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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ghtme Jul 25. 2020

29살의 내 집 마련기

작은 오피스텔이지만..

 계약하고 잔금을 치를 때까지도 실감이 안 났는데, 오늘 등기부 등본 소유자에 내 이름 세글자가 쓰여있는 걸 확인하니 뿌듯함이 몰려왔다. 청약에 당첨된 것도, 아파트를 산 것도 아니고 그저 작은 오피스텔 하나 샀을 뿐이지만, 나의 첫 내 집 마련기를 글로 남기고 싶다.


 몇 주 전, 집주인에게 집을 내놓았으니 부동산에서 보러오면 문 좀 열어달라고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고 나서 주인이 바뀌면 내 전세 계약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다가 문득 내가 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지금 사는 동네와 집이 너무 좋아서 앞으로 적어도 2-3년은 살고 싶다고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이 오피스텔이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언젠간 한 호수를 매입할 막연한 계획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건물은 매매, 전세 가격 대비 월세 시세가 비싸고 대학교 바로 옆 동네라 수요가 많기 때문에, 집주인이 계약이 끝나면 월세로 전환한다고 할까 항상 걱정이었는데, 이 주거 불안을 해소하고 싶었다.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내가 사면 얼마에 해주실 건지 여쭤보니 500만 원을 깎아준다고 했다. 

하루만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대출을 알아보니 내가 지금 가진 돈과 신용대출, 회사 대출까지 끌어모으면 가까스로 집을 살 수 있었다. 집주인이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이고, 돈 욕심이 별로 없어서 전세도 저렴하게 입주해있었는데, 보유한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매매도 싸게 내놓은 덕분이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고, 오피스텔은 사면 안 된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었고, 나중에 더 좋은 기회가 생길까봐 망설여졌다. 하지만, 가격이 시세보다 1-2천 만원 저렴했고, 집 바로 앞에 지하철역이 생기는 게 확정됐기 때문에 가격은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오피스텔은 서류상 업무시설이기 때문에 실제로 거주하더라도 청약에서 무주택자로 구분된다고 하여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살면서 돈을 모으고, 아파트에 청약을 넣고, 이 집을 월세를 줄 계획을 세웠다.


 결정하고 나니 일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우선, 집주인은 집을 내놓은 당일에 부동산에서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연락을 받았지만, 내가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역시 부자의 그릇은 다른가 보다. 그리고 집주인이 잘 아는 부동산을 통해 대필료 20만 원만 내고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또, 마침 내가 집을 사기로 했을 때가 딱 회사 대출 신청 기간이어서, 돈 문제도 금방 해결됐다. 


 계약할 때 주의 사항을 많이 새겨듣고 갔는데, 걱정한 것 보다 너무 쉽게 끝났다.

회사 팀원을 통해 부동산 계약 때 주의할 점을 공부해갔다. 계약 직전에 부동산에 오늘 자 등기부 등본을 떼어달라고 요청 해야하고, 다 알고 있더라도 등기부 등본을 보면서 이거 융자 없는 거 맞죠? 라고 물어봐서 공인중개사에게 없는 것 맞다는 대답을 들어야 하고, 6개월 이내 누수가 발생할 시에는 매도자가 배상한다는 특약을 넣어야 한다고 적어갔다.

혹시라도 사기를 당할까 많이 걱정하고 갔는데, 많이 공부한 게 무색하게 정말 쉽게, 금방 끝났다. 이번에 공부한 것은 다음 집을 구매할 때에 다시 봐야겠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전 직장 같았으면, 오피스텔을 산다고 말했다간 팀장한테 30분 동안 오피스텔 사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듣고, 회사에 소문이 쫙 퍼져서 나를 보는 사람마다 오피스텔 왜 사냐고 물어봐서 노이로제에 걸렸을 텐데, 지금 직장은 확연히 달랐다.

자기 일처럼 오피스텔 매매 과정에 대해 알아봐 주고 매매 시 주의할 점을 세세하게 알려준 분 덕에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실장님은 누군가 오피스텔을 대체 왜 사요? 라고 물어보자 본인이 나서서 오피스텔이 왜요? 뭐가 어때서요? 라고 말하며 그 사람을 입막음하고 더는 내가 곤란하지 않게 해주셨다. 그 밖에도 계약이 잘 진행되는 걸 보니 내가 살 운명이었다고 이쁘게 말해준 팀원도 있었고, 친한 또래들은 20대 집주인이라고 정말 대단하다고 나를 치켜세웠다.

언니들은 내 오랜 로망이었던 카페에 있는 것 같은 큰 식탁을 선물해줬고, 부모님은 티비를 사줬고, 형부는 넷플릭스 보라고 구글 크롬캐스트를 사줬다, 회사에서도 내 집 마련했으니 선물을 사주겠다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건 극구 사양했다.


 7월 1일에 매수하기로 결정하고, 7월 22일에 잔금을 치렀으니 3주 만에 내 인생에 정말 큰 사건이 지나갔다.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았는데도 취득세 낼 돈이 없어 세금은 신용카드 무이자 7개월 할부로 내야 했는데, 이 작은 오피스텔 하나 사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니 현타가 오기도 했다. 그래도 부모님 도움받지 않고 내 한 몸 누일 곳을 샀다는 게 행복하고, 그동안 열심히 일 한 내가 대견하다. 엄마가 이제 여기저기 이사 안 다녀도 되니까 너무 안심된다고 얘기해서 짠하기도 했다.

이 전까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부동산 앱에 들어가서 다음엔 어디로 이사가야 할지 알아보고, 적절한 집을 찾아도 방음이 안 된다는 후기를 보고 좌절했지만 이제 그런 일도 안녕이다. 당분간은 빚을 갚을 일만 남았다.

전 주인이 이 집을 사고 나서 일이 잘 풀렸다고 했으니, 나도 그 기운을 받아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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