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엄마와 나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 성장한다. 그것은 비단 갓 태어난, 일생 최대의 속도로 자라고 있는 생후 50일 된 내 딸에게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50일간 아가와 내가 배운 것들을 끄적여볼까한다. 재미있었으면 좋겠지만 재미없을 수도 있다. 영양가는 조금 있었으면 한다.
물론 모든 상황에 대해 아기와 부모는 받아들이기 나름이며, 애바애, 사바사, 케바케이고 지금은 그렇지만 다음주엔 아닐수도 있다는 걸 지금쯤이면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 상황과 같지 않다고 해서 불안해하거나 조급하실 필요도, 같은 이유로 으쓱해하지도 마세요.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아가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거든요. 하루에도 열두번 바뀌는 비트코인 가격처럼요.
첫번째, 울음.
신생아는 정말 많이 운다. 엄마아빠를 닮아 목청이 큰 우리딸은 단 1분을 울어도 다른 아기 한시간을 능가하고, 나를 닮아 목이 잘 쉬는지 쇳소리를 내며 울어재낀다. 처음 몇주간은 집에 남편이 같이 있으니 비교적 괜찮았지만 밥도 먹고 기저귀도 간 아가가 울기 시작하면 어딘가 아픈건 아닌지, 내가 뭘 잘못한건 아닌지, 소화가 안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산더미만 해져서는 나도 울먹거리곤 했다. 그럼 아기는 제가 더 당황했다는 듯 울음을 멈추고 나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아니면 기어코 얻어낸 우유병을 물고는 나를 원망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지금은 --지금도 나는 울지만-- 비교적 밥을 먹는 시간이 정해져있고, 아기의 보디랭귀지가 일정하기 때문에 우는 이유를 판별하기 어렵지 않다. 내가 그동안 한가지 간과한 사실은, 내 집에 내려앉은 천사 같은 아기는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자고로 기본적인 욕구만 해결된다고 해서 백프로 만족하지 못한다. 사랑과, 사랑하는 이의 손길이 필요하다. 자꾸만 안아주면 손 탄다 어른들은 말씀하시지만, 나는 딸아이를 실컷 안아주려 노력한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잘못하면 허리고 팔이고 다 아작납니다. 저는 그저 내 인생에 이제 팔은 없는거려니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기도 혼자있고 싶어합니다. 그런 것 같아요.-- 우는 아기를 달래다 팔이 저리고 허리가 시큰거리면 떠올린다. 가족보다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할 다자란 아이를. 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아기를 --무게도 작은 건 아닙니다. 5킬로는 무겁습니다. 매우.-- 안을 기회가 몇년이나 더 있겠는가.
두번째, 밥.
신생아는 정말 자주 먹는다. 태어났을 때 위 크기가 고작 5미리였던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뱃구레를 늘려간다. 대체 어떻게 병원에서는 주사기로 아기 밥을 급여했던건지 믿어지지 않을만큼 아가는 집에 오자마자 30미리 가까이를 먹어치우더니 --이전 글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아가는 태어나고 36시간만에 집에 왔으니 엄청난 거라고 생각합니...-- 고작 3주만에 80미리를 찍고 지금은 잠자기 전 150미리 이상을 먹는다. 비정상까진 아니라고 하지만 평균의 아기들보다는 꽤 무겁다. 10킬로 미만의 아기는 비행기 삯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쾌제를 불렀는데, 아무래도 한국을 다음달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아기표도 사야 될 것 같다.
한번에 먹는 양이 많아진다고 해서 먹는 횟수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첫 한달은 하루에 10번정도 식사 타임이 있었다. 밥을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집안일을 좀 하다보면 바로 또 밥을 먹여야 한다. 사람들은 아기가 잘 때 양육자도 자야 한다고 말해줬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빨래를 해야 나도 씻고 새옷을 입고 사람다운 좀비가 돼야 할게 아닌가.
그래도 지금은 밤에는 길게 자는 편이어서 잠시잠깐이나 눈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길면 서너시간은 잘 수 있다.
세번째, 다시 울음.
