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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리따 Jan 19. 2023

감자를 보내며

유산한 엄마에게_첫 번째

파란 하늘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쾌청했어요. 

봄에는요 한 주는 미세먼지 없이 좋았다가, 다음 주는 창문도 못 열잖아요. 

원래도 새파란 하늘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누런 하늘을 보다가 맑은 하늘 보면 더 반가워요.

작년 4월 이후, 하늘을 볼 때마다 그날이 상쾌한 날씨라면 마냥 좋아하고 웃을 수 없었습니다. 

거실 창가에 섰어요. 그날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날이었거든요. 눈물만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립니다. 꺼억꺼억 소리 내지 않아도 수도꼭지 덜 잠근거 마냥 아래로 떨어졌어요. 


이틀 전이었습니다. 오후에 병원에 갔어요. 휴지에서 빨간색 핏기가 살짝 묻어졌거든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갑자기 불안한 기운도 느껴지더라고요. 혹시나 싶어 검색해 봤어요. 저와 비슷한 상황에서 남긴 질문의 댓글에 빨리 병원 가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한 지 2주 되는 날이었습니다. 


병원 진료는 오후 6시까지였어요. 검색 끝낸 시간 5시 20분. 아이들 다시 옷 입혀서 나가자고 했습니다. 가는 길에 아이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어요. 첫째는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 거 같았어요. 돌이 지나고 좀 있으니 엄마 배가 불러왔고 동생이 생겼으니 그때는 잘 모를 때잖아요. 지금은 신기하기도 하고, 또 동생이 생겼냐고도 하고, 장난감 부술까 봐 동생 생기는 게 싫다고도 했었죠. 둘째는 그전부터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기에 그냥 신이 났습니다. 


15분 전에 병원에 도착했어요. 오후 진료 선생님 몇 분 중 한 분만 남아있네요. 데스크에서는 퇴근 시간 다 됐는데 왔다고 눈치 아닌 눈치를 받으며 기다렸습니다. 


"엄마, 이번에는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배로 초음파를 봤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러 번 보다 말씀하셨지요. 


"더 확실하게 질 초음파 볼게요."

옷 갈아입으러 가는데 손도, 다리도 떨립니다.


"지금 주수면 심장이 뛰어야 하는데 반짝이는 게 없어요."

그날부터 밤늦게까지 관련 글만 백 개 넘게 본 거 같아요. 수술했다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병원에 가니 아니라고 했다며 지금 5살이라는 엄마가 남긴 댓글도 있고, 며칠 있다가 가니 심장이 뛰었다는 글도 있었어요. 

혹시나 하는 기대도 생겼습니다. 며칠 후에는 달라질 수도 있을 거라며 나에게도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었어요. 두 아이 모두 임신 확인하러 병원에 가면 착상이 늦어졌는지 2주 후에 다시 오라고 했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나올 거라는 희망을 붙잡고 있었어요. 

다음 날 두 아이를 출산한 병원에 문의도 했었습니다. 진료 기록이 있으니 임신 전 마지막 생리일을 물어봤어요. 집에 있는 초음파 사진과 비교를 해봤죠. 제가 봐도, 지금 이 주수에는, 아무리 늦어졌다고 하더라도 심장은 뛰어야 했어요. 


다른 병원을 알아봅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더라고요. 제 진료 목적을 듣고는 예약이 꽉 차서 안 된다고 하네요. 그럼 왜 진료 목적을 물어본 것일까요? '나도 안 갈 거거든, 앞으로도 안 갈 거야!' 하며 다른 병원을 검색합니다. 당일 진료도 가능하다고 했어요.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장실 갈 때마다 묻어져 나왔어요. 소변이 마려워도 가기가 싫었어요. 배도 아파왔어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통증이었습니다. 오후에 남편과 같이 병원에 갔어요. 전날과 같은 의견입니다. 


결정해야 했어요. 두 아이를 출산한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할지, 지금 살고 있는 이 지역에서 할지. 남편은 이동 시간 때문에 여기서 하자고 했었죠. 결국, 바로 다음 날 오전에 수술을 하게 됩니다. 

예상하지 못했어요. 두 아이 모두 쉽게 임신한 편이었습니다. 계획한 적도 없었어요. 40주 다 채워서 태어난 아이들이기도 했어요. 당연히 뱃속에 있는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날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유산해 본 적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이 경험이 있는 엄마의 고통을요.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수술 전에도 이후에도 태아에게 미안한 마음, 내 몸 관리하지 않은 자책이 끝이 없더군요. 

그런 엄마들에게, 그때의 나처럼 힘들어하는 엄마들에게 감히 말씀드립니다. 태아가 잘못된 건 엄마 탓이 아니라고요. 그러니 적어도, 화살을 나에게 돌리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두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만 키우면서 배우는 게 참 많습니다. 

저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봐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속상할 때, 괴로울 때, 힘들 때 많아요. 아이의 재롱과 성장을 보며 마냥 웃을 수 있지는 않거든요. 처음에는 '힘들다' '내 인생 왜 이렇게 됐지??'라는 생각만 했는데요 아이가 크는 만큼 저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아이와 제가 만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건 보통 인연이 아니다, 하늘이 주시는 거다는 결론도 내리게 됩니다. 참고로 종교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니, 유산되었다고 또 임신이 안 되어 걱정과 슬픔에 빠진 분들이 계시다면 문제를 자꾸 들춰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그 문제의 원인이 '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적 있지 않으세요? '이제는 포기해야겠다' '다음을 준비해 봐야겠다'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는 순간, 좋은 일이 있었던 경험이요. 임신이 안 되어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노력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자유로워지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 주위에도 그렇게 해서 바로 임신하고, 둘째는 쌍둥이까지 출산한 지인이 있어요. 


하늘이 정해주는 일이기 때문에 적당한 때가 있다고 봅니다. 당연히 저희는 몰라요. 아직까지는 그때가 아니라 생각하고, 몸 추스르고 내 탓하지 말고 마음 가볍게 가지셨으면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하면 공부가 늘고

운동을 많이 하면 운동이 늘고

요리를 많이 하면 요리가 느는 거처럼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늘게 된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더 이상 걱정이 늘지 않게. 

_ 글배우


죄책감 가지지 말아요. 더 깊은 죄책감에 빠져들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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