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이번 글에서는 저처럼 불렛저널을 활용하거나 본인이 다이어리 양식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해서 쓰는 글입니다. 불렛저널 다이어리를 살펴보면 대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점만 찍혀 있어요. 날짜, 요일, 시간, 메모 등 글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월간, 주간, 일간, 메모처럼 양식이 있지도 않습니다. 가로 세로 0.5밀리미터의 간격으로 점만 찍혀 있어요. 제가 알아서 적어야 합니다. 백지가 주는 두려움. 그림 그리는 데 소질이 없는 저는 도화지를 받으면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있었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옆 친구가 그리는 그림을 보고 비슷하게 그리거나, 이전에 그렸던 그림을 비슷하게 그려냈어요. 다이어리에서도 빈 종이를 보면 무엇을 적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양식이 있던 다이어리와는 다르게 적은 내용이 빈약해 보이는 이 상황을 저는 칸을 그리면서 해결해 갔습니다.
비어있는 상태에서 쓰는 것보다 칸이 있으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빈칸이라고 표현했으나 제목, 틀, 양식으로 이해하고 읽어가면 되겠습니다.
첫째, 사람은 줄이 그어져 있거나 칸이 있으면 여기에 뭔가 담으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또 쓰게 되고요. 불렛저널을 펼쳤는데 점만 보였어요. 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뭘 어떻게 적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올려준 영상이나 글을 보며 따라도 해 봤습니다. 몇 번 적다가 안 맞아서 다른 걸 찾아 썼어요. 꾸준하게 적는 내용이 달라지니까 이게 맞나 싶었어요. 쓰기에 정답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가이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양식이 다 그려져 있어서 적기만 하면 되는 때가 편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럴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빈칸 그리기입니다. 구체적으로 뭘 쓸지 정해도 좋고요, 그냥 칸만 그려 놓아도 되었습니다. 저는 바깥쪽 점들을 다 이어서 그렸어요. 큰 네모를 그린 거죠. 그리면서 이 칸을 채울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시간도 적고, 피드백도 적고, 메모란을 적었어요.
둘째, 칸이 있으면 사람은 채우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채우다, 즉 적기 위해서 칸을 그립니다.
다이어리에서 날짜를 뛰어넘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말 그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왜 쓰지 않는지를 살펴보면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어요. 저도 다이어리만 적을 때는 그랬습니다. 매일이 비슷하고 특별한 게 없으니 적지 않았습니다.
책을 집필하고, 일기를 쓰고, 다이어리에 적는 건 내 하루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쓰기 시작하니까 이전과 똑같은 일은 없었어요. 적기 전에는 모르고 넘어갑니다. 소소하고 매일 일어나는 일도 쓸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이럴 때 칸을 그립니다. 매일 비슷하게 일어나는 일 중 다른 감정으로 느꼈던 때, 그중에서도 처음 경험하는 일 등을 적는 거죠. 이렇게 나의 하루를 의미 있게 남길 수도 있습니다.
또 이런 적도 많았습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남기기 싫을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적지 않고 넘어갔어요. 시간이 지난 후에 보니, 이런 순간들도 소중하고 저의 모습이더라고요. 칸을 그려서 반성이라고 적었어요. 부족한 점, 고칠 점을 적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기 시작하니까 슬프고, 억울하고, 어려움을 겪고 때로는 불쌍하다고 여기는 순간도 쓰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게 꺼려질 때는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올립니다만,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진 않더라고요. 쓸 내용이 없을 때도, 감추고 싶은 일은 칸을 그려서 적기부터 합니다. 여백은 두더라도 공백으로 두지 않게 됩니다.
