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상실 이후에도 함께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 대하여
하지만 바로 그를 이해하게 된 건 아니었다.
책 한 권이 주는 의미는 알았지만,
오래 쌓인 감정의 어긋남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변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남편은 친한 형과 낚시를 가기도 했고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하는 날도 잦아졌다.
나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두 아이를 돌보며 하루를 버텼다.
외로움은 자주 그리움으로 변했고,
그럴수록 마음은 더 깊이 가라앉았다.
겉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는데 무슨 낚시냐고,
왜 집에 더 머물지 않느냐고.
당시의 나 역시 그렇게 느꼈다.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의 선택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내 슬픔과 마주하는 일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말을 꺼내는 순간
무너질 것 같은 죄책감을 안고 있었을지도.
아빠와 함께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의지하던 기반까지 한 번에 사라진 사람에게
집은 오히려 가장 버거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밖으로 나도는 그의 모습은
도망이라기보다는 숨을 곳을 찾는 몸짓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다만 분명한 변화가 하나 있었다.
예전처럼 한 주제만 나오면
언쟁으로 흘러가던 시간과는 달리,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지’를
조금은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애도에 대한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상실은 동시에 찾아와도
각자의 시간표로 도착한다는 사실을
책과 경험을 통해 천천히 배우고 있었다.
아직은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오해만으로 서로를 재단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 정도의 변화면,
그 시기의 우리에게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