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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r 27. 2022

아기. 태어나다.

노산, 초산 임신과 출산이야기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38주쯤 진통이 걸려서 너무 커버리지 않은 아가를 자연분만하는 꿈. 내 심장보다 작을 아가의 이마에 입맞추고 안도감에 잠이 드는 꿈. 그래 꿈이 참으로 크구나. 와장창창창창창



 내 아이의 예정일은 3월 6일이었다. 평균을 산출했을 때 예정일 당일에 나오는 아가들은 5%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은 38~39주 사이에 나오고 40주를 넘겨서 출산하는 경우도 그만큼 많다고 한다. 나는 임신 중기부터 왜인지 모르게 예정일보다 빨리 아가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촉은 믿을만한 것이 못되어서 아가는 39주 정기검진까지도 어느때보다 활발한 태동으로 뱃속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의사는 아기도 크지 않고 내 컨디션도 매우 좋은데다 혈당관리도 잘 되고 있으니 41주 정도까지는 기다려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빨리 아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둘 다 건강하게 출산하는게 목표이니 나보다는 전문가일 의사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사실 너무 이상한 점은 우리 아가의 경우에 마지막 초음파 검사를 1월 31일, 그러니까 약 한 달 전에 받았는데... 그 이후로는 줄곧 자궁저길이(치골에서 자궁이 올라온 맨 위까지의 길이)만 재고 있으면서, 그나마도 밥먹으면 오차범위가 최대 5~6센티미터인데, 우리애가 안크다는건 어떤 근거로 말씀하시는 건지 저는 잘 믿음이 가지를 않...... 그러나 미드와이프의 의견은 달랐던 것 같다.

 호주는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 출산 전반의 모든 과정을 미드와이프가 진행하는데, 정기검진을 다녀온 하루 뒤 전화가 왔다.

 "산모가 임신성당뇨이고, 비록 식단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굳이 리스크를 만들 이유가 없으니 예정일에 유도분만합시다. 3월 6일 9시에 입원 준비해서 병원으로 오세요."

 맙소사였다. 우리부부가 늘 검진때마다 묻는 질문이었다. 이제와서라니 참으로 대단하다며 혀를 끌끌 참과 동시에 너무도 기대가 되었다. 아가는 어떤 얼굴일까? 열달을 품고 있어도 그립고 보고 싶은 감정이 솟구쳤다. 입원하기 전 마지막으로 외식도 하고 코에 바람도 좀 쐬이자고 남편과 이야기하고, 둘이서만 하는 마지막 외출을 준비하던 3월 5일 오전, 수월한 진행을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 2022년 3월 5일 토요일 D-1]

 13:00 코로나 검사

            우리지역은 확진자 수가 많지는 않다. 그렇다기보다는 병원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가 대도시에 비해 많이 적은데다 이날은 주말이라 병원이 매우 한가했고, 운이 좋아 진행이 잘 되면 월요일 밤이나 화요일에는 퇴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들떴다. 집에 갈 때는 둘이 아니라 아가와 셋이 가게 되는 거겠지 싶었다.


 14:00 내진 및 자궁경부 연화 호르몬 겔 투입

            목 뒤쪽 머리만 밝은 분홍색으로 염색한 상냥한 미드와이프가 내 담당이었다. 나의 자궁경부--임신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신체부위 중 하나--가 얼마나 숙화 되었는지, 쉽게 말해 아기가 나오기 좋게끔 충분히 부드러운지 열려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진을 진행했다. 21세기에 이걸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 미드와이프의 손가락 두개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은 채 진행하기 때문에 매우 불편하고 잔뜩 긴장한 근육들 때문에 금방 끝나지도 않는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수없이 들은 것처럼 굴욕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는 아니었다.--그냥 조금 많이 아플 뿐-- 내 미드와이프가 젠틀하게 나를 격려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는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에 그쯤은 견딜 수 있었다. 아직은 경부가 닫혀 있지만 매우 부드럽고 잘 늘어나기때문에 출산에는 어려움이 없을거라고 했다. 우선은 경부를 열어주는 호르몬을 넣었으니 잘 작용하는지 6시간 정도 지켜봐야 한다며 언제든 시작될 수 있는 진통에 대비해 입원이 결정되었다. 이때도 아가는 활발하게 태동하며 놀고 있었다. '아가 이제 방 빼야 해. 준비해서 쏙 나오렴.' 말도 걸어주고 입원실에 짐도 풀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환자가 아니다. 간호사도 미드와이프도 편한 옷 입고 편안하게 있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남편이 KFC에서 뭔가 잔뜩 사 왔다. 당뇨때문에 양껏 먹지 못한 패스트푸드는 적어도 나에게는 보양식이었다. 더이상 제로콜라에 만족하지 않아도 되다니 기분이 좋다.--임신성 당뇨를 겪은 산모는 이후에 진짜 당뇨로 진행되지는 않는지 검사를 합니다. 실제 두명에 한명은 현성당뇨 환자가 될 확률이 있다고 하니 적절한 식이요법으로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게 현명하겠지요. 그래도 치킨은 못 잃어요. 튀긴 건 다 맛있어요.

