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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지 Aug 28. 2023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브런치 작가 데뷔를 홀로 축하해 봅니다.

뭐가 좋아?
돈이 돼?
그런데 왜 해?


앞서 작가가 되었다고 좋아하던 지인에게 나는 대뜸 브런치가 돈이 되는지를 물었다. 30년을 돈에 초월한 사람처럼 살아왔는데, 40을 앞둔 나는 온통 '생산성'에 초점을 맞춰 어떤 일을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생산성을 판단하는 가장 큰 기준은 '돈'과 '시간'이다. 투자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 있어 돈과 시간은 황금 같은 것이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와중에 문득 작가 신청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저기 난잡하게 흩어져 있는 페르소나를 하나로 모아 나만의 책장을 만들고 가꾸고 싶어졌다. 투자자로, 직장인으로, 엄마로, 블로거로, 창업가로 마구 퍼져 있는 인격체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면서 다중인격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슬럼프를 겪고 있는 참이었다.


블로그에 쟁여 두었던 몇 편의 글을 브런치에 옮긴 후 작가 신청을 했다. 여러 페르소나를 지니고 살아온 만큼 누구보다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며 소개글을 써 내려갔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카페의 레전드글도 링크로 달았다. 이 정도면 나는 브런치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라고 속으로 되뇌며 신청 완료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처참했다. 

'아니, 왜?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다는데 왜 나를 거부하는 거지?'

비로소 어떻게 하면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을지를 찾아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몇 개의 글들을 읽으며 자청의 '역행자'에 나오는 공략집의 개념이 브런치에도 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들이 이야기하는 공통점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앞으로 쓰게 될 글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략을 변경했다. 내가 올릴 글의 목차를 쭉 써서 신청란에 적었다. 내가 얼마나 다양한 소재를 가진 사람인지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가진 소재들 중 한 가지를 목차로 구성해서 적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렸다. 두근두근. 



생각보다 훨씬 기뻤다. 그리고 머릿속이 온통 브런치로 가득 찼다. 브런치를 돌아다니며 발간된 브런치북들을 읽었다. 동시에 써둔 글을 열심히 브런치 서랍으로 옮기며 써 내려갔다. 매거진으로 발행하고 나중에 책으로 엮으면 된다는 사실도 몰랐다. 나는 그저 빨리 내 글을 브런치북으로 발간하고 싶었다.



그렇게 오늘, 나의 첫 브런치북이 세상에 나왔다. 나는 아침에 눈 뜨던 순간부터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고, 지금도 하루 종일 이 흥분된 기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에 비해 나의 일상은 너무나 고요하다. 내가 작가가 되어 브런치북을 발간한 것과 상관없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나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다. '설렘'이라는 단어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


과거에 지인에게 던졌던 질문에 오늘의 나는 이렇게 답해보려고 한다.


재밌어.
돈이 안 되어도 행복해.
즐거우니까 계속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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