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 초산. 임신과 출산이야기.
엄마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모유.
엄마도 아기도 그렇게 생각하는거 맞나요?
온갖 사물이 가슴두짝으로 보이는 마법. 시작해볼게요.
먼저 이실직고하겠다.
나는 출산 20일만에 모유수유를 과감히 포기했다. 물론 과정에서 약간의 계기가 될만한 사건들도 있었지싶지만 아마도 '그게' 필요했던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러가지 이유로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모유를 끊은 것은 아기와 나, 남편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잘한 일이지 싶다.
나는 임신기간동안 모유수유를 크게 고려하지는 않았다. 직접 젖을 물리는 로망은 생겨났지만 모유도 나오는 사람이 있고 안나오는 사람도 있고, 잘 먹어주는 아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고 해서 수유관련한 것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제일 나중에 구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임신 5개월쯤이었나 애가 둘 있는 지인이 그래도 6개월정도는 모유를 먹이는게 좋다는 말에 혹했다. 이 조언이 시작이었던것 같다.
모유수유에 관한 여러 교육 비디오를 수없이 돌려봤다. 먼저 엄마는 편안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는다. 수유쿠션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야한다. 낮다면 추가로 베개를 받칠 수 있다. 아기를 수유쿠션에 눕히고 목 뒤 쪽을 손가락으로 살짝 짚어 위치를 잡아주고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잡아 아기가 입에 넣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준다. 이때 아기 머리와 목 배가 일직선 상에 와야 한다고 했다. 어른들도 머리만 돌리고 물을 마시려면 어려우니까. 아기는 엄마와 서로 배를 맞댈수도 있고, 럭비자세 처럼 안겨있을수도 있다. 익숙해지면 누워서도 수유가 가능하다. 아기가 엄마 가슴의 유륜까지 깊숙하게 물고 빨면 모유수유가 시작된다.
수유하는 법 이외에도 정보는 넘쳐났다. '아기가 엄마 젖을 물지 않는 경우 이렇게 해보세요.', '젖 양을 늘리려면 이렇게 해보세요.', '불가피하게 분유를 줘야하는 경우는 젖병을 쓰지 말고 숟가락이나 주사기를 이용해보세요.', '아기가 젖을 물지 않아 00개월 동안 유축해서 젖병으로 모유수유를 완모 했습니다.', '일주일정도 고생하니 젖양이 늘었어요.', '처음에는 젖병 바닥을 겨우 적시기만 했던 젖양이 이제는 5분만에 한통을 채웁니다.' 등등.
결론부터 말하자면 솔직히 나도 100퍼센트 최선을 다한것은 아니었다. 핑계를 조금 대 보자면 출산자체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던 탓에 수주를 어지럼증으로 고생했고, 화려한 곳에서 산후조리를 받는 한국 여자들을 보며 배가 아프기도 했다. 감정은 들쑥날쑥했다. 특히 모유수유와 아기 수면에 있어서 임신기동안 공부한게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 같고, 뜻대로 되지 않자 우울이 바닥을 쳤다. 세상 모든 게 젖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집 거실에 있는 조명의 그림자가.
생후 30일이 넘어간 우리 아기는 --글을 업로드할 때쯤엔 50일정도 되었겠네요. 정말 이뻐... 사랑에 빠졌...정신차리고 다시 모유수유 얘기를...-- 평균보다 살도 많이 찌웠고, 평균보다 잘먹고 잘자고 잘싼다. 지금은 아기만 건강하면 되었지라며 평온을 유지하는 중이지만 며칠 동안 고통의 연속이었다. 먼저 젖을 물리는 기초적인것이 문제였다.
