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용재 오닐, <섬집아기>
2012년, 우리는 수원에서 약 6개월 정도 살았다. 그때 남편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어 여수에 있었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과천으로 출퇴근했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왔고 퇴근 후 8시가 넘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건상 아이들의 유치원 등하원을 직접 할 수 없어 돌봄 지원을 받았다. 돌봄 이모는 내가 출근하기 전에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이고 유치원에 데려다주었다. 다시 오후에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내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함께 집에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고 나면 나는 부리나케 밥부터 챙기고, 씻기고 나서 시간이 나면 잠깐 놀아주다 셋이 다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 날, 퇴근 후 현관문에 들어서는데 돌봄 이모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달려왔다. 큰 아이가 좀 아픈 것 같다고 했다. 방안에 들어가니 큰 아이는 이불을 덮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좀 아팠던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불을 들춰 보았다. 들추는 손동작이 멈춰지기도 전에, 대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돌봄 이모가 아이의 뒤처리를 해주지 않은 것이다.
이불을 다 들추기도 전에 모든 상황이 파악됐지만, 순간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나는 마치 대변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듯 아무렇지 않게, '아이는 이제 내가 잘 돌보겠다, 걱정하지 말고 어서 집에 가시라'라고 했다. 돌봄 이모도 나에게 뒤처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돌봄 이모가 그 냄새를 맡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돌봄 이모가 참 야속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일 다시 출근을 해야 했고 돌봄 이모는 우리 집에 와야 했다. 그래서 '이렇게 냄새가 진동하는데 그냥 이렇게 내버려 둬야 했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언쟁 끝에 돌봄 이모가 내일부터 오지 않겠다고 하면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편 없이 출퇴근을 하며 아이를 온전히 도맡아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줄곧 마음이 무거웠다. 예기치 못한 일이 터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한 달에 두어 번만 아빠를 보게 되는 상황 탓인지 아이들도 전보다 위축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전보다 더 밝고 다정한 엄마여야 했다.
그 시절, 아이들을 재우는 밤은 거의 매일 비슷했다. 하루가 끝나면 아이들과 나, 셋이 방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잘 시간이야'라고 말한 뒤 조용히 '섬집아기'를 불러 주었다. 양팔에 아이 한 명씩 끼고서 두 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을 나눠주고 싶어 불편한 손놀림으로 토닥여주곤 했다. 그렇게 가만히 생각에 잠겨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말소리가 줄고 키득대는 소리 대신 숨소리가 깊어지곤 했다.
그날 밤엔 유난히 생각이 많았다. 내가 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아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내일 아침이면 나는 또다시 아기를 혼자 두고 굴 따러 가는 엄마여야 했다.
얼마쯤 지나서 우연히 용재 오닐이 비올라로 연주하는 <섬집아기>를 듣게 되었다. 동요로 듣던 노래와는 전혀 달랐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어김없이 수원에서 보냈던 그 밤들이 소환되었다. 그 밤들을 기억하다 보면, 나는 또 어느새 나의 엄마에게로 가 있곤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글을 쓰려고 그의 연주를 계속 듣다 보니, 구슬프게만 들렸던 노래에 따뜻함이 묻어나고 있다. 그걸, 이제야 발견했다.
❤️ 이 글은 리처드 용재 오닐의 섬집아기 (A Baby lives in the Island)를 들으며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