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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브라운 Jan 21. 2019

비리를 서로서로 눈감아주는 회사

국내 대기업의 잘못된 기업문화 유형 (4) 





Question


유통회사 2년 차 사원입니다. 저희 회사는 그냥 비리가 만연돼 있습니다. 서로서로 비리에 대해서 다 알면서도 눈감아준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보니 안 해먹는 놈이 바보 취급을 당합니다. 가끔씩은 눈치 없는 고지식한 분들이 심한 부정을 참다못해 감사실에 고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뭐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가벼운 경고 한번 먹고 넘어가는 게 다반사죠.  


도대체 우리 회사는 왜 이렇죠? 이런 회사가 많은가요?




Answer


아, 마음고생이 참 많으시겠어요. 두 번째 질문부터 답을 드리자면... 그런 회사 참 많습니다. 그렇지 않은 회사가 드물 정도죠. 전 그게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사회가 비리가 많은 곳이니까요. 


한 5년 후에는 누가 이런 말씀을 하시겠죠? "아니, 요새 누가 학교 선생님께 뇌물을 갖다 바칩니까? 그게 말이 되나요?"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학교 촌지는 '오고 가는 정'이었죠. 막 말로 없어서 못 드렸죠. 돈만 있으면 우리 자식들 잘 가르쳐 달라고 선생님께 명절 때마다 성의 표시하는 게 동방예의지국 학부모로서는 당연한 도리였으니까요. 그 당시에는 촌지가, 아니 뇌물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70, 80년대만 해도 비리는 그냥 기본이었습니다. "세금 다 내면 회사 망한다"는 말도 있었으니까요. 아니, 그게 정설이었죠. 세금 다 내면 공무원 떡값은 뭘로 챙겨주죠? 당시에는 비리 없는 사람이 칭송받기는 커녕 "융통성 없는 넘" 또는 "군대 고문관 비슷한 넘" 취급을 당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직도 많은 회사에서는 비리를 공공연히 눈 감아주는 '관습'이 남아 있습니다. 예전처럼 비리가 없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동료 비리를 밝혀내는 직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피도 눈물도 없는 정말 모진 넘" 또는 "배려심은 눈곱만큼도 없는 이기적인 넘"으로 간주하죠.


정리하자면 예전보다는 비리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서로서로 비리를 눈감아주는 '풍습'은 여전히 대세입니다. 너도나도 해먹는 분위기는 많이 없어졌지만 해먹는 분을 꼰지르는 사람은 여전히 손가락질을 당하죠. 비리를 보더라도 의당 눈감아주는 게 '직장생활 101'의 기본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서 도대체 회사들이 왜 이렇죠? 왜 비리를 보고도 눈감아주는 관행이 만연돼 있는 걸까요? 이에 대한 제 51% 정답을 말씀드립니다.



1. 일만 잘하면 된다는 기업문화


많은 회사들이 일 잘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비리를 용인합니다. "일 잘하는데 이 정도쯤이야" 식이죠.


그런데 이런 문화는 사실 기업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학창 시절부터 존재했죠. 잠시 기억을 더듬어 제 고딩 시절로 돌아가 보면 당시에도 공부 잘하고 돈 많으면 웬만한 일탈은 용인됐습니다.


공부 잘하고 돈 많으면 담배 피우다 걸려도 용서받았습니다. "다음부터는 피우지 말아라"로 꿀밤 몇 대 맞고 끝났죠. 하지만 공부 못하는 애가 담배하다 걸리면 "공부도 못하는 게..." 하면서 두들겨 팸을 당했죠. 우리의 은사님들로부터요. 게다가 집에 돈도 없으면... 아마 요즘 학교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많은 회사에서도 '일만 잘하면 된다'는 문화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비리 직원 중에는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 회사의 경우에는 대표이사가 직원에게 성추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장님께서 "뭐,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 눈감아 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이사님께서 몇 년 후 또 한 번 사내 성추행을 했을 때에는 가차 없이 해고당했습니다. 당시에는 회사 실적이 좋지 않았거든요.


일만 잘하면 장땡인 문화를 가진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직원 중 상당 수가 비리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일 잘하면 어느 정도의 비리는 용인해준다"는 믿음이 퍼져 있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더더욱 죄책감 없이 횡령, 성추행 등 나쁜 짓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더더욱 비리를 덮을 수밖에 없게 되겠죠. 비리 맨들을 다 자르면 일 잘하는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많은 경우에 이러한 문화는 나름 정당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요. 왜 그럴까요?