이른바 캥거루 케어라고 불리는 이곳의 문화는 모유수유를 계획한 나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세상에 나온지 한시간도 되지 않아서 아기는 힘차게 내 젖을 빨아주었다. 물론 이때는 젖이 돌지 않기때문에 한방울도 먹지 못했겠지만 작은 생명체가 내 가슴팍에 파묻혀서 먹을거리를 찾는 모습만으로도 초보엄마는 뿌듯했다. 문제는 출산당일 밤부터였다. 갓태어난 아기의 위 크기는 고작 5미리 정도라서 하찮은 양으로도 배가 부른법이라고 한다. 아직 젖이 돌지 않던 나는 목이마르다 배가고프다 하는 아기를 생으로 굶길수가 없었다. 간호사는 아기를 안타까워하는 나를 위해 주사기에 작은양의 분유를 타왔고, 아기입이 새끼손가락을 빨게하며 주사기에 들어있는 분유를 급여했다. 간사한 초보엄마와 아기가 쉬운 방법을 터득해버리는 순간이었다.
제왕절개로 출산한 나는 젖이 도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짧다면 짧은 4~5일의 시간동안 이미 젖병에 익숙해진 아기가 먹는 양을, 내 젖양은 절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비교적 작은 힘으로 먹을수 있는 젖병을 경험한 아기는 내 가슴을 좋아하지 않았다. 모유수유를 직수하고자하면 고무로 된 젖꼭지의 사용을 최소화해야한다고 한다. 하지만 초보부모에게 숟가락으로 아기 밥을 먹이는건 엄두도 내기 어렵다. 시간이 허락하질 않는다. 배가 고프다며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에게 연습을 해야된다고 가슴을 물렸다. 엄마젖이 익숙하지 않은 아가는 유두부위만 잘근잘근 씹었다. 한두번을 제대로 물었는지 식은땀을 줄줄 흘렸지만 젖을 먹고도 배가고파했다. 그러면 마음이 약해져 분유를 조금타서주었다. 아기 성격이 나빠질까 젖병을 쥐어주었다. 내 가슴을 찾는일이 적어졌다. 모유양을 늘리는데는 직접수유하는게 정석이라고 하지만 젖꼭지부분이 너무 아파 아기에게 줄 수가 없었다. 젖꼭지를 보호해주는 실리콘 커버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내가 그랬다는데, 그때 엄마의 젖꼭지를 씹어 너덜너덜해졌다고 한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젖꼭지에서 피가났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지, 나쁜 기억 때문인지 내가 옷을 벗기만해도 아기가 울었다. 목숨을 걸고 낳았는데 아기한테 거부당하는 기분이 들어 속이 타들어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유축을 해서 수유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쉽지는 않다고 했지만 일단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
출산 2주전쯤 세일을 핑계로 사둔 휴대용 유축기는 부품이 너무나도 많았다. 유축으로 모유를 먹이려면 우선 양을 늘려야 하는데 초보엄마의 초유는 손으로 짜내 주사기에 한방울씩 소중하게 모아도 3미리가 될까말까였다. 적은양이지만 주고 나머지는 분유로 보충했다. 먹는 분유량에 비해 현저히 적은 모유지만 조금이라도 모이는 초유가 마음은 편안하게 해줬고, 아기가 황금똥을 싸면 내 모유덕분인것 같아 뿌듯했다. 우선 양을 늘리기 위해서 새벽 유축을 하기로 했다. 출근까지 남은 몇 주간 야간에 아기 돌보는 걸 자처한 남편이 맘마를 먹일 수 있도록, 나는 먼저 일어나서 모유를 유축해 주는 방식이었다. 듣기 참 괜찮은 분업 같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아기와 나눠야할 유대감은 사라졌고 웬 기계가 아무 감정도 없이 마사지를 시작한다. 생긋생긋 배네짓을 해야할 아기는 내 품에 없고 양쪽 젖에 끼워진 고무가 규칙적인 소음을 내었다. 그래도 내 아이가 먹을테니 힘내자. 기분이 좋아야 젖이 늘어나지. 자기위안은 며칠 가지 못했다. 두시간이나 길어도 세시간에 한번 텀으로 수유를 해야하는 초보엄마는 시간이 없었다. 젖을짜고 시간을 적고 유축기를 닦고 소독하고나면 금방 다시 젖을 짜야하는 시간이 온다. 매일 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아니다였다. 제시간에 눈을 떠 젖을 짜지 못하면 죄책감이 들었다. 무슨 엄마라는 사람이 자느라고 알람을 못 듣나. 이정도 고통은 감수해야 하는거 아닌가. 성공사례를 보면 더 고통스러웠다. 다들 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닌데. 최악은 양이었다. 부족하지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축량은 30미리를 넘지 못했다. 젖양은 늘지 않는데도 수유시간을 조금만 넘기면 매트리스가 흠뻑 젖을 정도로 젖이 줄줄 흘렀다. 양이 좀 늘었으려나 싶은 기대감에 유축을 해보면 어김없는 30미리였다. 초유는 진작에 끝났는지 색깔은 점점 하얗게 되었다. 그래봤자 30미리였다. 유축한 모유를 식혀서 몇 번을 모아 겨우 한번 수유할 양이되어 데웠다. 분유를 90미리씩 먹어치우는 딸은 모유는 50미리도 채 먹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나마도 죄다 흘리면서.
