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자살 이후, 가족 안에서 배운 애도의 속도
사람이 죽으면,
남겨진 사람들은 비슷한 온도로 슬퍼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우리 가족은 모두 제각각의 방식으로 반응했고,
그 다름은 위로가 아니라 혼란이 되었다.
자살유가족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상담사는 자살유가족이 겪는 감정의 흐름을 이렇게 설명했다.
충격과 부정, 원인에 대한 집착,
죄책감과 자기 비난, 분노와 원망,
깊은 슬픔과 우울, 그리고 의미의 재구성과 통합.
단계는 비슷해 보여도
도착하는 시기와 머무는 시간은 사람마다 전혀 다르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우리 가족이 떠올랐다.
나는 충격과 부정, 슬픔과 우울 속에 갇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동생은 슬픔 끝마다
아빠를 향한 분노와 원망을 꺼내 보였다.
아빠와 가장 가까이 지냈던 남편은
놀라울 정도로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을 잃었는데
같은 언어로 슬퍼하지 못했다.
대화는 자주 끊겼고,
결국 ‘아빠’라는 단어는
집 안에서 조심스레 피해 가는 금기어가 되었다.
시간은 흘렀다.
아빠가 떠난 지 꼭 2년이 되었을 무렵,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는데
남편은 나와 정반대로 보였다.
사람을 좋아하고, 늘 활기차고, 가볍게 웃는 사람.
그 모습이 때로는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 보일까.
왜 함께 살던 사람의 이상 신호를
그는 알아채지 못했을까.
혹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닐까.
그 의문은 곧 판단이 되었고,
나는 그 판단을 오래 품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책임을
마음속에서 그에게 덮어씌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낙엽이 거의 떨어진 늦가을 저녁이었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아버지 일 때문에
여름에 나도 많이 우울했어.
그때 상담사가
어느 날 갑자기 슬픔이 올 수 있다고 했잖아.
그 말, 안 믿었는데
요즘 자꾸 생각나더라.”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잠든 남편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울었다.
당신 탓이 아니라는 걸.
우리의 탓이 아니라는 걸.
슬픔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도착한다는 걸
그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통과했지만
서로 다른 시점에서 아파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바로 무너졌고,
누군가는 한참 뒤에야 흔들렸다.
그 사실을 이해하는 데
나는 2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슬픔은 비교할 수 없고,
대신해 줄 수도 없으며,
누군가의 방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그날 이후로
나는 슬픔을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나 자신의 슬픔도,
타인의 슬픔도.
그저
각자가 도착한 자리에서
조금 덜 외롭게 서 있을 수 있기를
조용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