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이것만 넘기면 된다고 믿던 날들
이보다 더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이것만 넘기면 돼.
나는 상실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특히 시중에 많지 않은 자살유가족 에세이를 골라
혹시 나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는 않을까,
밤마다 다른 사람의 슬픔과 나의 시간을 겹쳐보았다.
유튜브에서는
이미 시간이 조금 지난 자살유가족들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직접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화면 속 그들의 얼굴에서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
나보다 더 깊은 시간을 건너온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하루를 버틸 힘을 얻었다.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어린 자녀를 두고
부모의 죽음을 ‘자살’로 마주한 여성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이들이 이미 자라
혼자 감정을 정리할 수 있거나,
육체적인 돌봄에서 한 발 물러난 뒤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걸까.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살아내야 했기에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보내는 일기처럼,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밤마다 혼자 털어놓았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시간 속에서
나는 독백하듯 글을 썼고
그 글쓰기는
조금씩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 통로가 되었다.
어느덧 그것은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낮에 생활하며 떠오른 아빠에 대한 궁금증,
왜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혼자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아 갔다.
글을 쓰다 문득
아빠와 나누었던 한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죽으면
네가 아니라 우리 손녀들이 너무 걱정돼서…”
그 말이 왜 그 순간 떠올랐는지,
아빠가 걱정하던 손녀들을
나는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혹시 내 감정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을 향해 마음을 돌려 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주변에서 반복되던 말들이
조금씩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너는 두 아이의 엄마잖아.
아이들 보면서 힘내.”
그 말이
아빠와의 대화를 거쳐
처음으로 내 안에서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말들은 당시에는 위로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런 나날들이 이어지던 중
TV에서 누군가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조용히 등을 돌려
혼자 눈물을 흘렸다.
어떤 날은 괜찮은 듯 지내다가도
며칠씩 감정이 뒤섞여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는
그저 하루를,
하루를 넘기며
살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