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리브라운 Feb 27. 2017

제안 vs. 결정 - 과연 누가 일을 한 건가?

이런 팀장만은 되지 말자 (2) - 결정만 하고 일했다고 착각하는 팀장

[사진 출처: 미드 'The Office']





Question


대리 2년차 기획팀 팀원입니다. 저희 팀장님은 팀에 별로 기여하시는 바가 없는 것 같아요. 팀원들이 제안해오는 것을 보시고 결정만 하시거든요. 그런데 팀장님께서는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인 양 맨날 일은 자기가 다 한 것처럼 말씀하고 다니세요. 정작 중요한 결정은 본인이 다 하셨다고.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Answer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하셨네요. 이건 정말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답이 달라질 수 있는 질문이네요.


일반적으로 기획팀에서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경우가 이렇지는 않겠지만 대개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업무 순서

1. 아이디어 제안 > 2. 지지 및 동의 > 3. 허점 지적 및 반대  > 4. 아이디어 수정 보완 > 5. 최종 방안 결정


이를 팀장과 4명의 팀원으로 구성된 팀에 적용해 보기로 하죠.


1. 팀원A가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제안했습니다.

2. 팀원B는 이를 지지해주는 근거를 제시하며 동의했습니다.

3. 팀원C는 반면 그 아이디어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반대했습니다.

4. 팀원D는 그동안 제시됐던 지지와 반대 근거를 참고해 기존 아이디어수정 보완했습니다.

5. 팀장은 A, B, C, D 팀원 얘기를 모두 들은 후 팀원D가 수정 보완한 최종 방안을 채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 여기서 질문드리겠습니다. 과연 가장 크게 기여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1. 팀원A - 최종 방안의 단초가 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2. 팀원B - 당초 근거가 빈약했던 아이디어가 좋은 제안임을 입증했다.

3. 팀원C - 아이디어의 허점을 지적하여 그대로 실행했으면 발생했을 수 있는 리스크를 예방했다.

4. 팀원D - 기존 아이디어를 수정 보완하여 가장 좋은 제안을 만들었다.

5. 팀장 - 결정을 통해 최종 방안을 확정 지었다.


조금 까리하죠? 그럼 지금부터 제 51%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51% 정답이냐? 이 세상에 100%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100% 정답이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또 오늘의 정답이 10년 후에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51%만 정답이기 때문에 여러분께서도 제 주장을 100%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객관식 문제를 풀 때 흔히들 하는 것처럼 먼저 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옵션부터 제거해 보죠.


저는 먼저 5. 팀장의 최종 방안 결정을 날리겠습니다. 왜냐? 결정권은 팀장이라는 직책에 수반된 권한이자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팀장은 팀장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를 수행한 것이지 대단한 기여를 한 건 아닙니다. 직원으로 치면 그냥 출근한 거죠. 출근은 직원으로서 당연한 의무를 수행한 것이지 큰 기여를 한 건 아니잖아요? 마찬가지죠. 


물론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크게 기여를 했다고 봐야 한다"라고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경우는 A, B, C, D 팀원들이 이미 필요한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팀장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팀장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 외에는 별로 한 게 없습니다.


결정만 한 팀장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꼴


그다음으로는 2. 팀원B의 지지 및 동의 3. 팀원C의 허점 지적 및 반대를 동시에 날리겠습니다. 왜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세상에 100% 맞는 답도 없지만 100% 틀린 답도 없습니다. 즉, 모든 제안에는 맞는 근거도 있고 틀린 근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제시한 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2. 지지 및 동의를 날린 것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실 겁니다. 남의 좋은 아이디어에 묻어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반면 3. 허점 지적 및 반대를 날린 것에 대해서는 갸우뚱하시는 분들도 몇 분 계실 겁니다. "모든 사람이 '말'이라고 할 때 혼자서 '사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행동 아니냐?"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죠.


물론 용기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잠깐, 우리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이 점을 한 번만 생각해보자"라면서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사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악마의 변호인' (Devil's Advocate)이라고 하죠.  


악마의 변호인 (Devil's Advocate) -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사람. 천주교 성인 추대 심사에서 추천 후보의 불가 이유를 집요하게 주장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을 ‘악마’라고 부른 데서 유래. 모두가 찬성할 때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 토론을 활성화시키거나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를 모색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변호사가 알고 보니 진짜 악마인, 알 파치노와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사진 출처: 영화 'Devil's Advocate']


문제는 이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 역할을 하는 게 별로 어렵지는 않다는 거죠. 그냥 가장 신삥 팀원에게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습니다. 단, 선배들에게 맞설 용기만 있다면.


