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쉽게 사랑에 빠지는 이유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by Lightme

얼마 전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읽었다. 연애의 시작과 끝, 그리고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책이다. 한번이라도 연애를 해 본 사람은 지극히 공감할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이별을 한번 더 겪은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리고 절대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으리라는 금욕주의적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들에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상처 받을 기회조차 차단해버리는 다짐은 내게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왕자를 찾아 헤맬 것이다. 수도 없이 연애에 실패했으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나 자신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 이유를 찾고 싶어 졌다.



대학교 1학년, 첫 연애를 시작으로 8년 동안 가볍게 또는 진지하게 여러 남자를 만났지만 진심으로 행복했던 시간을 다 합치면 채 육 개월도 되지 않는 듯하다. 내게 연애는 항상 어렵고, 나를 울게 만들며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아린데, 왜 계속 사랑하고 싶고, 쉽게 사랑에 빠질까?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을 생각해보면, 얼굴이 잘생겼거나 성격이 이상형에 가까우면 찰나의 순간에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그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로 만든 뒤, 미래를 함께하는 상상을 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진다. 어찌 보면 가상의 인물을 사랑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내 인생의 구원자를 만난 듯하여 설레고, 그 사람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나는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백마 탄 왕자님이라고 믿을만한 누군가를 기다린다.



왜 이런 성향의 사람이 되었는지 원인을 찾으려면 아주 어렸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때의 나는 많이 외로웠다. 교우관계도 좋지 않았고, 항상 남동생과 차별을 받았고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져서 늘 위축되었다. 맹목적으로 나만을 사랑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간절하고 절실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 때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친한 친구들이 떠났을 때도, 남자 친구가 있으면 이런 일 때문에 슬프지 않을 텐데, 꼭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남자 친구를 사귀어야지 다짐했다. 뜬소문으로 인해 한순간에 나를 떠날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는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대체 왜 이렇게 나를 미워하는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이유를 몰라서 대단히 고통스러울 때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너랑 결혼해서 이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라고 말하며 엉엉 울었다.

끔찍한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준건 가상의, 또는 실제 남자 친구였다. 상상 속의 남자 친구가 없었다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근데, 내가 의지할 사람이 정말 남자 친구뿐이었을까?



나를 버린 친구처럼 애인도 언제든 마음이 변하여 떠날 수 있다. 우리 엄마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회는 내게 애인이라는 존재를 어디 하나 상한 곳 없는 튼튼한 동아줄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만화영화를 통해 악당으로부터 구해줄 영웅의 존재를 기다리게 했고,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와 단칸방에서 지내는 여자 주인공이 재벌 2세 남자 주인공을 만나는 상상을 하게 했고, 아니면 가난하더라도 나만을 열렬히 사랑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줄 그런 남자를 찾아 헤매게 했다. 어른들은 가정을 이루어서 남편과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주입했다. 그 이외의 미래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했다. 그 누구도 연애와 결혼이 사람을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당했다. 뒤통수 맞았다.



연애를 해서 행복한 사람보다 괴로운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이미 겪었으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주입된 생각 때문인지 사랑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완벽한 남자와 연애하는 상상 덕분에 고단한 하루하루를 버텨왔고, 습관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를 마음속으로만 좋아하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만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리화했다. 순간순간의 행복한 망상으로 자신을 망쳐버렸다. 이제 행복해지기 위해서 바뀌기로 결심했다.

상상 속의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며, 왜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지 비참해하는 일은 그만할 거다. 난 지금 이대로도 행복한데, 왜 스스로의 가치를 깍아내려야 하는가. 정말 내가 내 두 다리로 오롯이 설 수 있으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그 사람에게 목을 매면서 내 가치를 깍아내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 내 자신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하자, 내 인생의 구원자는 없다. 아니, 내 자신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 우연히 유니콘 같은 남자가 내 눈 앞에 짠하고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자. 상상 속의 연애 상대를 만들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지 말자. 건강한 생각과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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