 

전교 1등이 담배까지 멋들어지게 피우니 완전 멋있어 보인다. 게다가 이 학생은 집에 돈도 많고 외모도 출... [사진 출처: 영화 '여고괴담']



2. 지나치게 수평적인 회사의 보상체계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과거에는 일 잘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보상을 할 수 없도록 회사의 보상체계가 구성돼 있었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연한이 차기 전에는 승진을 할 수 없었고,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입사 동기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당시의 사회적 규범이었으니까요.


능력과 성과를 승진과 연봉으로 인정해 주는 게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인데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으로 보상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장님께서 방으로 오라고 해서 금일봉을 하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장님이 직원들의 성과를 일일이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만 통용되는 경우였고요. 이것보다는 직책과 이에 따른 암묵적 부가급부(Fringe Benefit)로 보상해주는 게 보다 일반적인 경우였습니다. 


한 마디로 일을 잘했으니까 '꿀보직'으로 보내주는 식이죠. 여기서 꿀보직이란 일도 편하고 약간의 떡고물도 떨어지는 자리를 뜻합니다. 일을 잘하시는 분들에게 공식적인 보상을 해줄 수 없으니까 떡고물이 떨어지는 직책을 맡겨 비공식적인 보상을 해주는 것이죠. 다시 말해 어느 정도는 비리를 용인해준다는 말입니다.


성과연봉제가 도입되고 연공서열식 호봉제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이러한 성향을 갖고 있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보수적인 회사일수록 그렇죠. 그리고 많은 회사에서는 아직도 이런 마인드를 갖고 계시는 임원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적인 기업문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T그룹의 경우는 "월급이 적기 때문에 약간의 비리는 허용된다"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아니, 몇 년 전까지 이런 말이 있었으니 아마 지금도 있지 않을까요? T그룹 계열사의 대표이사였던 한 분은 횡령 비리로 기소됐을 당시 매우 당당하게 "리베이트는 비리가 아니라 그동안 업계의 관행"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었죠. 이건 당당한 게 아니라 뻔뻔한 건데요.


리베이트는 비리가 아니라 그동안 업계의 관행


물론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성과만큼 충분한 보상을 주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회사들이 많습니다,



3. 비리는 사내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사내 정치란 게 존재합니다. 정치는 혼자 할 수 없죠. 현실 정치에서도 무소속으로 성공하기는 힘들잖아요. 그래서 사내 정치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파벌', 조금 순화된 표현으로는 '라인'(Line)을 형성해야 합니다. 사장님 라인, 부사장님 라인. 뭐, 이런 식이죠.


현실 정치에서도 파벌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죠. 그래서 보통은 돈이 많거나, 아니면 자금 동원력이 뛰어난 분들이 현실 정치의 실세로 등장하죠. 막말로 '꼬붕'들에게 곰탕 한 그릇씩이라도 사줘야지 "네 돈 내고 밥 먹어라"하면 누가 따르겠어요?


사내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원이 되어서 법카를 쓸 수 있어야 비로소 '카포뤼쥠'(Caporegime)으로라도 행세할 수 있죠. 물론 법카를 공적 업무 수행이 아니라 자기 조직 관리하는데 쓰는 것이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지만 오늘날 이 정도는 그냥 '애교'로 통용됩니다. 법카로 회사 동료랑 술 한 번 먹는 것 갖고 죄책감 느끼시는 분 별로 없잖아요?  


마피아 조직의 부두목을 뜻하는 Caporegime은 줄여서 Capo라고도 하죠. [사진 출처: 미드 'The Sopranos']


그런데 때로는 임원 법카만으로 조직 관리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때에는 어쩔 수 없이 비자금을 형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비리에 엮일 수밖에 없죠. 이건 현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있어야 정치를 하고, 현행 법으로는 자금 동원이 충분하지 않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불법 정치 자금을 마련하게 되고...


사내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실 정치에서도 정치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비리를 저질러서 깜빵에 다녀오신 분들 중에는 나중에 화려하게 컴백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이런 분들이 국회의원도 되고, 도지사도 되고, 당대표도 되고. 여야를 막론하고요. 


물론 이러한 행태를 용인하자는 말씀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현실 정치는 물론 사내 정치도 앞에서 말씀드린 것보다는 훨씬 더 심하게 얼룩져 있다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행태가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될 만큼요. 


