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리브라운 Oct 11. 2020

기업을 사유화하는 님들

국내 대기업의 잘못된 기업문화 유형 (7)

[사진 출처: 영화 '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





Question


대기업 신입 사원입니다. 저희 팀장님은 한 달에 한 번씩 팀원들과 당구를 치는 모임을 갖습니다. 문제는 팀원 중에는 당구를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팀장님은 당구를 안 치는 팀원들은 빼놓고 당구를 좋아하는 팀원들만 데리고 당구를 치러 가십니다. 물론 비용은 팀 경비로 처리하시죠.


팀장님은 "당구를 모르면 진정한 회사원이라고 할 수 없다"라며 모든 팀원들에게 당구를 배울 것을 강권하십니다. 그래서 당구를 잘 못 치는 저희들은 팀장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당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팀 모임에 매번 왕따 될 수는 없잖아요. 


하아~! 정말 이렇게까지 하면서 회사를 다녀야 하나요?    





Answer


당구를 친다고요? 이상하네요. 요즘은 골프를 많이 치는데. 제 지인은 회사에서 "골프 핸디캡을 싱글로 만들지 않으면 임원 시켜주지 않겠다"라는 얘기도 들었다는데. 어쨌든... 골프나 당구나 마찬가지죠.


회사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처럼 개인의 취미생활을 팀원분들께 강요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날 수 있죠.


사실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합니다. 매주 조기 축구 올스타 전을 여시는 지점장님. 가라오케에서 직원들 가무 컴피티션을 즐기시는 사장님. 자기가 술 좋아한다고 술 잘 마시는 직원들 편애하는 부장님 등등.


저는 이러한 분들을 '기사님'이라고 부릅니다. '기업을 사유화하는 님들'의 준말이죠.


'기사님'들이 왜 문제냐고요? 당연히 문제죠. 기업은 자기 것이 아닌데 마치 자기 것인 양 행동하니까 문제죠. 그리고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그렇게 자기 것으로 만들면 어디선가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되니까요. 


그런데 사실 많은 분들이 기업을 사유화하는 행동에 대해서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그런 식으로 행동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럼 기사님에는 과연 어떤 유형이 있을까요?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앞서 언급하신 사례는 개인 취미생활을 즐기는데 기업을 이용하는 부류에 속하죠. 


자, 그럼 그 외에도 어떤 사례가 있는지 '바늘 도둑'부터 '소 도둑'까지 단계 별로 한번 살펴볼까요?




기업을 사유화하는 다양한 사례


1단계. 회사 경비로 술 먹고 노래방 가고 골프 치면서 사내 인맥 관리하기 (바늘 도둑)


뭐, 회사 돈으로 술 먹고 노래방 가고 골프 칠 수도 있죠. 그것 갖고 욕할 수는 없잖아요? 팀 회식하다 보면 술 먹고 노래방 가는 경우도 가끔씩은 있으니까요. 또 영업하다 보면 그런 게 필요할 때도 있고요. 물론 '김영란법'에 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이죠.


문제는 술 먹고 노래방 가고 골프를 치는 게 회사를 위한 게 아니라 본인의 사내 인맥 관리를 위해서라는 것이죠. 팀장이 자기를 잘 따르는 후배들 술 사주면서 그걸 경비 처리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외부 영업을 위한 게 아니라 사내 친목을 다지기 위해 옆 팀장이랑 스크린 골프 치러 갔는데 또 법카로 쓱삭.


물론 사내 인맥을 관리하는 게 다 회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억지스러운 데가 없지 않죠. 그런 논리라면 퇴근 후 와인바에 들러서 스트레스 푸는 것도 회사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주말에 외식하면서 부부관계를 화목하게 하는 것도 다 회사를 위한 것이고요. 실제로 가족이랑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서 '벤치마킹'이란 명목으로 경비 처리하시는 분도 봤습니다.

