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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린 일기 Nov 16. 2020

(#075) 2018. 9. 23

Belorado 24km

우리는 결국 프랑스와 스페인 경계 산맥에서 출발해 바다가 보이는 땅끝까지 걸어가는 여행 중이다. 가는 동안 주마다 특색 있는 안내판을 비교해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간단하게는 큰 도시별로 우리가 얼마쯤 왔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아니,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를 제외하고 팜플로나, 부르고스며 레온이라는 도시를 알게 될 일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이른 아침 출발하면 만나는 하늘. 우리 모두 유니콘 스카이라고 부르는 광경이며 매일 모든 풍경이지만 볼때마다 항상 설렜다. (c)밀린 일기



힘들 때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다. 사위가 어슴푸레하게 밝아오자 감성적인 노래를 선택했다. 이별의 그늘이라는 곡을 영어 개사한 보사노바 풍 It was in Shiraz. 사실 영어 가사라 기억나는 부분이 몇 없어 허밍으로 넘기는 부분이 더 많았지만 아침 이슬을 밟으며 걷기에는 그냥저냥 어울렸다. 미시는 목소리가 예쁘다고 칭찬해줬다.

조금 걷다 커피 트럭을 만났다. 이른 아침에 간단한 아침을 챙겨 먹고 목적지에 가는 중간 즈음엔 항상 커피 브레이크를 갖는다. 카페 콘 레체 타임이라고 애칭처럼 부르는데 여덟 시나 아홉 시쯤 아침 바람에 조금 차가워진 손끝을 데우는 한잔의 온기는 따스하기 그지없다.

먼저 떠난 이들도 커피 브레이크 구간에서 한번 쯤 다시 만난다. 나는 보통 카페 콘 레체 아니면 신선한 오렌지 주스 아니면 둘다 선택했다. (c)밀린 일기



까미노에서 오랜만에 아이리쉬 세명을 만났다. 셋이 친구였는데 커피 트럭에서 다시 만났고 미시와 나는 셋의 직업이 군인인걸 맞췄다. 어떻게 알았냐며 놀라워했지만 바싹 깎은 머리와 각 잡힌 걸음걸이는 신분증이나 다름없었고 우리는 너무 뻔하지 않냐며 함께 웃었다.


오늘은 고속도로 구간이 길어서 유독 힘들었다. 부르고스까지 가는 여정을 적절히 쪼개서 가는 중인데 왼쪽 무릎이 계속 걸린다. 짜증이 차오르던 와중 길가에 핀 해바라기를 만났다. 까미노 초입부터 종종 만나던 해바라기 밭이다. 어떤 성인의 꽃으로 유명한 해바라기는 까미노에서 발견한 매력 중 하나다. 어떤 순례자들은 가끔 해바라기에 웃는 표식을 남겨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다.

우리가 스마일리 플라워라고 부르곤 했던 해바라기. 미시는 길가에 핀 해바라기가 걱정된다며 들고 있던 물을 꽃에게 나눠 주었다. (c)밀린 일기

 


벨로라도에 가는 길에 유미를 만났다. 도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 있는 작은 섬마을에서 살고 있고 결혼 전 홀로 떠난 마지막 휴가로 까미노를 선택했다고 한다. 온전히 혼자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잘한 선택이라고 함께 응원해줬다. 아는 일본어를 긁어모아 간단히 대화를 나누다 숙소에 도착했는데 처음 간 곳에 자리가 없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비와 루이스도 벨로라도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서로 전화로 연락할 길이 없으니 몇 번 엇갈렸다. 기대하지 않은 인연을 만나는 일은 신기하고도 즐겁다.

미시는 침대벼룩에 물린 경험때문에 침구를 꼼꼼히 살펴보며 청결도를 점검했다. 나무 뼈대와 다르게 내부는 신식으로 깔끔하게 꾸며져 좋았던 알베르게. (c)밀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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