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네 딸

by 파슬리씨

한 여인이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딸 넷을 키우며 살았다. 세월이 흘러 딸들이 자라자 혼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인은 좀 특이한 사람이라 딸들의 인생을 자기가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여인은 딸들을 불러 얼마간의 재산을 나눠주고 집을 떠나 원하는 인생을 살라고 말했다. 네 딸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고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딸들은 짐을 챙겨 각자 원하는 곳으로 길을 떠났다.


첫째인 봄은 네 딸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빛나는 외모와 밝고 따뜻한 성격 탓에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는 늘 사람들과 함께했고, 남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단점이라면 딱 하나, 뭘 하든 금방 흥미를 잃고 싫증을 낸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외모처럼 볕이 잘 들고 꽃과 열매가 아름답게 피어난 땅에다 집을 얻었다. 그가 나타나자마자 근방에 사는 남자들이 찾아와 청혼했고, 봄은 자신의 삶을 가장 풍요롭고 화려하게 만들어줄 사람과 결혼했다.

여름은 예술가 기질이 다분했다. 언니와 달리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열정에만 사로잡혀 살았다. 그가 뭔가에 몰두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여름은 세상을 하나의 교향악으로 여기고, 그 소리를 생생하게 경험하려고 광야에서 살았다. 여름은 광야에서 만난 장마라는 이름의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장마는 여름과 달리 자신의 감정을 시원하게 내뿜는 기질이었다. 뜨거워진 여름을 식혀주는 것은 남편만이 할 수 있었다. 둘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껏 열정을 불태웠다. 가끔 둘이서 다투면 온 세상에 폭우가 쏟아지곤 했다.

셋째인 가을은 가장 말이 없는 딸이었다. 네 딸 중에 가장 존재감이 없었지만 조용한 가운데서도 꾸준히 집안일을 돌보았고, 어머니가 가장 의지하는 딸이기도 했다. 어릴 땐 여름 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놀았고, 막내의 모난 성격도 잘 받아주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일손이 모자란 곳을 찾아다니며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도왔고, 외롭고 아픈 사람이 있는 곳에도 찾아가 보살펴주었다.

겨울은 묘하게 삐뚤어진 막내딸이었다. 초대받지 못한 마녀 브루텔라처럼 항상 사람들에게 심술을 부렸고, 자기만 대접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겨울은 열심히 책을 읽고, 남들도 자기처럼 생각하기를 원했다. 그런 모난 성격 때문에 쉽게 사람도 사귈 수 없었다. 겨울은 상처받았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북쪽 나라에 살기로 했다. 그러다 자기보다 똑똑하고 마음이 넓은 인내라는 남자를 만났고, 딸을 낳아 이름을 희망이라고 붙여주었다.


이제 여인은 나이가 들어 움직이는 것이 불편해졌다. 여인은 딸들에게 편지를 보내 넷이 돌아가며 자신을 돌보아달라고 했다. 딸들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첫째인 봄은 올 때마다 엄마를 위해 귀하고 아름다운 선물을 가져왔다. 첫째 딸이 올 때면 온 동네가 환영식을 하며 들썩였다. 그런데 봄은 매번 남자가 바뀌었다. 그러더니 올해는 함께 살고있는 여자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봄은 타고난 성격대로 그곳을 금방 싫증 냈다. 엄마가 조금만 더 있어 달라고 붙잡아도 바쁘다며 금세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여름은 집에 와도 엄마를 돌보는 일보다는 예술의 열정을 불태우는 일에만 심취해있었다. 둘째 딸과 사위가 오면 집은 사람 사는 곳답게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늙은 엄마가 둘의 젊음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여인은 둘째 딸만 오면 쉽게 지쳤고, 시원한 그늘에 자리를 펴고 누워야 했다. 여름이 부부는 친정에 와서도 의견이 안 맞아 자주 다퉜고, 여인은 어서 여름이가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곤 했다.

가을이는 가진 것은 적어도 언제나 엄마를 위해 밭에서 얻은 열매와 건강에 좋은 약초들을 풍성하게 챙겨왔다. 그는 친정에 있는 동안 오롯이 엄마를 위해 헌신했고, 엄마의 속 이야기도 들어주었다. 하지만 가을이는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오래 놔둘 수 없었고, 엄마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을이가 곧 갈 거라는 생각에, 그러고 나면 까다로운 막내딸이 올 거라는 생각에, 여인은 가을이가 있는 내내 침울했다.

마침내 막내인 겨울이가 남편과 딸보다 먼저 엄마 집에 도착했다. 그는 처음에는 엄마를 돌봐주며 잘 지냈지만 조금만 마음이 상하면 엄마에게 분풀이했고 차갑게 굴었다. 여인이 돌봄을 받는 일보다 막내딸 비위 맞추는 일이 더 많아 지쳐갈 때면 사위인 인내가 손주 희망이를 데리고 찾아왔다. 인내와 희망이를 보며 여인은 그 시간을 견뎠다. 조금만 참자.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첫째 딸이 온다, 그렇게 되뇌며 버티었다.

겨울이는 자신이 있는 동안 엄마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에 항상 남편과 딸을 먼저 보내고 남았다. 그리고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여인은 괜찮으니 어서 남편과 딸이 있는 집으로 가라고 겨울이를 부추겼다. 하지만 겨울이는 간다고 해놓고도 안 갔고, 짐을 싸서 마을 어귀까지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곤 했다. 이제는 여인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알았다. 겨울이가 큰 언니인 봄이 곧 올 것을 알고 시샘하기 때문에 돌아가기 싫어한다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공공 인터넷서비스의 물리적 속성과 데이터 전환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