 

이건 그냥 팀 비 삥땅입니다. 그만큼 회사와 다른 팀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줄어들게 됩니다. 본인 사내 인맥을 다지는 게 목적이라면 당당하게 본인 카드로 긁으세요.


너무 야박하다고요? 아닙니다. 팀 비 아껴서 팀원들 한우 사주세요. 맨날 삼겹살에 목살만 사주지 말고요. 


스트레스 풀기 위한 음주가무는 개인 카드로. [사진 출처: 영화 '더킹']



2단계. 법카로 지인들에게 인심 팍팍


대학 동기 중에는 40대 초반에 임원 단 친구들이 몇 있는데요. 동기들 만나서 식사할 때에는 꼭 법카로 긁더라고요.


물론 회사 일로 만났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동기들한테 회사 일 부탁하면서 치킨에 맥주 한잔 정도는 사야 하지 않겠어요? 그때에는 법카 긁어도 욕할 사람 없죠.


문제는 단순한 친목도모 모임에서조차 법카로 결제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거죠. 회사랑 아무 관계없는 모임인데 말이죠. "오늘은 내가 법카로 쏠게" 하면서요.


사실 이건 바꿔 말하면 "내가 회사 경비 삥땅쳐서 한잔 살게"랑 같은 말인데요. 쪽팔려야 하는 일인데요. 그런데 쪽팔려하기는커녕 아주 당당하게 얘기하죠. '나도 이제 임원 됐으니까 회사 돈을 어느 정도는 마음대로 쓸 수 있어'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잘난 체하는 거죠. 못난 놈!


그게 뭐가 문제냐고요? 법카로 친구들 밥 사 주는 건 동방예의지국에서는 인지상정이라고요?


아니죠! 개인적인 모임에서는 개인카드로 결제하셔야죠.


참고로 저는 30대 후반에 대기업 임원 달았지만 개인적인 모임에서는 항상 개인카드를 썼습니다.


네? 재수 없다고요? 그래서 친구가 별로 없지 않냐고요? 


...


그래도 원칙은 지켜야죠.



3단계. 회사 직위를 이용해 경조사금으로 한몫 챙기기 


제가 유통업에 종사하던 때만 해도 이런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백화점 MD가 결혼하면 축의금으로 전셋값 뽑는다


설마 요즘은 이렇지 않겠죠? 전셋값이 워낙 올라서... 반전세라면 몰라도...


물론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직하게 일하시는 백화점 MD(머천다이저)분들께 정중하게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현직에 있을 때 자녀분들이 결혼하기를 바라죠. 현직에 있느냐, 퇴직했느냐에 따라 축의금 총액이 크게 달라지니까요. 이런 행동까지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는 유도리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백화점 MD처럼 갑의 지위를 이용해 결혼식 축의금을 과도하게 삥 뜯는 행태는 묵과할 수 없죠. 이 또한 기업을 사유화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물론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축의금을 받는 게 뭐가 문제냐?", "도대체 얼마 이상으로 받으면 과도한 액수냐?"라고 따질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각자의 양심에 맡기겠습니다. 저는 '준 만큼' 또는 '줄 만큼'만 받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부상조 사회이니까요. 축의금으로 수천만 원 받으신 분은 낭중에 수천만 원 내실 준비하시죠. 물론 개인 돈으로요.


결혼식은 축하받는 자리입니다. 전세 자금 마련하는 자리가 아니고요.



4단계. 팀원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사적인 부탁 남발 (닭 도둑)


지금까지가 애교 섞인 바늘 도둑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닭 도둑으로 넘어갑니다.


사실 앞선 세 가지 사례는 약간은 '회색지대'에 속하는 애매모호한 상황으로서 많은 분들이 별다른 죄책감 없이 유사한 행동을 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저 또한 그랬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적어도 제 기준으로는 명백한 도적질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회사의 직위를 이용해 사적인 부탁을 남발하는 것이죠. 어떤 게 있을까요? 예전에는 가장 일반적인 행태가 후배들 이삿집 나르게 하는 것이었죠. 끽해야 짜장면 한 그릇 사주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포장이사가 일반화되면서 이런 부탁은 잘 안 하죠. 포장이사를 하기에 민망할 만큼 이삿짐이 적은 경우에는 역시 후배한테 쪽팔려서 부탁 못하고요.


