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향기로 추억하는, <과수원길>

by 시크한 달빛

나는 과수원집 막내딸이었다.


과수원은 커다란 타원 모양으로 위에서 아래로 약간 비탈져 있었다. 우리 집은 그 타원의 중심점 부분에 안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봄에는 복숭아, 사과, 살구, 앵두 같은 과일나무들이 번갈아 꽃을 피웠다. 초여름엔 과수원을 둘러싸고 아카시아 향이 가득했고 한 여름엔 집 주변 무궁화가 튼실하게 피어났다. 가을이면 마을 어귀에서 집에 이르는 길목 양쪽으로 노란 탱자가 올망졸망 탱글탱글하게 익어갔다. 어느 해는 미처 수확하지 못한 국광이 겨울 내내 을씨년스럽게 커다란 사과나무에 댕글댕글 붙어 있기도 했다.


이미지로 남아있는 과수원의 사계절이 퍽 낭만스러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수원 일은 1년 내내 쉴 틈 없이 쏟아졌다. 이른 봄에 '전지'를 하면 땅에 떨어진 가지를 주어 모으고, 꽃이 피고 나면 사과를 솎고, 몇 달 동안 농약도 쳐야 했다. 사과를 따서 창고에 저장했다가 비로소 세상에 내놓으려면 선별 작업을 거쳐 상자에 예쁘게 담아야 했다. 어느 해부터는 사과의 상품성이 중요해져서 사과 빛깔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고 어린 사과에 봉지를 씌우기도 했다. 다른 농사와 달리 과수원은 한겨울에도 여유롭게 쉴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은 매년 반복되었다.


그러나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사과 따는 일만큼은 힘든 와중에도 꽤 즐거운 일이었다. 어린 나에게도 수확의 기쁨은 크게 느껴졌다. 내가 딴 사과가 양동이에 차곡차곡 차오를 때면 내 마음에 뿌듯함도 함께 차올랐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나무에서 갓 딴 사과를 소매로 쓱쓱 문질러 한 입 베물면, 아사삭 소리와 함께 터지는 신선한 사과과즙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98년 2월 학교를 졸업하고 백수로 지내던 그해 봄, 한참 사과를 솎아야 할 그 시기에 아버지가 위암 진단을 받으셨다. 이제 와 고백하건대, 나는 내가 아버지 간호 담당이 될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모두 직장에 다니고 아이를 키우고 있었던 터라 때마침 백수인 내가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못하는 이유를 대는 게 참 궁색할 것 같았다. 내 예상과 달리 아버지 간호는 엄마가 도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절대 엄마처럼 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러니 애당초 나는 간호 담당으로 고려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던 어느 시기에 비어있는 시골집을 일주일 정도 나 혼자 지킨 적이 있다. 아무도 나에게 시키지 않았지만, 혼자서 과수원의 사과나무를 둘러보았다. 미처 솎지 못한 사과송이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여기저기서 어서 솎아주기를 바란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무거워진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이 넓은 과수원의 사과나무를 나 혼자서 다 솎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엄마, 아버지가 병원에서 돌아오신다 해도 이전처럼 제대로 신경 쓰지는 못할 게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집과 과수원을 왔다 갔다 종종거리며 하나라도 더 해내려고 애쓸 것도 뻔했다. 그러니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도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몇 그루가 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에 일정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만큼은 사과솎기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겨우 두 그루 정도 솎기를 마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집에 가면 나는 집 바로 뒤에 있던 두 그루의 사과나무를 찾아보곤 했다. 그 두 그루의 나무는 과수원에 있는 수많은 다른 나무와 다르게 더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그 며칠 그렇게 정성을 들였다고 더 정이 간다는 게 참 신기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과 내가 스스로 찾아서 한 일의 차이였을까, 어린왕자가 장미꽃과 여우를 길들이듯 나의 시간과 마음으로 사과나무를 길들인 걸까? 이런 게 농부의 마음일까? 엄마, 아버지는 이 과수원의 모든 나무가 그럴까? 과수원집 막내 딸치곤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을까?


이제 더 이상 과수원은 남아 있지 않다. 주인을 잃은 나무들도 모두 사라졌고 경운기가 힘겹게 올라가던 언덕배기 흔적도 없어졌다. 과수원 부지는 겨울엔 민둥산 같다가 한여름엔 원시림 같다. 지붕이며 마당이며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백만 송이 장미> 노래는 가사를 찾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의 기억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시골집은 이미 훼손된 상태를 그대로 볼 수밖에 없다. 과수원은 온데간데없고 정돈되지 않은 시골집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


시골집과 상관없는 일상을 하루하루 살다가 어느 순간 코에 익숙한 아카시아 향이 훅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만큼은 어린 시절의 과수원 어디엔가로 다시 돌아간 같아 나는 한동안 설렌다. 아카시아 잎을 따서 디스코 머리도 땋고, 엄마 손 잡고 과수원 어딘가에 염소를 매어두러 가기도 하고, 저녁이면 굴뚝에 연기도 오르는 그런 곳.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노래 부르며 상상 속의 과수원집 막내딸이 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