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나 자신을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칭하면서 창피하게도 82년생 김지영은 얼마 전 처음으로 읽었다. 난 회피 성향이 강해서 가끔은 문제를 직면했을 때 받을 스트레스가 무서워서 피하게 되는데, 이 책이 그랬다. 여성이 겪는 고통스러운 일들을, 어쩌면 이미 익숙해서 문제로 인식하지도 못하게 된 일들을 마주하면 너무 힘들고, 후유증이 오래갈 것 같았다. 꼭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미루다가, 드디어 읽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부조리를 마주한다. 대다수의 남성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간혹 인정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만 한다. 집안의 큰일은 남자가 해야 하니 남자 형제와 차별받으며 자라고, 남자는 가장이고 여자는 출산 후 회사를 그만둔다며 기업에서는 남자를 선호하고, 여자 지원자의 점수가 더 높아도 남자 지원자를 뽑는다. 출산율이 낮아서 우리나라가 망할거라고, 요즘 여자들은 이기적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임신한 직원이 육아 휴직이라도 하면 민폐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어떻게 하면 자를 수 있을까 안달복달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회사에 입사해서도 여자 직원은 그저 품평의 대상이 되고, 남자직원은 본인이 심사위원이라도 된 듯 행동한다. 여자 신입 사원이 이쁜지, 못생겼는지, 말랐는지, 통통한지 평가하고 공유한다. 나는 잘생긴 신입사원이 들어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어도 남자 신입 사원이 못생겼다, 이모구비는 괜찮은데 얼굴이 크다, 살만 빼면 괜찮겠다, 너무 말랐다 등의 얘기는 일절 들어본 적이 없다.
또, 친근함에 하는 말이라며 성희롱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나는 입사 첫 날, 본인과 16살 차이라며, 16살 차이나는 여자와 결혼하는게 꿈이였다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팀장이 성희롱을 한 것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수치스러우면서도 그저 친해지려고 하는 말이겠지 생각하며 애써 외면했다.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일상생활로 들어가면 말도 안 되는 일은 더 많다. 택시를 타면 남자 손님은 무서워서 말도 못 걸겠다며 여자 손님을 상대로 전도하고, 정치 성향을 주입하고, 데이트 폭력은 피해자도 잘못이라는 말을 하며 손님이 아닌 본인 말 상대로 대하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또, 본인들은 누가 쳐다보면 뭘 보냐며 기분 나빠하지만, 지나가는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훑어본다. 시선 강간 당해서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예민한 사람이 된다.
김지영은 여자라서 겪어야만 했던 일들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게 잘된 일일까? 나는 차라리 그냥 모르는 게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원래 그렇게 사는 거라고, 우리 엄마는 더 힘들었다고, 그렇게 받아들였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페미니즘이 화두가 되기 전까지는 위의 사례들로 기분이 나쁘다고 하는 것조차 예민한 사람이 되는 세상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김치녀, 된장녀 등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 여자들의 행동을 제재하던 시대에 살면서, 이건 잘못됐다고 말도 못 하고 견뎌야만 하는데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같았다. 뭐가 잘못인지 말하는 것조차 입 아프고, 나만 신경을 안 쓰고 무시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들은 원래 샘이 많아서 여자 직원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는 남자 팀장에게, 팀장님 괴롭혔다고 말한 상사들은 다 남자들인데 왜 남자들이 원래 괴롭히는 성격이라는 말은 한 번도 안 하셨어요?라고 했다가 너 메갈 하니?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사무실에서 미투운동은 여자들이 이때다 싶어서 꼬투리 잡는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성희롱 신고하고 퇴사한 여자직원을 겨냥하며 이래서 여자는 뽑으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김지영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본인보다 공부 못하는 남자 형제의 대학을 보내기 위해 대학을 포기한 김지영의 엄마다. 김지영의 삶 속에서 가장 숨이 트였던 순간은 친구가 번호순서대로 급식을 먹는 건 여자 학생들에게 불리하다고 말했을 때와 회사에서 여자 직원으로 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공감해주는 팀장을 만났을 때이다.
내가 그동안 무시한다는 명분으로 불합리 한 일들에 대해 침묵한 건, 어떻게 보면 방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