제가 목격한, 아니 경험한, 가장 황당한 경우는 부친 초상집 심부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본부 부사장님의 부친께서 영면하셨습니다. 그랬더니 태스크포스팀이 급 꾸려지더라고요. 일명 부사장님 상가 1일 3교대조. 4인 1조를 꾸려서 조별로 6시간씩 상가에서 근무(?)하면서 부사장님 조문객을 안내하고 부의금을 수령하는 것이었죠. 물론 상가에서 근무한 6시간은 하루 근무시간에 당연히 포함되고요.


그런데 직원들 월급을 부사장님께서 주시는 것은 아니잖아요. 회사에서 주는 것이죠. 회사 돈은 주주님들 돈이고요. "그런데 왜 월급은 회사로부터 받으면서 막상 일은 부사장님 상갓집에서 회사 업무와는 하등 관계없는 조문객 안내하는 일을 하죠?"라고 질문은 하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했다가는 혼날 게 뻔하니까요.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이것은 회사 돈 삥땅이랑 비슷한 수준의 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갓집 심부름 직원들을 고용하면서 서비스료 대납은 회사에 시킨 꼴이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까 대기업 차부장들이 갑자기 심부름센터 직원처럼 됐네요. 우리는 진짜 순수한 마음에서 했는데요. 


거짓말하지 마세욧! 순수한 마음에서 했다면 근무 시간 이후 개인 시간에 했어야죠? 부사장님께 잘 보이려고 회사 업무 시간에 상갓집에서 심부름한 것이잖아요?


어쨌든 주주님들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셨을 것 같아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비토 콜레오네. 거절하면 혼나죠. [사진 출처: 영화 'The Godfather']



5단계. 개인 취미생활에 부서 동원


개인 취미생활이 가정에서 제대로 호응을 못 받다 보니 이를 즐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죄 없는 부서 팀원들을 동원하는 분들도 계시죠. 가령 일요일마다 관악산 등산을 함께 가줄 만큼 헌신적인 배우자가 없다 보니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과장님을 불러내시는 부장님이 여기 해당되겠죠. 또 공을 찰 수 있는 나이의 자녀가 둘 밖에 없어 조기축구팀을 구성하는데 실패, 결국 지점 내 전 직원을 주말 아침마다 불러내는 지점장님도 요기에 해당되고요.


불러내는 팀장님 입장에서는 즐거운 취미생활일지 몰라도 불려 나가는 팀원들 입장에서는 중노동입니다. 불러내시는 분은 잘 모르겠지만 불려 나가는 사람에게 이것 만큼 큰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어느 누가 그러더라고요. "회사에서 일만 하면 좋겠다"라고. 이 친구는 좀 음치거든요. 그래서 노래방 가는 게 곤욕이에요. 하지만 상무님께서 노래방 어깨동무를 통한 으쌰으쌰를 워낙 강조하시다 보니 음치 후배 또한 어쩔 수 없이 노래방에 끌려나가 사람들을 웃길 수밖에 없었죠. 물론 본인이 일부러 웃긴 것은 아니고요. 본인은 속으로 울고 있었겠죠.


참고로 회사에서 일만 하면 좋겠다던 음치 후배는 수년 전에 창업해서 지금은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래방 상무님'은 지금도 여전히 노래방에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노래방에 가시면 꼭 운동권 가요를 부르시죠. 도우미 분들 불러서 놀면서요.


하아~! 욕 나올 뻔했어요.  



6단계. 친한 사람은 좋은 평가, 안 친한 사람은 쉣 같은 평가 


이건 닭 중에서도 조금 큰 닭 도둑입니다.


