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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 Jun 22. 2022

남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법

나는 아무래도 모르겠는데요...

어렸을 적부터 혼자서 뭔가를 해내기를 좋아했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지원 아래에서 자랐다. 나와 결혼할 시점에도 직장생활을 7년이나 했는데 모은 돈은 없었고, 한달 카드값만 2~300만원이 나오던 사람이었다. 나 역시도 모아둔 돈은 거의 없었기에 경제상황을 제대로 묻지 않고 결혼한 것이 화가 되었을까. 결혼을 서둘러 하는 동안 마음이 조급했던 남편은 주식을 무리하게 했고, 내가 모르는 새 마이너스통장에 퇴직금대출까지 받아 쓴 것이었다. 나는 그 상황을 결혼 1년이 지나고 아이가 태어나고서야 알았다.


이상한 책임감과 함께 부모님께 알리지 않고,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상황을 모면해주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조금만 기다려주면 회복할 수 있다는 남편의 말과 남편의 평소 깔끔하고 체계적인 행동을 보여줬던 것을 믿고싶었을까 상황을 채근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도움을 거의 받아 결혼해서 우리는 참으로도 안일했던 것 같다. 자산시장이 녹아내리는 지금까지도 그 주식은 마이너스인 채로 우리의 자산에 한몫을 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대출은 감당할 정도의 여력이 되었다.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이 있어서인지 먹고살지 못할 만큼 부족하진 않았다. 그 사건 이후로 남편은 대부분의 월급을 나에게 이체한다. 가족에게 쓰는 비용 이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득문득 불안한 마음이 든다. 여전히 나는 남편의 주식계좌에 얼마나 돈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한다.


명확하게 우리의 생활에 대한 공유를 하고 싶은데 남편은 참으로도 그럴 마음이 없다. 본인이 불리한 이야기가 나오면 화를 툭 내기 일쑤다. "내가 미안하고 잘못한게 백번 맞는데, 왜 자꾸 나를 재촉해"라고 한다. 몇 번의 도돌이표가 되면서 나는 이제 주식과 관련된 질문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이사람과 헤어질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내가 책임져야지'라는 이상한 책임감을 가진 나의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득문득 화가 차오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미래에 대해 계산해보고 꿈꾸며 함께 목표를 향해가는 결혼생활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회피형 인간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마마보이였다. 언제든 내가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이 해결해줄 거란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정말이지 화가 치밀어오르곤 한다.


티비에 나오는 나와 1도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은 잘도 한다. 회사에서도 관리직으로 대우만 받다 보니 자존심 상하는 경험이 정말이지 거의 없다시피 한가보다. 회사일이 끝나고 나는 우리의 미래, 우리 가족의 미래, 아이 교육을 이야기하고 싶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두번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하지만 몇 번 시도 끝에 이런 이야기의 끝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싸움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나 역시도 그의 어머니처럼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불편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이 변화의 나쁜 점은 그러다가 감정이 터지면 객관적인 상황보다 서로의 감정에만 몰두해서 싸움이 커져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A인데, A를 말하는 나의 말투가 거슬린다고 하는 식이다. 나는 도대체 그의 자존심 어느 구석을 긁었던 것일까.


이런 식의 내가족을 흉보는 글은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들어 가끔 치밀어오르는 갑갑한 마음속의 돌덩어리들을 나는 잘 삭이는 방법을 모르겠다. 초반에는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나의 감정 쓰레기통을 친구들에게 떠맡기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결혼도 안한 친구들에게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로 민폐였다.


나는 오늘도 계속해서 부업을 한다. 글쓰기로 부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에 감사하다. 그나마 나의 탈출구가 글을 쓰는 것이라 너무도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폭발해버려 어디론가 가있을지도 모르겠다. 팀이 바뀌었다며 일이 힘들다며 투덜거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모든 것이 치밀어오르는 느낌이 든다.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나는 정성스레 그에게 말할 용기가 없다. 그저 나 혼자 이렇게 털어내고 마는 게 내가 찾은 회피의 방법이다.


퇴근하자마자 TV속의 세상으로 회피해버리는 남편처럼. 나름대로 '부업'이라며 글쓰기로 회피해버리는 나도 어쩌면 똑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원래 비슷한 모습이 보이면 더 꼴보기 싫은 법이다. 나의 아이는 이렇게나 현실도피적인 부모 밑에서 어떻게 자랄지 가끔 걱정이 되곤 한다. 


두서 없이 수다를 떠는 아줌마의 글을 읽게된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저좀 알려주세요. 저도 모르게 자꾸 마음이 멀어지는 위험한 생각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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