MBA 스쿨에서 토론할 때 보면 이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자처하는 애들이 꼭 있습니다. "음, 그럼 나는 이제부터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하지" 하면서요. 그런데요. 가만 보면 이 역할을 하는 애들은 맨날 이 역할만 하려고 해요. "이번에도 내가 악역을 맡겠어"하면서요. 악역은 무슨. 그냥 팀플 거저먹으려는 심보죠.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자주 맡는 사람은 팀플 거저먹으려는 의도다


이제 남은 건 단 두 개뿐이네요. 1. 팀원A의 아이디어 제안4. 팀원D의 아이디어 수정 보완. 둘 다 '아이디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획팀에서 진짜 일을 한 사람은 바로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입니다. 그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아무래도 브레인스토밍의 단초가 된 최초 아이디어를 제안한 팀원A겠죠.


진짜 기획업무를 한 사람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
그중에서도 최초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이다


결국 이렇게 정리가 되겠네요.


업무 기여도

1. 아이디어 제안  > 4. 아이디어 수정 보완 > 2. 지지 및 동의 = 3. 허점 지적 및 반대  > 5. 최종 방안 결정


그럼 이제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만약 질문하신 분의 팀장님께서도 다른 일은 하시지 않고 오직 5. 최종 방안 결정만 하셨다면, 이에 대한 제 51% 정답은 '팀장님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 외에는 별로 한 일이 없다'가 되겠습니다.


왜 우리 팀장님들 중에는 황정민씨 같은 분이 없을까요? 있겠죠. 표현을 잘 못할 뿐이지... [사진 출처: KBS]


만약 제대로 된 팀장이라면 5. 최종 방안 결정 외에도 3. 허점 지적 및 반대 4. 아이디어 수정 보완을 함께 해줘야 합니다. 팀원이 가져온 아이디어에 대해서 그 허점을 지적해주고 더 좋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주는 역할은 최소한 해줘야 팀장이라고 할 수 있죠. 추가로 팀원의 1. 아이디어 제안이 잘 될 수 있도록 초반에 올바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줬다면 진짜 좋은 팀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좋은 팀장을 둔 팀이라면 이런 식으로 업무가 진행되겠네요.


0. 가이드라인 제시 by 팀장

1. 아이디어 제안 by 에이스 팀원

2. 지지 및 동의 by 다른 팀원들

3. 허점 지적 및 반대 by 팀장

4. 아이디어 수정 보완 by 팀장

5. 최종 방안 결정 by 팀장


사실 팀장님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으려면 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팀장님이라면 앞으로 이런 식으로 팀이 운영될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을 해주시고, 그전까지는 팀원들에게 공을 돌리십시오. 질문하신 분의 경우처럼 마치 자기가 일 다한 것처럼 말씀하고 다니시지 마시고요.


팀원분들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네?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고요. 팀장님이 방해만 안 해주시면 '땡큐우'라고요?


이런, 다들 팀장 복이 없으셨나 보네요.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Key Takeaways


1. 기획 업무는 일반적으로 '1. 아이디어 제안 > 2. 지지 및 동의 > 3. 허점 지적 및 반대 > 4. 아이디어 수정 보완 > 5. 최종 방안 결정' 순으로 진행된다.

2. 이를 업무 기여도 순으로 다시 정리하면 '1. 아이디어 제안  > 4. 아이디어 수정 보완 > 2. 지지 및 동의 = 3. 허점 지적 및 반대  > 5. 최종 방안 결정' 순으로 나열할 수 있다.

3. 좋은 팀장이라면 '5. 최종 방안 결정' 외에도 '3. 허점 지적 및 반대'와 '4. 아이디어 수정 보완'은 함께 해줄 수 있어야 하고, 정말 좋은 팀장이라면 팀원의 '1. 아이디어 제안'이 잘 될 수 있도록 초반에 올바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감하시면 다른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도록 공유 부탁드립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런 팀장만은 되지 말자 시리즈

(1) 내가 겪은 '가장 나쁜 성격'의 팀장 탑 5

(2) 제안 vs. 결정 - 과연 누가 일을 한 건가? - 결정만 하고 일했다고 착각하는 팀장

(3) 회의만 하면 일이 늘어나는 팀장 - 업무 범위 관련 팀장의 역할은?

(4) 항상 불만스러운 '완벽주의자' -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데...

(5) 말로 팀원 가슴에 비수 꽂는 팀장 - 팀장이 팀원 앞에서 주의해야 할 말

(6)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난 팀장' - 팀장님 말고도 할 사람 많은데요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겪은 '가장 나쁜 성격'의 팀장 탑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