어떤 임원분들은 인사고과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본인과의 '친분'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회의할 때 자기편을 얼마나 자주 들어주느냐, 술자리에서 자기를 얼마나 잘 챙겨주느냐, 조금 더 나아가 본인의 비리 또는 실수를 얼마나 잘 덮어주느냐 등을 갖고 평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사고과를 할 경우 메시지는 분명하죠. "예스맨이 되세요." "좋은 술 동무가 되세요." "약간의 비리는 모른 채 하셔야죠."


이런 분들은 사내 지위를 이용해서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치고 계십니다. 먼저 일 열심히 하시는 분들에게는 자괴감을 안겨 주죠. 열심히 일할 기분이 나겠어요? 좋은 평가를 받는 분들은 따로 있는데. 이런 분들이 본부 내에 두세 분만 계셔도 그 본부는 완전히 빵꼴라 됩니다. 


그런데 보통 두세 분보다 더 계시죠. 쉣!


만약 이런 분이 그룹 내 고위직에 계실 경우에는 본부의 문제가 아니라 그룹 전체의 문제가 됩니다. 사실 그 정도가 아니죠. 잘못하면 그룹의 기업문화 자체를 아주 쉣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기업문화는 한번 훼손되면 좀처럼 회복되기 힘들죠. 한번 남겨진 선례는 그 이후로 두고두고 이용될 수 있으니까요. "박 사장님 재임 시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데요? 왜 지금 와서 특별히 문제를 삼으시는 거죠?" 쉣!


만약 이런 분이 정부 내 고위직에 계실 경우에는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가 됩니다. 잘못하면 국가 전체의 일하는 풍토 자체를 아주... 아닙니다. 여기서 그만 하겠습니다.



7단계. 지인 거래처에서 비싸게 사기 (소 도둑)


제 생각에 여기서부터는 소 도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 도둑을 소 도둑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죠.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도 저랑 생각이 다르신 분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구매 담당자 중에는 일부러 지인이 운영하는 거래처로부터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여기서 지인이라고 하면 예전 거래처 사장님이 아니라 친구, 선후배, 친척 등 개인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람을 뜻합니다. 심지어 부모형제나 배우자가 되는 경우도 있죠. 아주 극단적인 경우로는 본인이 되는 경우도 있고요. 본인이 사이드잡으로 운영하고 있는 업체로부터 구매하는 거죠.

 

이것 자체만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인의 거래처가 양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타 거래처보다 훨씬 더 경쟁적인 가격으로 제공한다면요. 아, 또 하나가 더 있죠. 회사 결재권자에게 지인의 거래처라는 것을 떳떳이 밝히고 칭찬받을 수 있다면요. 


하지만 가격도 그닥 경쟁적이지 않고, 결재권자에게 칭찬도 받지 못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지인 거래처에서 구매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품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저렴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놓친 거죠. 좋게 말해서 회사 돈으로 인심 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회사 돈을 한 쿠션 먹여서 횡령한 것입니다.


아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 뭐가 문제냐고요? 회사에서 지인 좀 챙겨주면 나중에 지인으로부터 회사가 도움받을 수도 있지 않냐고요?


글쎄요. 나중에 지인으로부터 회사가 도움을 받게 될지, 아니면 구매 담당자가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것은 매우 위법한 행동입니다. 만약 대표이사가 이런 행동을 했다면 공정거래법 위반이고요. 일반 직원이 이런 행동을 했다면 웬만한 회사에서는 중징계감입니다. 심한 경우 해고될 수도 있고요.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풍속이라는 얘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그냥 범죄입니다. 그것도 소 도둑.



8단계.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대가로 '리베이트' 쓱삭


구매 담당자 중에는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대가로 구입 대금의 일부를 '리베이트'로 되돌려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리베이트는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냥 뇌물이죠, 뇌물. 한 글자로 하면 '삥'이고요. '삥 뜯다' 할 때의 그 삥이 맞습니다.


뇌물을 에둘러서 점잖게 부르는 말이 몇 개 있죠. 정치권에서는 떡값, 학교에서는 촌지, 기업에서는 이를 리베이트라고 부르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한데 엄밀히 말하면 모두 뇌물입니다.


