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냉혈한이 아닙니다
잘 자다가도 불현듯 새벽녘에 깨어 옆자리를 쓸어볼 때가 있다. 한 사람이 눕기엔 넓고 둘이 어깨를 맞붙이기엔 좁은 침상 위에, 어느 날은 사람이 있다가도 대체로 없다.
사람의 몸이 대체로 그렇겠지만 뜨뜻미지근한 36.5도의 온도는 이불 속에 갇혀 아침이면 맞붙은 살갗을 따끈하게 익힌다. 푹 익어 말랑거리는 살결에 괜히 이마를 댔다가, 나는 당신과 그럴 사이가 아니니 벗어나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떠올리며 가까이했던 몸을 물렸다. 어제 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고백했고 나는 당신을 에둘러 거절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좁다란 침상에 나란히 누워 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어 저절로 눈이 뜨이는 순간에도 약속이라도 한 듯 누구도 먼저 침상을 벗어나지 않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아침 인사를 나눴다.
당신이 닿았다 간 살갗이 욱신거린다. 나는 미지근한 온도에도 화상을 입는 모양이다.
해가 중천에 뜬 오후에 느지막한 식사를 챙기고 미련이 눅눅하게 맴도는 인사와 함께 당신은 내 집을 나섰다.
당신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 뒤에 살과 살이 맞닿았던 감각이 남은 팔뚝을 쓸었다. 겁이 많고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예민한 성격은 가감 없이 당신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당신은 나에게 화내지 않았다. 내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우스갯소리처럼 희망고문하지 말라고 장난스레 말하면서도 내가 손을 내밀면 맞잡았고 만나자고 하면 만나주었다. 기이할 정도로 거리감 있는 만남은 연속되는 일 없이 의뭉스러웠다. 당신은 이게 괜찮은 걸까. 나는 지금도 당신과 메시지를 나누면 전화하며 밤을 새우고 싶어지는데. 그러면서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절하는 마음은 분명 당신에게 상처가 될 텐데.
괜히 말 거리를 만들어 연락을 걸었다. 웬일로 먼저 연락을 다 주냐고 물으며 웃음기를 뛴 목소리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당신을.
좋아하는 걸까. 너무 오래 시궁창 같은 곳을 떠돌았던 나머지 마음은 해체되지 못하고 추잡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습관의 호불호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수화기 너머로 재잘거리는 당신의 목소리 위로 남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아무것도 모르고 떠드는 음성을 배경음 삼아 도시의 싸늘함을 눈으로 흘겼다.
너 어쩌려고 이래 도대체. 이러다 정말로 놓치는 날에 아쉽지 않을 자신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는 사이 가을이 슬금슬금 자리를 떠날 기색을 보인다. 벌써 두 계절이나 지나간 지금, 나는 당신을 놓칠 준비를 시작했다. 어차피 내 자리가 아니라고 수없이 여닫았던 마음에 기어이 빗장을 만들어 달았다. 겨울의 나는 누구보다 추하고, 당신은 겨울을 좋아하니까. 시답잖은 이유를 만들어 우리가 안 되는 이유를 빗장 위에 줄줄이 써 붙였다. 오늘도 당신에게 온 연락에 시시덕거리며 답장하겠지만. 미리 준비를 했다. 나는 나를 가엾게 여기지 않는다. 수행해야 할 역할을 정했을 뿐이다. 기만은 죄가 될까.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내보내려는 마음은 기만인가.
나는 체온이 낮은 편이다. 겨울이 되면 특히나 사람 손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아지는 손발은 내게는 괜찮지만 체온이 높은 당신에게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당신이 누웠다 간 자리를 가만히 쓸었다. 공기가 금세 차가워지는 날씨에 차게 식은 이부자리는 감히 당신이 머물다 간 자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보인다.
나는 아주 느리게, 빗장을 걸었다.
빗장 위로 흘려쓴 다짐들이 펄럭거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