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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Apr 10. 2022

끈적한 피를 뽑아내며.

노산, 초산 임신과 출산이야기


 아기는 이제 태어난지 5주가 되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피곤해서 싸우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서로 안쓰러워하면서 지냅니다. 일로 복귀하는 남편을 대신해 밤당번을 서봤더니 이제야 그동안 그가 얼마나 피곤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짐작이 간댔지 화를 안 내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기는 며칠간 땡깡이 늘어난 상태를 유지해서 가족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지만 밥먹는 모습, 배내짓하는 것, 심지어는 똥기저귀까지도 사랑스럽습니다. 하루하루 자라나는 아가를 보면서 고작 며칠 전의 그 애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그렇다고 아기인 시절이 그리워서 둘째를 낳겠다는 건 아니예요...-- 계속 약간 무거운 이야기를 쓴 것 같아 서두에 사설을 끄적입니다. 천사가 인간세상에 왔으니 당연히 힘든 시간을 보내겠지하며 잘 지내보겠습니다. 오늘밤도 백일의 기적을 기다려봅니다. 비록 두 달이나 더 남았....크헉


 시작할게요.




 나는 임신성당뇨 환자였다. 오랜동안 당뇨환자인 엄마가 사과를 했다.




 24주 차. 임신성당뇨 판정을 받았다. 

 호주는 선별 검사는 따로 없는 모양이고, 한국에서는 확진검사라고 부르는 검사만 있는 듯했다. 생각보다는 먹을만했던 단물을--매우 단물-- 먹기전에 8시간 공복을 유지한 뒤 한번, 먹고 난 뒤 한시간, 그리고 두시간 째에 피를 뽑는다. 나중에 확인된 바로는 공복을 제외하고는 두 번 모두 매우 높았던 나는 2주 뒤 식이요법을 위한 교육이 결정되었다. 


 한국음식이 건강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은 당뇨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것 같았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이있다. 하지만 한국 전통의 찰진 미디엄그래인은 혈중 당수치를 높고 길게 유지해, 비교적 천천히 당이 오르고 당도가 높지 않은 인도쌀, 바스마티 쌀을 추천받았다. 대부분의 양념에 쓰이는 고추장은 숙성과정에서 단맛을 내도록 쌀을 쓰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탄수화물의 극단적인 제한은 좋지 않다. 탄수화물이 변성한 당이 부족하게 되면, 태아에는 지방이 변성된 당이 에너지원으로 쓰이므로 태아가 발육정도와 관계없이 살이 찌게 될 수도 있고, 이는 난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같은 원리로 다이어트에는 탄수화물의 극단적 제한이 이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유가 불급인게지요...-- 정보에 의하면 사람마다 당수치가 탄수화물에 반응하기도 하고 양념에 반응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음식은 고탄수에 짜고 맵고 달달하니 이게 혈당관리에 좋을리 없는 것이다. 식이요법으로 혈당 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면 인슐린이나 기타 약재를 쓰는 방법도 있다.

 당수치가 조절되지 않으면 태아가 출산직후 인슐린을 자가 생산하며 저혈당 문제를 일으키거나, 출산과 동시에 당뇨환자가 되어 매일 자가 주사로 관리해야 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고 한다. --동양인이 더 위험한 편이라고 합니다. 저는 가족력은 차치하고라도 노산으로 분류되기때문에 고위험군이었습니다. 물론 저처럼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거나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언급한 부작용이 발발할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으니 의사의 처방을 잘 따르면 됩니다.-- 이중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은 당뇨환자 중 태아가 돌연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는 연구결과였다. 이렇게 극단적인 부작용은 현성당뇨 환자가 임신 중 혈당관리를 전혀 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매우 불안했다. 