그런데 리베이트라고 하면 아무래도 죄책감이 덜 한가 봐요. 제가 아는 모 상무님의 경우는 매년 수십억 원 상당의 상품을 구입하면서 상당 금액의 리베이트를 받아 챙겼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이 없으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회사는 상무님만 그러신 게 아니었어요. 그냥 위아래 할 것 없이 부패가 득실득실거리던 회사였죠. 모 구매 담당 과장 역시 그동안 수십억 원 상당의 상품을 구매하면서 수억 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것이 확인되어 퇴사 처리되었죠. 그런데 이 과장님께서 퇴사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가관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사세요? 이 회사에서는 혼자 너무 정직하게 살면 바보 돼요."


앞서 말씀드린 상무님은 어떻게 됐을까요? 리베이트 받은 증거가 나와서 사장님께까지 보고가 들어갔죠. 그런데 그 보고를 받은 사장님의 말씀 또한 가관이었습니다.


"O상무가 요즘 부인과도 별거 중이고 집안에 좋지 않은 일도 있고 해서 매우 힘든 것 같으니 이번은 경고를 주는 정도로 넘어가면 어떨까 합니다."


이것 역시 소 도둑에 해당되는 사항인데 이를 도둑질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주변에 소 도둑들이 너무 많다 보니 양심이 무뎌진 게 아닐까 판단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상무님의 경우는 아마 사장님과 '수익 공유'를 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장님께서 상무님을 왜 봐주시겠어요. 수익 공유는 유식한 말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고 조금 무식한 표현을 쓰면 그냥 '뇌물 상납'이죠. 사장님께서 상무님으로부터 상납받고 눈감아 주신 거겠죠.


귀여운 소. 훔쳐 와서 집에서 키우고 싶지만 너무 커서...



9단계. 유령 회사에 독점권 주고 회사 돈 삥땅


지금까지 말씀드린 행위를 만약 팀장이나 임원 급에서 했다가 발각될 경우에는 최소 징계, 심할 경우에는 퇴사 처리까지 될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형사 고발되어 감옥에 갈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러한 행위를 하시는 분이 만약 기업의 최고 실세라면요?


이번에 말씀드리는 경우는 최고 실세 중의 실세가 아니면 하기 힘든 행위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유령 회사를 만들어 놓고 그 회사에 판매 독점권을 주는 행위죠.


가령 S사의 경우 매년 수백억 원 상당의 자재 판매 독점권을 A유통사에 부여했습니다. 한 마디로 S사의 각 구매부서가 관련 자재를 구매하려면 무조건 A유통사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독점권을 준 이유는 'A유통사는 구매 전문 회사이기 때문에 S사의 각 부서에서 따로 구매하는 것보다 A유통사를 통해서 구매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A유통사는 중간 유통 마진을 7%나 떼어 갑니다. 단순 구매대행 치고는 좀 높은 편이죠. 더욱 이상한 점은 A유통사가 구매대행을 해주고 있는 회사가 S사 말고는 없다는 것이죠. 한 마디로 구매를 할 때에 규모의 경제 효과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유통사에게 이렇게 엄청난 독점권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A유통사의 실소유주가 다름 아닌 S사의 회장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지 사장님은 따로 계시죠. 서류에 이름만 올려놓고 약간의 봉급만 챙겨 가시는 사장님과는 별개로 A유통사의 모든 결정권은 S사의 회장님께서 갖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어떡하겠어요? 유통 마진이 높아도 A유통사에서 사야죠. 누구 회산데...


지금 이 사례는 가상의 사례가 아니라 실제 사례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런 회사가 존재한다는 게 별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많은 회사들이 A유통사와 같은 회사를 한두 개씩은 끼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보통신사를 가장한 회사일 수도 있고, MRO 업체로 포장한 회사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그런 회사들은 우리나라에 비일비재합니다.


