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시작일지도

by 시크한 달빛

언제부터일까, 나를 바라보는 내가 끊임없이 자각되고 있다. 혼자 버텨보겠다고 해놓고 매 순간 정말 혼자인 내가 느껴진다. 나를 잊을 정도로 마음을 다하는 순간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회사에서 동료들이 가볍게 말하는 가족 안에서의 흔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비슷한 경우에 우리는 어땠는지가 떠오르고 이내 씁쓸함을 묻어 버린다. 신혼부부가 관계 균형을 찾아가는 이야기든, 나와 같은 중년이 겪어내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이든 그들의 이야기는 행복한 가족을 만드는 방향으로 수렴된다. 그 옆에서 마치 나도 그러는 중인 것처럼 웃는다. 웃으며, 마음속에서 진짜로 떠오르는 말들은 다 접어둔다. 가끔씩 내 입에서 나오는 '남편'이란 단어가 나조차 생경하다.


낮 동안 이렇게 보내느라 힘을 다 써서 그런지, 퇴근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누워서 게임을 한다. 5번의 기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적절한 타이밍에 주어지는 보너스 30분을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또 그렇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겉으로는 격렬해 보이지만, 손가락은 금세 전략도 없이 습관적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단계의 미션을 완수하지 못해도 별로 아쉽지 않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터에 있는 사람처럼, 나는 서둘러 다시 도전을 터치하고 또 전략 없이 움직인다.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온 집안에 그와 나 사이의 불편한 긴장이 가득했던 그때는 오히려 긴장을 피하기 위해 더 무언가에 집중하려고 했었다. 그래야 잠시 잊을 수 있었으니까.


이제 그는 없다. 그가 없는 공간이 처음엔 낯설고 텅 비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비로소 숨 쉴 구멍이 생겼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적막함과 고요 속에 나를 가만히 두면 내 마음 저 밑바닥부터 가문 땅에 물이 스미듯 그렇게 생명줄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지금도 이 고요가 나를 차분히 가라앉게 한다. 그러나 조금은 달라졌다. 이제 앞으로도 그는 없을 것이다. 갈증을 해소하려 벌컥벌컥 물을 마셔대는 순간은 지나갔고, 이제 그다음을 봐야 한다. 그러고 보니 그다음이란 게 무언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막막하기도 하다. 내가 만들어가야 할 그다음 앞에서 멈칫하고 있었나 보다.


이제 정말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버텨보겠다는 게, 이렇게 시작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