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ghtme May 02. 2020

엄마와 서울

 어제 인천 본가에 들렸는데, 엄마가 뜬금없이 '12층 아줌마는 친구들이랑 브런치 먹었대'라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을 말이지만, 왠지 엄마도 ‘브런치’라는 걸 먹어보고 싶어서 한 얘기 같아서 오늘 서울로 오라고 했다. 강경하게 말하지 않으면 괜히 민폐가 될까 오지 못하는 엄마인 걸 알기에 홍대입구역으로 1시까지 오라고 통보했다.

 홍대입구역에서 엄마를 만나고 우리 동네인 연희동으로 넘어와 평이 괜찮은 브런치 집에 갔다. 평소에는 메뉴판도 안 보고 알아서 고르라고 말하는 엄마인데, 메뉴 설명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는 먹고 싶은 걸 골랐다. 그리고 음식을 음미하며 이렇게 요리할 수도 있겠구나, 집에서 따라 해봐야겠다고 말하며 레시피를 연구했다.

 브런치를 먹고 나서는 예약해둔 그림 그리기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하러 갔다. 엄마는 연신 그림을 잘 못 그린다며 걱정했지만, 강사분이 워낙 친절했고 엄마도 집중해서 하다 보니 재미를 붙여서 5시간 동안 피곤한 기색 없이 그림을 완성했다.


 엄마는 오늘 하루 너무 좋았다고 기뻐했지만, 나는 뿌듯하기보다는 괴로웠다.

 엄마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하는 거 다 하게 해줘야 한다고 다짐만 하고, 주말마다 쉬고 싶다는 핑계로 그 다짐을 외면한 게 너무 후회됐다. 딱 하루만 시간 내면 되는 건데, 집에서 종일 자고 혼자 술 마시는 하루 대신 엄마를 만났으면 되는 거였는데,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엄마는 항상 당차서 내가 엄마 할 수 있겠어? 라고 물어보면, 그까짓 거 못하겠으면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지 뭐가 어려워! 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나와 데이트를 할 때면 식당에서 메뉴 고르는 것도, 카페에서 주문하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다 못하겠다고 한다. 엄마한테는 다 처음이고, 젊은 사람들만 하는 거라는 생각에 위축되나 보다.


 며칠 전, 엄마아빠도 나이가 들었으니 아빠 사업을 접고 귀농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엄마는 친척들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자마자, ‘그럼 너네랑 서울 못 가잖아’라고 대답했다. 엄마에게 서울은 그동안 혼자서 할 수 없었던 경험을 딸들과 하는 곳이었다. 인천 집에서 서울은 빨간 버스 한 번만 타면 금방 오는 곳인데, 엄마한테 서울이 그렇게 큰 의미인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태어난 건 엄마가 선택한 일이긴 하지만, 엄마는 젊음을 희생해 나를 키웠다. 늦었지만 이제 내가 엄마에게 젊음을 다시 찾아줄 때다.



작가의 이전글 왜 여자가 더 많이 고민하며 연애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