반면 순수하게 회사 돈을 착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라인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 돈을 혼자 삥땅 치다가는 걸릴 위험이 있으니까 조직을 결성해서 함께 쓱싹하는 것이죠. 사내 정치를 위한 라인을 유지할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비리를 저지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라인을 결성해서 사내 정치를 하는 것이죠. 


라인을 유지하기 위해서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비리를 저지르기 위해서 라인을 결성함


라인을 유지하기 위해서 비리를 저지르든, 비리를 저지르기 위해서 라인을 형성하든, 많은 경우 사내 라인은 비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 있습니다. 같은 라인 내에서 후배는 선배에게 상납하고, 선배는 후배에게 떡고물을 떼어 주고 하는 식이죠. 


때로는 라인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비리를 함께 저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리로 얽힌 관계는 모두가 공범이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이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죠.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몰래 숨어 담배를 피우면서 우정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다른 점은 담배는 피우는 사람만 손해지만 비리는 주주들 모두에게 손해를 입히고 더 나아가 사회 병폐를 키운다는 것입니다.


한편 서로 다른 라인 간에는 어느 정도까지는 비리를 용인해주는 '예의'도 있습니다. "서로 이 정도 선까지는 눈감아주자"는 식으로 암묵적으로 언약을 맺는 것이죠. 하지만 만약 상대편의 누군가가 그 선을 넘는 경우에는 가차 없이 '비리 직원'으로 공격을 합니다. 이때에는 같은 라인 내에서도 그 직원을 보호해주기 쉽지 않죠.


만약 모두가 '용인해주는 선' 내에서 해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령 아무것도 모르는 경력직 임원이 갑자기 회사에 들어와서는 정말 별 것도 아닌 비리(?)를 갖고 침소봉대(?)해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럴 경우에는 경력직 임원이 모든 라인의 공적이 됩니다. 사장님 라인, 부사장님 라인 너나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경력직 임원의 무례를 성토하겠죠. 


어쩔 수 없죠. 사내 정치의 룰을 어겼는데. 경력직 임원 말대로 하면 판을 깨자는 얘긴데. 결국 다 같이 죽자는 말인데. '이런 무례한 사람을 봤나?' 


또한 많은 경우 비리로 회사에서 잘리는 사람은 '비리가 가장 심한 사람'이 아니라 '라인 보스의 눈 밖에 난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사람은 비리가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회사에서 잘리는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비리는 그냥 보통 수준에 불과한데 라인 보스의 눈 밖에 나서 "이 친구는 더 이상 보호해주면 안 되겠군"이라는 보스의 판단에 의해 내쳐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스의 입장에서는 "내 눈 밖에 나면 어떻게 되는지 본때를 보여줘야겠군"이라는 생각에 한 명의 희생양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리 직원일수록 라인 보스에게 충성을 할 수밖에 없죠.


비리로 회사에서 잘린 '라인 보스의 눈 밖에 난 사람'일 수도


전 직원이 비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회사일 경우, 무조건 라인을 타고 라인 보스에게 충성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라인 보스로부터 내쳐지게 되면 비리를 핑계 삼아 회사에서 잘릴 수 있기 때문이죠. 


비리가 일반화되어 있는 회사에서 나 혼자 깨끗한 척 독야청청하면 왕따가 될 게 뻔합니다. 물론 승진에서도 누락되겠죠. 그렇다고 맘 놓고 비리 노선에 합류할 수도 없죠. 한번 비리에 합류하면 나중에는 라인 보스의 비합리적인 지시도 들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까요. 딜레마네요. 무슨 조폭 영화 같지 않나요?



4. 윗물이 맑지 않아서 너도나도 '같이 해 먹자'는 분위기가 조성됨


CEO가 비리가 많으면 그 이하 직원들도 몽주리 죄책감이 없어집니다. 'CEO가 이 정도 해 먹는데 나도 요 정도까지는 해 먹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회사일수록 못 해 먹으면 바보 취급당합니다. CEO를 비롯해 모든 직원들이 조금씩 다 해 먹는데 혼자서만 못 먹으면... 그야말로 바보죠. 


이런 회사에서는 비리를 신고하는 사람이 오히려 피해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직원들 사이에 '같이 해 먹어도 된다'는 공범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리를 목격해도 서로 이해하고 눈감아줍니다. 따라서 비리를 고발한 사람은 '같이 해 먹자'는 공감대를 해친 사람이고, 모두에게 손해를 끼친 공공의 적이 되는 셈이죠. 그래서 결국은 사내에서 왕따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상으로 비리를 보고도 눈감아주는 관행이 만연돼 있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만약 이런 회사에 다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요. 저도 이런 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당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왕따가 된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제안을 드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 또한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 경험에서 깨우친 제 나름의 51% 정답을 말씀드립니다.