셋째, 양식은 사람의 생각을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날짜, 시간, 목표, 루틴, 할 일, 피드백 등 무엇을 적을지를 정해 놓으면 쓸 내용이 분명 해지죠. 항목을 정해 놓으니까 생각을 중구난방으로 하지 않습니다. 쓸 내용에만 집중하게 해요. 적을 내용이 많아지면 종이의 제한을 받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칸을 그려서 쓰자고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습관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채우기만 하면 되니까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하게 적을 건데요 시중에 판매하고 있는 양식 외에 다른 방법으로 그려도 괜찮습니다. 하나의 양식을 정해서 쓰면 습관 들이기가 쉽습니다. 계속하면 쓰는 양식에 맞게 하루도 맞춰서 살아가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에 불렛저널을 알았을 때 기호를 활용해서 적는 게 가능한지 궁금했어요. 이미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저도 적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여기서 그만두면 또 몇 년간은 다이어리를 사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거든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으나 알아보면서 이 다이어리가 마지막이라는 생각도 했나 봅니다. 블로그 포스팅에서 본 내용처럼 습관 추적을 만들면 계속해서 쓰지 않았을뿐더러 쓰는 양이 들쭉날쭉인 점이 싫었습니다. 시간이 충분히 여유가 있는 날이나 쓸 거리가 많은 날은 한쪽도 적었습니다. 반대로 잔잔한 파도처럼 보낸 날은 적을 게 없었어요. 이런 날은 날짜까지 포함해 세 줄 정도에서 마쳤습니다. 이렇게 쓰다가는 매일 이 정도 수준에서 쓰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했어요. 이건 제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다이어리를 쓰면서 제 삶이 달라지길 바랐는데요, 그냥 쓰고 있다는 행위에만 그치고 싶지 않았어요. 이전에 쓰던 바인더를 다시 보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내지도 찾아봤습니다. 불렛저널 외에는 다 양식이 그려져 있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하브루타 수업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책 한 권 읽고 기억나는 내용을 자유롭게, 개수 제한 없이 적어보라고 빈 종이를 나눠준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쓰는 걸 힘들어했어요. 그중 어떤 아이는 동그라미를 그린 후에 적더라고요. 다음 수업에는 제가 미리 모양을 그려갔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그 전주보다 더 많은 단어를 적었습니다. 다이어리 양식이 있는 이유, 동그라미를 그린 이유. 저도 이렇게 활용해 보자 싶었지요.
기호 대신 시간으로 바꿨습니다. 'T' 모양으로 그렸어요. 한쪽 면의 중간에 시간을, 1부터 23까지 세로로 적었습니다. 왼쪽에는 계획을 적었고 오른쪽에는 실제 보낸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아래에는 그날 칭찬할 점과 반성할 점을, 나머지 공간에는 메모를 남기기로 했어요. 하루에 있었던 일, 가졌던 생각과 감정을 적고 나면 다음 날 쓸 수 있게 양식을 그렸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매일 이렇게 자를 사용해서 그리면 귀찮지 않냐는 내용입니다. 복잡하게 그리면 하지 않을 거 같아 저 나름대로는 간단하게 작성할 수 있는 양식이라 생각합니다. 그리는 데는 5분이면 충분했으니까요. 또, 시간이 있을 때 미리 그리거나, 출력해서 붙여보라는 조언도 받았습니다. 메모에 적다 보면 많이 적는 날이 있기 때문에 매번 미리 그려 놓을 수는 없었어요. 다만, 오늘 어느 정도 쓸 것인지 가늠이 된다면 그럴 때는 여유가 있을 때 그려 놓기도 했습니다. 쓰는 내용이 비슷해서 출력할 수도 있지만 이 방법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꺼워지니까요. 이제는 제 양식을 인쇄해서 사용할 마음은 있습니다. 메모에 있었던 일을 적는 저는 이제는 가끔은 포스트잇을 사용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메모가 일간과 띄워져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상관없는 분이라면 메모 속지만 따로 구입해도 됩니다. 저처럼 하루에 다 남기는 분 중에서 자주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은 용도를 구분해서 쓰거나 쓰는 범위가 제한이 없는 불렛저널을 추천드립니다. 또 매일 같은 양식으로 쓰면 지루하지 않냐는 질문도 했습니다. 장점이 더 크다고 믿습니다. 같은 양식으로 쓴다는 말은 쓸 항목이 일관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항목별로 과거와 지금의 모습을 비교할 때 도움이 됩니다. 물론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아요. 기간 설정해서 처음과 중간, 끝의 여러 날을 읽어보면 생각이, 하루를 보내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걸 느낍니다. 또 정했다고 해서 하나만 고집하지 않습니다. 불렛저널의 장점이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의 질문과 조언을 들을 때면 어떻게 좀 더 편하게, 그러면서 목적에 맞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이렇게 건네주는 지인들 덕분에 제 양식을 점검하고 수정해 가요. 빈칸에 쓰고 나서 이게 최선인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써보고, 계속 변경해 가는 과정을 통해 다이어리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 쉽게만 갔으면 이미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년 가까이 불렛저널을 쓰면서 양식이 있으면 없을 때보다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접한 다이어리를 떠올려보면 양식이 다 정해져 있어서 다이어리는 이런 내용을 담아야 하고, 정해진 양식을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만난 불렛저널은 빈 종이에 채워가야 하니까 어색한 점이 분명 있었습니다. 이전에 바인더를 써 봤지만 확 달라진 양식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써보려 했어요. 이전보다 나아져야 하는데 그렇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이때, 틀을 그리기로 했어요. 칸이 있으면 떠올리고, 정리하고, 쓰려는 노력을 해야 했으니까요. 처음보다 편해졌습니다. 같은 내용으로 꾸준히 쓰니까 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게 되고 또 그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빈칸 채우기, 다이어리 습관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