말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다. 온전히 아이를 위해 24시간을 쏟아야하는게 너무나도 불편했다. 앞으로의 인생에도 이런 시간들만 가득차게 된다는게 너무도 우울했다. 나의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을 2년을 쓸 수 있지만 딱 1년을 채우고 회사로 도망쳐버렸다.


아이의 등하원을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아이를 정말 잘 봐주신다. 그덕에 나는 육아에 들어가는 많은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회사 외의 “나의 일” 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끔 이모님이 이런 얘기를 하실 때가 있다. “지금이 정말 예쁠 시기인데 일하는 엄마들은 그 모습을 온전히 보지 못해서 너무 안타깝다” 본인의 딸도 나와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얘기해시는 게 느껴진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이 콕콕 느껴진다. 사실 회사를 꼭 다녀야 하는 건 아닌데, 안그러면 내가 너무 불행할 거같아서 그냥 회사에서 옭아매져 있는 시간을 핑계로 육아에서 탈출하고 싶은 거라고.


아이는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다. 인생에서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온전히 나를 필요로하는 존재가 나의 인생을 엄청나게 바꿔버렸다는 사실은 여전히 불편하다. 아이에겐 정말 미안하게도 우리 남편도 나와 너무 비슷한 성향이다. 애초에 각자의 인생이 제일 중요한 제멋대로인 두 남녀가 만나 결혼을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아이가 우리를 부모로 만나 태어난 건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남편의 누나인 형님은 아이들을 위해 정말 모든 것을 쏟는 편인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켠에선 나의 아이에게 더 미안하다.


부업으로 시작한 일들은 사실 아이를 위해 시작했었다. 정말로 제대로된 성격이 형성될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에 내가 옆에 있어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 년쯤 부업을 위해 새로운 일들을 하다보니 너무 재미있다. 그래서 그 일을 하는 것 자체에 더 집중하고 있는 내모습을 발견했다.


‘아이가 진정으로 엄마가 필요한 시기에 같이 있어주기 위해 준비하는거야. 퇴사해도 돈버는 엄마가 되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수 있어야하니까 지금만 조금 참아줘.’ 순간 아차차. 내가 우리 친정엄마애게서 제일 싫어하던 모습을 내가 그대로 내아이에게 하고 있었다.


10살 때부터 엄마가 일하러 간 시간에 학원을 가고 밥을 차려 동생과 먹으며 엄마의 기다림의 부탁을 받았던 어린날. 엄마는 나를 지원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했지만, 막상 내가 가고싶었던 학원은 “지금은 안되. 참아” 라고 했던 시간들. 결국엔 배우고 싶었던 것들도 다 참아야했던 씁쓸했언 감정들. 내 아이에게 그대로 내가 우리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미안하고, 그럼에도 내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도 미안해진다. 여전히 나는 아이는 사랑하지만 육아는 힘든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다. 아이가 크면 또 이런 순간을 후회하며 미안함을 느낄런지.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언제 철이 들런지. 속이 더부룩해서 새벽에 눈이 떠진줄 알았더니 마음이 더부룩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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