이건 한 마디로 대놓고 하는 소 도둑질이죠. 회사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죠. 회장님이 대놓고 월급 외 수입을 챙기신다는 걸요. 하지만 그냥 넘어가죠. 아니, 그러려니 하죠. 그렇게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 벙어리 삼 년 해야만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바보처럼 살아야 나중에 월급 외 약간의 떡고물이라도 챙길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회장님 돈 아니냐고요? 회장님께서 지분을 100% 갖고 계실 경우에는 그렇죠. 하지만 대부분의 회장님들께서는 지분을 많아야 20% 정도만 갖고 계시잖아요? 그렇다면 회사 돈이 전부 회장님 돈은 아니죠.


그렇다고 회장님을 소 도둑이라고 할 수도 없고, 참.


회장님께서는 소 도둑질은 하셨지만 소 도둑은 아니십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고 한탄할 일이 아닙니다. 회사에서는 바보처럼 살아야 오래 살 수 있으니까요. [사진 출처: MBC]




지금까지 다양한 '기사님'의 사례를 작게는 바늘 도둑부터 크게는 소 도둑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기사님들에 대한 대응방안에 대해서 두 가지 경우로 나눠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사님'이 상사일 때의 대응방안


먼저 기사님이 내 직속 상사인 경우에 대해서 말씀드리죠.



1.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맞춰라.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호기를 부리는 것은 조직이 나를 알아줄 만큼 내가 큰 다음의 얘기이지 대리 과장 나부랭이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니, 심지어 차부장 급에서도 이런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상사 눈 밖에 나면 한 순간에 빠이빠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조직이 곧 사람입니다. 조직장이 조직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조직이 곧 사람
조직장이 조직을 좌지우지하기 때문


결국 문제는 '소 조직장인 직속 상사에게 맞출 것인가 아니면 대 조직장인 회장님께 맞출 것인가?'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임원이나 돼야지 회장님께서 알아주십니다. 아니, 임원이 돼도 회장님께서 알아주실까 말까입니다. 대리 과장 나부랭이가 직속 상사에게 찍혔을 경우, 이를 구제해주시는 회장님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요즘은 심지어 수목 드라마에서도 이런 회장님은 보기 힘들죠. 


결국 임원이 되어서 회장님 눈에 띄기 전까지는 직속 상사에게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상사가 지독한 기사님이든 아니든, 그래서 내가 힘들어 죽겠든 아니면 쓰러지겠든 상관하지 말고 직속 상사의 행위를 용인하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더러워도 할 수 없습니다. 안 그러면 저처럼 됩니다.



2. 기업을 사유화할 수 있을 만큼의 지위에 올랐다면 전략적으로 판단해라


이제 나도 어느 정도 커서 기사님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나 역시 직속 상사와 마찬가지로 기사님을 할까요? 아니면, 직속 상사는 기사님을 하셔도 나는 꿋꿋하게 마이웨이를 갈까요?


이때에는 전략적으로 잘 판단하셔야 합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되고 상식적인 선에서 용인된다면 어느 정도는 기사님을 해도 괜찮습니다. 물론 직속 상사보다 더 지나치게 해서는 안 되겠죠.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면 안 되고요.


하지만 너무 남용해서는 안 되겠죠.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재수 없으면 징계를 먹을 수 있으니까요. 최악의 경우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직속 상사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이 다 하는데 혼자만 너무 독야청청하다가는 잘못하면 사회에서 외톨이가 되겠죠.



3. 전략적 판단을 흐릴 만큼 양심이 강하다면... 양심에 맡겨라


그런데 전략적 판단이 안될 만큼 양심적이신 분들이 있어요. 대학 동기들 만나서 법카로 술 한번 사야지 내가 동기들 사이에서 가오도 살고, 회사 이미지도 좋아지고 할 수 있는데 양심 상 그게 도저히 안 되시는 분들 있잖아요. '친구들을 회사 일로 만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회사 돈을 쓸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요.