1. 불의를 보고도 참고 넘길 수 있는 인내심을 키워라


먼저 비리에 둔감해져야 합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인내심이 부족한 분들은 인격수양(?)에 더 힘쓰십시오. 그래서 웬만한 불의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줄 아는 돌부처의 성품을 갖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왕따 됩니다.


학교 다닐 때 시험 보다가 취팅하는 애들을 선생님한테 꼰지르는 학생 있잖아요? 그런 애 밥맛이잖아요? 그런 애 취급받습니다. 어쩌겠어요. 기업문화가 그러한데. 비리는 범죄가 아니라 원두막에서 수박 서리하는 정도의 애교에 불과한데. "다 같이 잘 해먹고 있는데 왜 괜한 불씨를 일으키나..."



2. 기업문화를 바꾸려는 생각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아라


행여나 기업문화를 변화시켜 비리를 척결하려고 하는 생각일랑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학교 다닐 때 시험 보다가 취팅하는 애들을 꼰질렀던 왕따 학생도 아마 같은 심정으로 했을 겁니다. "취팅 없는 깨끗한 학교 만들어야지"라는 마음으로요. 그 학생 결국 왕따 됐잖아요.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던 학우들을 교장 선생님께 일러바친 애도 마찬가지 생각이었겠죠. "교내 화재를 예방해야지"라는 투철한 시민의식까지 함께 발동했을 수도 있고요. 그 친구 어떻게 됐죠? 아니, 친구라고 할 수 없죠. 그런 애랑 친구하면 큰 일 나죠. 걔 어떻게 됐죠? 담배 피우던 애들한테 학교 끝나고 집단 다구리 당했잖아요. 


비유가 좀 잘못됐네요. 기업문화를 바꾸거나 비리를 고발하는 행동은 그냥 왕따나 집단 다구리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단순히 정학 한 번 맞고 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비리 직원분들의 경제적 이익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죠. 때로는 비리 직원분들 가정의 안위가 걸린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비리로 축적한 돈으로 자녀 과외비를 대는 집안에서는 토끼 같은 자식의 장래가 걸린 문제입니다. 비리로 축적한 돈으로 노부모를 봉양하는 집안에서는 부모님의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런 분들이 있는 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존속하는 한 기업문화는 개선 불가합니다. 그냥 여러분만 '살신성인'됩니다. 여기서의 방점은 '성인'보다는 '살신'에 두어야 합니다. 즉, 여러분만 희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비리 처벌은 대충 넘어가고 내부 고발자만 '더불어 같이 일할 수 없는 넘' + '지지리 못나고 무능한 넘'이 됩니다. 



3. 사내 비리를 근절하려면 장기 플랜을 세워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문화를 바꾸고 사내 비리를 근절하는데 이 한 몸 바쳐야겠다"라고 생각하신다면... 무조건 길게 보십시오. 1, 2년 내에는 달성 불가능합니다. 10년 내지 20년짜리 중장기 플랜을 세워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3단계 전략을 말씀드립니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1단계: 나만은 정직하자

2단계: 내 '나와바리'만은 정직하게 관리하자

3단계: 빨랑 힘을 길러서 내 나와바리를 넓히자


너무 오래 걸린다고요?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동시에 그만큼 값진 일이기도 합니다. 20년, 아니 30년이 걸려도 기업문화를 바꿀 수만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입니다.


19년 만에 감옥 탈출에 성공한 집념의 사나이 Andy Dufresne [사진 출처: 영화 'The Shawshank Redemption']



4. 더 오염되기 전에 회사를 떠라


그런데 문제는 중장기 계획을 실천하는 동안 초심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일제 치하에서도 처음에는 항일 운동을 하시던 애국지사 분들 중에서 10년, 20년 변화의 조짐이 없자 결국은 친일의 길로 돌아서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분들을 탓할 게 아닙니다. 우리라고 크게 다를까요? 사원 대리 시절 불의를 보면 부르르 떨던 친구들 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고 흔들려 결국은 타협의 길을 걷는 분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그들은 지금 비리 사장님의 주구 역할을 참 멋들어지게 하죠. 일제시대 항일운동을 했다가 걸렸을 때처럼 누가 고문을 한 것도 아닌데... 그런 분들은 친일파 욕할 자격도 없습니다. 