아기가 남긴 모유를, 눈물을 머금고 하수구에 버렸다. 어차피 재탕은 못하기 때문에.
양이 너무 넘쳐서 비누를 만들기도 한다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건 그것대로 처치곤란이겠지만 나는 처치가 곤란해도 좋으니 좀 늘어나라 늘어나라했다. 모유유축할 때 보면 좋다는 분수같은 것도 상상해보고는 했다. 젖병이 늦는다며 보채는 아기를 보고는 '바로 나오는 거는 네가 싫다고 해서 그렇잖아'하며 원망섞인 애교도 부렸다.
산후 우울감에 모유 유축까지 더해지니 나의 히스테리는 도를 넘었다. 이래가지고는 곤란하지싶어 유축기를 정리하고 분유를 주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처음에 그랬듯이 내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모유수유를 고집할때는 이래라저래라 말도 많던 조력자들도 분유로 갈아탔다고 했더니 우려와 달리 인정하고 응원해주었다. 마침내 와인도 한 잔 걸치고 매운 떡볶이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값비싼 유축기, 수유쿠션, 젖꼭지 보호대, 가슴 마사지를 위한 쿨링패드는 무용지물이 되고, 내 계획에 없던 분유 값에 젖병 씻는 일은 덤으로 얻었다. 양도 적은 주제에 젖은 늘리는 것만큼 줄이기가 어려웠다. 단유를 하고 열흘이 지난 지금도 샤워를 하고 나면 말간 물이 또옥하고 떨어진다. 가슴 전용 패드를 위해 속옷도 착용해야 하지만 젖병으로도 충분히 전해지는 엄마의 마음을 아기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는 출산을 여자가 해야한다면 최소한 남자가 '부유'를 생산해야 하지 않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하곤했었다. 완전히 분유로 돌아서고 나니 남편이 아기에게 밥을 주며 사랑이 샘솟는걸 지켜볼 수도 있다. 소소한 행복이다.
나는 지금도 아기 변이 조금 다르거나 이유를 모르게 칭얼거릴때면 모유의 장점에 대해 늘어놓은 글들을 떠올린다. 아기에게 안정감을 주고 분유보다 소화가 잘되어 속이 편안하다는 글도 떠오른다. 기껏 열심히 먹은 분유를 토해내는 아기를 보면 위장이 온전해지기까지 당연할 수 있는 토악질이, 내가 모유를 주지 못해 그런것은 아닌가 마음이 편치 않다. 새벽 수유에 나를 빤히 보는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할때면 젖을 물리지 못한 죄책감에 눈을 못 마주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도 마음을 다진다. 분유를 먹여도 모유를 먹여도 혹은 어떠한 이유로 당분간 내가 직접 맘마를 주지 못해도, 아기를 향한 마음은 변함없는, 누구보다 너를 귀히 여기는 나는 너의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