물론 법카로 친구들 술 한잔 샀다고 뭐라 그럴 사람 회사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요. 하지만 그건 내 양심이 절대로 용납 못하죠. 법카로 긁으면 두고두고 괴롭죠.


이런 분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양심에 맡기세요. 법카는 무슨 법카. 떳떳하게 개인 카드로 긁으세요. 


그리고 법카로 산다고 해서 회사 이미지가 좋아지긴 뭐가 좋아져요? '그 회사 경비 처리 널럴한 회사네'라고 생각하겠죠. 



4.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하지만 나한테 맞는 절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개중에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싫으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공과 사를 칼 같이 구분하시고 싶은 분들이죠. 


그런데 주변을 보면 너도 나도 막 '기사님' 뛰어요. 아니, 그래야 해요. 우선 내 직속 상사가 그렇게 하니까요. 그리고 그분께서 나 또한 그렇게 하기를 바라니까요. 가령 거래처에서 선물을 받으면 팀장님께도 갖다 드리고, 어쩌다 남으면 팀원들끼리 나눠 갖고 하기를 원하시죠. 


그 정도만 돼도 참겠어요. 그런데 상무님이 툭하면 노래방 가자세요. 가서는 꼭 거래처 담당자를 부르세요. 


아, 또 있죠. 도우미 분들도 부르시죠. 노래방에서 도울 게 뭐가 있다고. 누가 도와준다고 노래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닌데요. 게다가 도우미 분들이 도와주시는 것인지 아니면 도와줌을 당하시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죠. 


마무리는 꼭 운동권 가요로 하세요. 어깨동무하고 다 같이 떼창 하죠. 앞서서 나갈 거니까 산 자들은 따르라고. 이게 거래처 법카로 술 먹으면서 도우미 분들과 어깨동무한 채로 부를 만한 노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아마 작사하신 분께서는 다른 의도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속으로는 '이 사람이 미쳤나' 싶지만 어쩌겠어요. 상무님이신데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회사를 찾아서 떠나세요. 기사님 없는 곳으로요.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거의 없을 걸요?



'기사님'이 팀원일 때의 대응방안


그냥 자르십시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됩니다. 싹일 때에 제거해야 후환이 없습니다.


요즘은 사람 함부로 못 자른다고요? 보직해임, 대기발령, 임금삭감 등 아무 거나 걸 수 있는 것 다 거십시오. 안 그러면 이 사림이 나중에 커서 기업문화 다 망칩니다.




이상으로 기사님의 다양한 유형과 함께 그 대응방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네? 이런 분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고요? 나 빼고 다 인 것 같다고요? 그래서 내가 오히려 왕따 되고 있다고요?


이왕 왕따 되신 것 그냥 버티세요. 그래도 우리 회사에 양심 있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게 왜 하필 내가 되어야 하냐고요? 너무 힘드시다고요?


회사 다니는 게 원래 힘들어요.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Key Takeaways


1. 회사에는 '기사님', 즉 '기업을 사유화하는 님들'이 참 많다.

2. 기사님에는 바늘 도둑부터 닭 도둑, 소 도둑까지 다양한 유형이 있다.

3. 기사님이 상사일 때에는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맞추지만 팀원일 때에는 그냥 잘라라.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감하시면 다른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도록 공유 부탁드립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국내 대기업의 잘못된 기업문화 유형 시리즈

(1) 갑질 문화 vs. 깡패 문화 vs. 통수 문화

(2) 쓸데없는 일이 너무 많은 회사

(3) 파트너 회사 뒤통수치는 것을 자랑삼는 회사

(4) 비리를 서로서로 눈감아주는 회사

(5) 성적 순 vs. 친한 순 vs. 비리 순 인사고과

(6) 여자는 리더가 될 수 없다는 회사

(7) 기업을 사유화하는 님들

(8) 기업에도 '지역 탕평책'이 필요하다


기타 글

기업문화랑 맞지 않으면... 내가 못난 게 아니다. 단지 기업문화랑 맞지 않았을 뿐.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는 리더가 될 수 없다는 회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