아무리 지켜봐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때가 있다. 다행인지 우리 아기는 목욕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인데, 뜨뜻한 물에 담가놓으면 세상 신선같은 표정을 짓는다. 손을 닦는 걸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며칠 전부터 주먹을 입어 넣으려고 하기 때문에 깨끗이 해주어야 한다. 문제는 이 이후인데 수건으로 돌돌 말아 방으로 돌아올때까지는 괜찮다. 그러다가 물기를 닦으려고 내려놓는 순간부터 울어재낀다. 우리 부부는 아기가 곤히 잘 수 있도록 밤 수유 직전에 목욕을 시켜주는 편인데 평소에는 다리나 팔을 마사지해주면 좋아하던 아기가 목욕만 하고 나면 난리를 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여러 가설이 있었다. 첫째, 로션 냄새가 싫어서. 이것은 아닌것이 아침세수후에는 얼굴에 로션을 발라줘도 귀찮아할 뿐 엉엉 울어재끼지는 않는다. 둘째, 추워서. 이것도 아닌것이 우리 아기는 몸에 열인지 화인지 암튼 뜨거운 여자이고, 목욕 후에는 방을 훈훈하게 해두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기는 겨울이랄게 없는 남반구이니 패스. 셋째, 목이말라서. 이 가설이 그나마 가장 유력하다. 토할지 모르기때문에 수유전으로 타이밍을 잡은것도 그렇고, 어른들도 뜨끈하게 몸을 담그고 나오면 식혜 한 잔을 들이켤 정도로 갈증을 느끼는게 목욕아닌가.
처음에는 아기가 우니 로션도 제대로 못 바르고 체온도 제대로 못재고 밥먹이기 바빴지만 이제는 안다. 아, 너는 어차피 밥을 먹을때까지는 울 예정이구나. 그럼 나는 밥을 주기 전에 로션도 바르고 마사지도 하마. 조금은 태연하게. 이제 아기도 조금은 아는 눈치다. 울어도 소용이 없다는걸.
네번째, 빨래.
나는 빨래가 좋았다. 좋아하는 향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폴폴 풍기는 빨래를 햇빛 창창한 베란다에 널고있자면 나라는 인간에게서도 향기가 나고 상쾌해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빨래를 일주일에 한번 할 때의 이야기다. 아기 빨래, 어른 빨래, 수건 빨래, 속옷 빨래, 색깔옷 빨래, 하얀 빨래 매일매일 빨래지옥에 빠지게 되면, 빨래를 돌리면 걷어야하고 빨래를 개면 널어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어른 옷은 좀 게으르게 관리한다 셈 치더라도 아기 빨래는 그렇지 않다. 손수건에 속싸개에 아기 잠옷, 목욕수건 등은 매일 빠는편이 좋다. 빨래통이 작긴하지만 매우 빠르게 차오른다. 밥을 한 번 먹이면 손수건 두세장은 기본이고, 토악질이라도 하는날에는 애가 패션모델로 자라날건지 하루에도 서너번 옷을 갈아입는다. 흰옷은 입혀놓으면 예쁘고 귀엽지만 분유 토한 물이 들어서 죄다 노랗다. 지금도 잔뜩 널고 왔다.
네번째, 설거지.
3주 전쯤 완분으로 돌아서자 유축기를 씻는 수고는 덜었다. 대신 젖병 설거지옥에 빠졌다. 지금 나는 첫수유용 세트와 유축기에 달려오는 젖병까지 총 여덟개 정도의 젖병을 돌려쓰고 있다. 다섯개는 150미리짜리이고 나머지는 용량이 더 크다. 아기 먹는 양이 늘어나자 150미리 젖병은 크게 쓸모가 없다보니 하루에 두번이나 세번정도 젖병을 닦아 소독기에 넣는데, 이 일이 매일 반복되니 보통일이 아니다. 본 투 비 깔끔쟁이인 내가 그나마 열탕소독은 스킵한 것은 도저히 스트레스 없이 그것까지 해낼 용기가 없어서이다. 그래도 소독기가 한몫을 톡톡이 한다. 호주에선 비싸지만 찬양받아 마땅한 육아용품이 아닌가 싶다.
다섯번째, 캄캄한 밤.
나는 너무 밝은 것도 싫어하지만 너무 어두운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이전에도 조도 조절이 되는 등을 두고 잠을 자곤했다. 선잠으로 화장실을 다녀올 때 전부 꺼버리긴하지만 최소한 처음 잠을 청할 때는 희미한 불빛이 있는 편이 좋았다. 내 아기도 같은지 방에 죄다 불을 끄고 나와버리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깜짝 놀라 울어버리곤 한다. 지금은 괜찮다. 나 자신에게는 아기를 달랠 수 있다고 다독이고 아기에게는 '밤은 원래 깜깜한거야. 엄마는 불을 켜지 않을거야. 지금은 잘 시간이니까. 그렇지만 네가 무서워할때는 늘 곁에 있어줄게'하고 속삭인다. 그러면 아기는 스르르 눈을 감곤한다.
