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새 May 17. 2022

글쓰기가 좋아진 꽤 오래된 이유

이제까지 몰랐었던 나의 찐 취미

내가 글을 쓰기 좋아하게 된 시점은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이었다. 매일 일기를 쓰는 숙제가 있었고, 대다수의 아이들처럼 나도 참 귀찮아했었다. 항상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매일을 기록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은 막 사춘기가 되던 아이들에게 무시를 받곤 하던 아저씨 선생님이었다. 왜 그랬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약간은 고집스럽고 재미없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종례 후 일기장을 돌려받는 시간에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러 일으켰다.


‘하.. 대충 쓴 일기로 혼나겠구나.’ 그 전날 일기장에 대충 썼던 일기가 떠올랐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집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뭔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배가 고파서 이것저것 꺼내먹고 학원을 갔다왔다. 혼자 집에 들어가는 건 기분이 별로다”


별 일 없이 짧게 쓴 일기로 혼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일으켰던 선생님이 내 일기를 읽어봐도 되냐고 물어봤다. 잘썼다고. 응?


“일기는 꼭 특별한 일만 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오늘 느낀 감정만 써도 괜찮아. 길게 쓰지 않아도, 특별한 일이 없어도 쓰는게 좋아”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순간은 아직도 내 머릿속을 맴돈다. 그 이후로 나는 일기로 칭찬받은 적은 없었지만 일기를 쓰는 부담이 덜해졌다.




대학교를 다니던 어느 시절. 어느 교양수업에서 연극을 보고 에세이를 쓰는 과제가 있었다. 솔직히 나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연극이었다. 하지만 A4용지 5장이란 분량이 정해져있었다. 줄간격을 1.6정도로 조정하는 꼼수로도 채우기가 꽤나 힘들었다.


그 때 나의 초등학교 일기가 생각났다. “그래 뭐 내 감정이나 쓰자” 연극이 재미없었단 내용만 빼고 느꼈던 감정을 다 썼다. 그 연극의 연출물을 보고 느낀 색, 표현을 내마음대로 분석했다. ‘바닥에 있던 물을 연출한 것은 주인공의 감정과 닮았다’ 이런식? 왜냐면 연극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안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칭찬받았다. 교양수업을 진행하던 교수님은 국문학과 교수님인데, 나의 에세이를 대표 에세이로 소개했다. 자신만의 분석을 곁들였다나 뭐라나. 나는 교양수업에서 A+학점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글쓰기는 나의 짧은 인생에 많은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주었다. 대학교도 논술 우수자 전형으로 입학했고, 취업할 때에도 자기소개서 만큼은 기똥차게 썼다. (이걸로 용돈벌이도 좀 했다)


내가 흔들리고 힘들때. 나를 위로해준건 글쓰기였다. 누군가를 욕하고싶을 때 감정쓰레기통이 되어준 것도 글이었다. 글쓰기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게 얼마 되지 않았을 뿐이다.


나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게 좋은 이유는 고칠 수 있어서다. 특히 요즘같이 핸드폰 메모장이나 키보드로 글을 썼다 지웠다 할 수 있는건 참 좋다. 나는 엄청나게 악필이기도 해서 디지털 세상에 글을 쓰는게 훨씬 더 기분이 좋다.




작년에 우연히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나의 힘든 상황을 남한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시기는 인간관계에 꽤나 지쳐있었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무작정 응원해주길 바랬기 때문이었다.


블로그라는 걸 하게 되면서 ‘정보성 글쓰기’ 위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글쓰기가 왠지 살짝 부끄러워졌고, 내 감정은 내 일기장에만 쓰곤 했다.


근데 괜히 혼자서는 치유가 안되는 느낌. 누군가가 엄청 미워질 때 친구랑 한바탕 수다를 떨고나면 은근 스트레스가 풀리는데, 나만 안고있으면 힘든느낌이 들었다. 브런치라는 채널은 아무도 안보겠지만, 또 누군가는 봐주는 느낌이라 에라모르겠다 퇴근길에 쓱 글을 썼다.




오랜만에 글을 써서 열심히 좀 써달라고 그런걸까.내 글이 다음 메인에 걸렸다. “5년차 대기업 직장인의 후회” 하루에 몇 만명이 봤고, 구독자가 갑자기 100명 넘게 늘었다. 괜히 뭉클해졌다. 나름 감정쓰레기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는구나.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인스타그램의 사진, 블로그의 짧은 텍스트들, 유튜브의 영상들로 휘황찬란한 온라인 세상이다. 그럼에도 텍스트가 가득한 브런치가 살아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글을 좋아한다는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디지털인간인척 미디어를 좋아하는척 이제까지 숨겨왔지만, 글이 좋다.


글을 쓴다는 것. 이렇게나 재미있는 일이었네!



작가의 이전글 회사에서의 빡치는 상황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