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 속 상추가 더 잘 자라는 이유

나를 키우면, 함께 자랄 수 있다

by 벨리따

‘역시, 개인이 먼저 강해져야 해. 힘이 있어야 해.’

베란다에서 상추를 키우고 있다. 식물은 더 이상 키우지 않겠다 마음먹었었다. 햇빛을 받고 자란 상추를 먹어보고는 베란다에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 덕분인지, 한 블로그의 글을 읽었다. 투명 컵에 상추를 키우고 있었다. 따로 화분을 살 필요가 없다. 나중에 처리하기도 편할 것 같다. 바로 다이소에 가서 씨앗, 흙, 물 빠지는 망을 사 왔다. 집에 있던 빈 화분에도 씨를 심었고, 투명 컵에도 심었다. 총 여덟 군데, 화분에는 씨를 더 많이 심었다.


상추씨를 심어 잎이 올라온 상추만 흙을 바꿔줬다. 처음에 산 흙은 잎이 올라올 때 쓰면 좋은 흙이었다. 지금도 계속 새 잎이 나는 중이지만 흙을 바꾸면서 흙을 더 파 깊게 심었다. 옮기면서 줄기가 꺾인 적도 있고, 옮긴 후에 비실비실하게 큰 것도 있다. 지금은 화분 두 군데에서 다섯 뿌리가 자라고, 네 개의 투명 컵에서 하나씩 크고 있다.


매일 아침 물을 준다. 며칠 전, 흙이 부족해 보여 컵 가득 흙을 채웠다. 화분에도 흙을 더 부었다. 흙이 물을 먹고 뿌리와 줄기를 받쳐주니까 더 잘 자라는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투명 컵에 있는 상추가 더 잘 자란다. 제법 상추 모양이 보인다. 힘도 있다. 흙을 부으면서 잎을 건드려 땅으로 고개를 숙이는 잎도 있는데 컵에 있는 잎은 자리를 잡았다.

화분에 뿌리를 옮겨 심을 때 간격도 넓게 했는데. 햇빛도 골고루 쬘 수 있게 자리도 바꾸고, 방향도 바꿔줬는데. 투명 컵은 뻗어 나가는 공간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잘 자란다. 쌍둥이로 따진다면 한 달 먼저 크는 것 같다.


투명 컵 네 개는 옆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혼자 자라지만 붙어 있어 함께 자라는 것과 다름없는 상추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좋은 모임, 조직, 사회, 국가를 만들려면 개인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내가 성장을 해야 하고 그러면서 주위에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때 집단이 커 나가는 거라고. 다만 여기서 개인의 성장은 완성이 아니다. 훌륭한 어떤 단계가 아니라 내가 나누어 줄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이면 된다는 점은 짚고 가고 싶다.


기업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회사나 처음에는 작게 시작한다. 일거리가 많아지면 회사의 규모를 늘린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고, 이후에 대기업으로 갈 수 있는 건 회사의 규모가 커져서가 아니다. 결국은 사람이다.

처음에는 죽고 살기로 했을 테다. 그 과정에서 직원은 성장하게 된다. 매출이 늘어나면 더 많은 직원을 채용한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면 시스템화를 만든다. 이 과정에 이를 때까지 직원들은 배운다. 없던 걸 만들어 내야 하니까. 이후 성장이 멈추는 회사가 있다. 시스템을 만들었으나 아직 안정되지는 않았고, 일은 많아졌고, 나를 중시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으쌰으쌰 해보자는 의욕이 떨어진다. 회사 차원에서도 적절한 교육과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면 개인의 능력은 크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도전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달라진 문화에 발맞춰 간다면 매년 성장해 중견 기업으로 향한다.

사자는 살기 위해 사냥을 한다. 기업은 존속하기 위해 성장해야만 한다. 그 성장은 조직원들이 가진 능력의 합이다.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더 키워나가며 주위도 챙겨야 더 큰 조직이 될 수 있다.


상추 물 뿌리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큰 화분에 있는 상추한테 좀 더 마음이 쓰여 물을 뿌리다가 컵에 있는 상추한테도 뿌려준다. 과연 나는 지금 내 힘을 키우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컵에 있는 상추와 같다면, 주위에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가? 적당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싶어 하는가? 마지막으로 분무기를 컵 위쪽에 놓고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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