여섯번째, 뜻대로 되는일 하나없다.
바로 이게 50일간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아기는 얼마나 먹는지, 언제 재우는 것이 좋은지, 목욕은 매일 시키는건지, 안아줘야하는지,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아픈건 아닌지, 나도 자도 되는지, 배꼽은 언제쯤 들어가는지. --아기는 배꼽이 떨어진 뒤 살짝 탈장기가 있습니다. 신생아 탈장은 복벽이 아직 탄탄하지 않아서 그런게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만으로 두 살 이후에도 증상이 같거나 심하다면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6개월 이전에 좋아진다고 하니 걱정은 접으려고 합니다. 접종 때 물어는 보는게 좋겠지요.-- 출산 이전에 공부한 대부분은 쓸모가 없어졌다. 나는 고집만 있고 줏대가 없는 귀 얇은 엄마였더라. 아직도 갈피를 못잡고 휘둘리고는 있지만 나를 조금 안쓰러워하고 답답해하는 아기가 똘똘하게도 조금씩은 더 분명한 메시지를 주곤 한다. 절망적으로 들릴수도 있지만 '뜻대로 되는일 하나없다.'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 어차피 그렇다면 부딪혀보면된다.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뜻하지 않게 풀리는 때도 있으므로.
아기를 키우다보니 고작 한달 반만에 내 엄마의 노고가 떠오른다. 나는 많이 우는 아기였다고 한다. 밤새 아기띠에 들쳐업고 동네를 수십바퀴 돌아도 울음을 그치지 않더란다. 엄마 젖을 다 물어뜯어 피를 한 사발 하기도 했고, 뱃속에선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바람에 엄마는 수술을 해야했다. 내가 태어나던 때에 그 수술은 과연 산모에게, 내 엄마에게 안전한 것이었을까? 배 전체를 가로지른 커다란 흉터를 보고 있으면 그렇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간 엄마아빠 고마워요 사랑해요하고 카드에 적어 어버이날 전해 드렸던 것은 그래야할 것 같아서였다. 아기를 낳고 난 뒤에야 나는 엄마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고생하셨다 전했다. 비단 출산만이 그녀의 고난은 아니었겠지만.
글 처음에, 성장하는 것은 아기뿐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나도 처음 마주하는 엄마라는 막중한 위치에 대해서 부담되기도 하고 동시에 행복하기도 했다. 어느날은 우는 아기를 안고 나도 펑펑 울어대기도 하고, 어느날은 이런 정도면 하나 더 낳을 수 있겠다싶기도 하다. 배가 고파 울기 시작하는 아기 소리를 듣고 있으면 손이 달달 떨렸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기가 울더라도 엄마 밥은 잘 챙겨 먹으라고들 한다. 우는 소리가 들리면 쉽지 않다. 이제 대충 배가 고픈지 기저귀가 불편한지는 알것도 같다. 아기 기분이 좋으면 손발톱을 깎느라 애를 울리는 대신, 기분 좋을 마사지를 해준다. 이러면 배변도 더 쉽게 한다. 손톱은 잘 때 깎으면 된다. 어차피 말이 통할 때까지는 자는시간이 훨씬 길기때문에 조급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앞으로 최소한 20년은 포기와 용기가 필요한 것 아니겠나.
어렵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부모가 걱정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당장은 해결해줄 수 없는 것들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평온한 상태로 모든 욕구가 바로 해결되던 엄마 뱃속에 있을 때와 달리 아기들은 탄생과 동시에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한다. 뱃속에 가스가 차면 트림을 하든 방귀를 뀌든 해야하고 마사지 같은 도움을 받더라도 하루 한 번은 똥을 생산해야만한다. 급속도로 성장하며 생기는 성장통도 커다란 고통 중 하나 일 것이다.
아마도 부모는 이 모든 것을 도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가르치는 존재인지 모른다. 출생한지 50일을 넘긴 내 딸은 아직 무슨일이 일어나는건지 헷갈리는 눈치다.--사실 나도 헷갈려...-- 잠이 가득한 눈으로 하품을 해대면서 잠이 안온다고 화를 낸다. 속이 불편한게 분명한데도 트림할 자세를 취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다섯번에 한번은 아기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나머지 중 한번은 내가 뭘 도와야 하는지 내가 안다. 다음 주쯤엔 세번에 한번으로 확률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아마도 그 확률은 내 뜻대로 커지지 않겠지만 오늘도 우리는, 사이좋게 지내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