일제 통치가 장기화되자 항일에서 친일로 변절한 류완택 (송영창  배우) [사진 출처: 영화 '말모이']


비리로 오염된 회사를 다니게 되면 나 역시 언젠가는 오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험 시간에 반 아이들이 모두들 컨닝하고 취팅하는데 나 혼자 안 할 수 있나요? 그랬다가는 나 혼자 낙오자 되는데요. 짝꿍이나 베프(BFF)는 물론 전교 1등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담배 피우는 학교에서 나 혼자 "담배는 냄새나서 싫어" 할 수 있나요? 왕따 당하느니 차라리 입냄새 조금 나더라도 담배 피우는 길이 세이프하지 않을까요?


비리로 얼룩진 회사에서 홀로 독야청청하면 내쳐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면 '무능아'로 낙인찍히거나. 


그게 싫으시면 떠나십시오. 지금 당장 떠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떠날 생각을 품고 떠날 준비를 하십시오. 지금 이 회사에 목숨 걸지 마시고 더 좋은 회사, 더 깨끗한 회사를 찾아서 떠날 준비를 하십시오. 


현재 회사는 그냥 잠시 거쳐가는 회사에 불과합니다. 제가 목숨 바쳐 충성할 대상이 아닙니다. 제 직장 인생을 걸만한 그런 회사가 아닙니다. 누구 좋으라고 열심히 일해요? 성과 내봤자 뭐해요? 비리 선배들 더 많이 해 잡수시라고요? 


비리로 오염된 회사에서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다면 여러분은 나름 노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 기억나시죠. 그것처럼 떠날 준비를 하십시오. 1년이고 2년이고 준비를 하십시오. 그래서 언젠가는 평생직장으로 삼아도 좋을 만한 회사를 찾아가십시오. 


여러분은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지금까지 비리에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것만으로도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일말의 죄책감도 갖지 마십시오. 


물론 또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그건 다름 아니라 나 또한 비리에 그냥 물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있네요. 무능아로 회사 다니는 겁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꿋꿋하게.


하지만 그럴 수 없잖아요? 나름 자존심이란 게 있는데...


떠나십시오! 아니, 떠날 준비를 하십시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Key Takeaways


1. 비리를 서로서로 눈감아주는 회사는 참 많다.

2. 그러한 관행이 만행돼 있는 이유는 일만 잘하면 된다는 기업문화, 지나치게 수평적인 회사의 보상체계, 사내 정치, 윗 물이 더러워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3. 이런 회사에 다닌다면 더 오염되기 전에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십시오.




추신


제가 요즘 사업을 하다 보니 글을 기획해서 마무리하는 데까지 너무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사실 이 글을 처음 쓸 때만 하더라도 체육계 비리가 터져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마무리할 때쯤에는 체육계 비리가 폭로되면서 많은 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체육계 비리가 그동안 쉬쉬 되어 온 것도 마찬가지 논리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상을 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폭력은 행사해도 된다는 문화

(2) 약간의 폭력은 코치로서는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라는 잘못된 믿음

(3) 선수들의 순수한 실력보다는 파벌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 및 운영

(4) 결정권자가 어느 정도의 폭력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감싸려고 한 점 등


안타까운 것은 기업은 다른 회사로 이직이라도 할 수 있지, 국가대표는 국적을 바꾸기 전에는 다른 팀으로 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30, 40대의 직장인들도 이러한 일을 당하면 불면증을 겪을 만큼 맘고생을 하는데 운동 하나만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걸고 달려온 10대, 20대 젊은이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금메달리스트마저 그런 험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 일반 선수들은 어느 정도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신성인의 용감한 선택을 하신 몇몇 젊은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 분들 덕분에 이 사회가 발전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결정 권한을 갖고 계신 분들은 정말 일벌백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결정 권한을 행사하지 못할 만큼 바카야로가 아니라면 당신의 자녀뻘 되는 선수들이 그런 일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지켜볼 수 있죠? 어쩌면 그러한 폭력 문화가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니면 그 핑계로 자신의 부가급부(Fringe Benefit)를 최대한 누리려고 했던 건 아닌가요?


어쩌면 이 사건을 계기로 체육계뿐만 아니라 기업 사회에서도 비리를 서로서로 눈감아주는 잘못된 관행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용기 있는 선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글을 마칩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감하시면 다른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도록 공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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