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보이기 시작한 자리

2부. 상실 이후, 관계를 다시 바라보다

by 벨라콩

남편과 나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나는 스물여섯, 남편은 스물여덟.
요즘 기준으로는 빠른 결혼이었고,

그만큼 철부지였으며

감정이 앞서는 사람들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결혼은 현실이라고 했던가.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자마자 코로나 시기와 겹쳤다.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느꼈지만,

남편은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말수가 적고 사색을 즐기는 나와 달리,
남편은 늘 웃고 매사에 “좋아!”를 외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우리는 서로의 반대되는 모습에 끌렸던 것 같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도 사실 그 때문이었지만,
막상 함께 살아보니

나와 같은 무게로 진지해지지 않는 그의 태도가 서운하고 아쉬웠다.

그렇게 결혼생활과 육아 내내 우리는 부딪혔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 나는 법원 앞에 왔다며 전화를 걸어
아빠를 붙잡고 엉엉 울곤 했다.
아빠가 무슨 죄라고.

남편과 싸울 때마다 전화를 걸어 감정을 쏟아냈던 것 같다.


그러다 그렇게 받아주던 아빠가 사라지고,
혼자 남아버린 온기와
내 곁에 있던 존재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스며들던 시기가 왔다.

그 무렵, 자살유가족 관련 책의 힘을 빌려
상실에 대해 탐구하던 중
곽경희 작가의 『남편이 자살했다』를 읽게 되었다.


“남편이 사라지고 나니 그제야 남편의 자리가 보인다.
나와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에야 술에 취해 들어왔고,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간 후에야 깨어나 움직였다.”


이 문장을 읽으며
그동안 아빠에게 신세한탄하듯 쏟아냈던 말들과
남편이 미워 보이던 장면들이 겹쳐졌다.

결혼과 육아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나는 늘 질타했고,
나를 이해해 달라는 말이 더 컸다.
남편은 반대로 입을 닫았고,
그 침묵은 상황을 더 극단으로 몰고 갔던 것 같다.


아빠는 종종 말했다.
“그래도 걔, 굉장히 착한 애야.
적어도 아빠가 보기엔 그래.”

그 말이 싫었다.
이 와중에도 남편 편을 드는 아빠가 미워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아직 어렸다.


아이들이 자라며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빠는 남편 편을 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고 싶었던 것이었고,
어쩌면 중간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빠의 죽음 이후에야 만난 그 책 한 권은
내가 아빠에게 하소연하듯 던져왔던 말들의 실마리를
조용히 풀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당장 달라질 게 없다면,
세상을 미워하기보다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기로 했다.
긍정적인 면을 보려 애써보기로 했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그래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품은 채,
나는 그날 이후로 남편에게 그 마음을 바로 말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보고 있다면
너무 좋을 텐데.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슬퍼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