 불안감과는 별개로 괴로운 점은, 먹고싶은 음식을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탄수화물 중독자인 내게 가장 위험한 것은 떡볶이였다. 고추장도 안되고 떡은 더더욱 안된다. 정제한 쌀이나 밀가루로 만든 떡은 당뇨의 적이었다. 지난 30여년동안 일주일에 한번은 매우 매운 떡볶이를, 튀긴 치킨은 최소한 한달에 두어번은 먹은 나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나는 출산하면 엎드려 떡볶이에 소주를 먹겠다고 지껄이곤 했다. 단 걸 좋아하지 않는 나도, 못먹게하니 초콜릿같은게 당겼다. 식후 아이스크림은 한입으로 만족해야했다. 이 마저도 혈당이 한 번 치솟으면 겁이나서 못먹기가 일수였다. 평소 디저트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임신성당뇨판정이 전혀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테스트를 시험처럼 생각하고 가짜로 음성판정을 받는 경우 임부는 물론 태아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평소대로 행동하시고 검사받으면 됩니다. 동거인은 먹고 싶다면 먹어도 좋지만 후일은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운동도 병행했다. 걷기가 출산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행동으로 옮기는게 쉽지 않더니 당뇨소리에 발걸음을 움직인다. 아침에는 일어나 스트레칭도 하고 점심식사후에는 산책도 했다. 더운 나라에서 운동은 쉽지 않았다. 낮에는 뜨거워서 어려웠고, 밤에는 날벌레가 득실거려 어려웠다. 때때로 아기물품을 쇼핑하며 운동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남편은 몸이 무거운 나를 데리고 산책을 가거나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같이 쇼핑센터로 데리러 오고 가주거나 했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약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식이와 운동만으로 당을 조절하는 나에게 호르몬은 가혹했다. 어떤 식단이 줄곧 괜찮다가 33주인가에 갑자기 몸에 맞지 않는지 당이 치솟았다. 우리 병원에서는 공복때와 하루 세번 식사를 시작하고 두시간째가 되었을 때 손가락에서 피를 뽑아 혈당을 체크하게 되어 있는데, 나는 불안감에 식후 한시간 뒤에 확인하고 당이 높으면 운동을 더하고 두시간, 세시간, 네시간 뒤에도 피를 뽑아 확인하곤했다. --병원마다, 의사마다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시간대가 다릅니다. 어렵겠지만 인터넷은 그만보시고 지시 받은대로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꼭 하세요. 꾸준히 운동하는 것은 운동 당시의 혈당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신체가 당을 더 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식이와 운동으로 잡히지 않으면 태반을 통과하지 않아 태아에게 안전한 인슐린을 쓰면 됩니다. 혈당수치에 가장 안 좋은 것은 스트레스입니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힘내세요.-- 이틀을 꼬박 아무리 애를 써도 좋아지지 않는 당수치를 보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나쁜엄마야하며 엉엉 울었다. 

 주수가 늘어날수록 아침을 차려먹는게 점점 힘들어졌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어떤날은 12시 이전에 일어나지도 못했다. 삼시세끼를 건강하게 잘 먹는게, 혈당을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게 조절하는게 당뇨 관리의 기본인데 나는 기본조차 못하고 있었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이것하나 제대로 못하나싶어 우울했고, 행복한 임신기를 보내야 아기한테도 좋을텐데 스트레스가 높아 더 기분이 안 좋았다. 때로는 치팅 운운하며 먹고싶은 걸 먹어놓고 당연한 결과에 좌절했다. 당이 떨어지지 않아 다음식사를 해도 되는건지 수도없이 검색했다. 연관검색어가 가장 무서웠다. 잘못되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은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주사를 맞고 싶은 지경이었다. 

 하루 걸러 하루씩 뱃속의 아기에게 뭔가 일이 생기는 끔찍한 꿈도 꿨다. 친구들에게조차 터놓고 말하지 못했다. 아기를 잉태한것 자체가 어떤 이들에겐 부럽고 속이 상한 일일테다.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지만 눈치를 보는 사람은 있더라. 몇번의 전화 상담 뒤에야 미드와이프는 이정도 수치는 약물치료나 인슐린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이야기해줬다. 아마도 혹시 관리가 해이해질까 싶어 조심한게 아닌가 싶다. 



 엄마에게 말했다. 당뇨 판정을 받아 식이조절도 해야하고 운동도 해야한다고. 나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서 슬픔을 감지한 엄마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엄마의 사과는 당치 않다. '아냐 내가 너무 늙은 엄마기 때문이야.', '그래 네가 늙어서 이 엄마도 너무 늙었다 이제.'와 같은 농담을 서로에게 던진다. 가벼운 말이 무거운 마음을 들고 날아가 버리도록.

 엄마는 40대 초반에 폐경 판정을 받았다. 여성호르몬이 적어진 이후로 엄마에게는 많은 약이 필요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 갖가지 질병을 더디게 할 방법은 약뿐이었다. 지금은 식사보다 양이 많을 매일 먹는 약이 익숙해졌지만, 그때의 엄마는 폐경으로 인한 우울감을 딸이 선물한 음악앨범을 곱씹으며 버텼을지 모른다. 양희은씨의 '내 나이 마흔살에는' 노래가 들어 있는 테이프였다. 당뇨인으로서 지켜야할 생활수칙 같은걸 전화로나마 공유하며 나는 가리어진 엄마의 고통을 짧은 문장을 끄적이며 헤아려본다. 

 매일 자신은 맛없는 식사를 해도 우리에게는 진수성찬을 내 왔을 엄마. 아마도 수개의 김치냉장고는 나와 아빠를 먹이려 장만한 것이리라. 엄마를 위해, 한국에선 비싼 열대음식인 아보카도를 한아름씩 사온다는 아빠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늦었지만 미안하다고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다행히 아기는 당뇨환자로 태어나지 않았다. 생후 6시간동안 발에 상처를 입으며 세번이나 피를 뽑아야 했지만, 아기는 무슨일인지 알리 없다. 그저 울 뿐. 생채기가 난 아기의 조그만 발을 매만지며 나는 마음이 조금은 아프고, 동시에 다행이라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을 하고, 늦잠을 잔 나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조용히 뱃속의 아이에게 읊조렸었다. 고통스럽고 잔인한 것만 같은 이 시기는 내가 다 겪어낼테니 너는 잘 지어진 밥상에 수저나 하나 더 놓고 살라고. 



 내 아이가 수저나 하나 얹고 마는 삶을 살아내지는 않을거겠지만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려니 하며 오늘도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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