 따뜻한 핫팩을 등에 대고, 바디필로우로 몸 여기저기를 고정시키고, 가슴 아래로는 내릴 수 없는 맨투맨을 입었지만 생리통보다 약간 강한 통증은 불쾌하고 불편했다. 치골 가운데에 뭔가가 사방에서 압박하여 묵직하고 계속 변의가 느껴졌다. 실내온도가 살인적으로 낮은 병원에서 나는 추워서 떨다가 식은땀이 나고, 춥다고 껴입은 옷 때문에 더워서 다시 더운땀이 나고 했다.

 

19:30

            보호자는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는 귀가해야 한다. 하나둘씩 아내와 혹은 아기와 작별인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보호자들의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나도 저녁 내진 이후에야 진행 상황을 알 수 있고 집도 차로 10분 내외의 거리이니 대기실에서 밤을 보내겠다는 남편을 집에 보냈다. 2014년 이후로는 일하는 시간외에 나와 반나절 이상 떨어져 본 적이 없고, 일생을 집 안에 자기 혼자 있어 본 적이 없는 남편이 조금 가여웠다. 하지만 남편은 나를 더 불쌍히 여기는 것 같았고, 기회를 틈타 나를 충분히 불쌍해하도록 놔두기로 한다.

 혼자 있으니 시간이 더디게 갔다. 여덟시에 한다던 2차 내진은 감감무소식이더니 아홉시쯤 계획되었다고 했다. 임신 기간의 대부분 퀸침대를 독식하다가 병실의 싱글침대는 너무 좁았다. 검사가 끝나면 쉬면서 드라마나 봐야지 했다. 오산이었다.


21:00 2차 내진

            낮에 나를 돌봐주던 미드와이프가 교대했는지, 또다른 힙한 중년여성이 나를 데리러 왔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분만실 침대에 눕히고 태동 및 수축 검사를 진행했다. 이 시점의 나는 생전처음 경험하는 종류의 통증과 맞닥뜨리고 있었는데, 이는 설사가 마려운 생리 이틀째, 진통제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아픔이었다. 심호흡이 겨우 통할 정도로 충분히 아픈 것 같았지만 수축모니터의 숫자는 30을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나중에는 숫자가 100까지도 올라간다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벌써 눈앞이 깜깜했다.--미드와이프가 말하길, 기계에 표시되는 숫자와 그래프가 수축의 강도를 의미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곧 통증의 정도와 비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이는 표시되는 숫자가 낮아도 통증은 개인에 따라 크게 느껴질수도 있다는 뜻이다. 제가 특별히 엄살쟁이는 아니란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정기검진때도 이상하게 도플러를 피해다니던 아가는 계속 붙어있는 태동 검사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일분일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리 애에 대해 알리 만무한 미드와이프는 '아가가 엄청 해피하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20분정도 태동이 어떤지 추이를 보고, 내진 결과에 따라서 낮에 넣은 호르몬 젤을 더 써볼 수도 있고 벌룬 시술이란걸 할 수도 있다고 하더니 추운 방에 나를 두고 떠났다. 아, 핸드폰 가져올걸. 남편에게 상황을 알려줘야하는데 나는 몸만 달랑 따라오는 바람에 춥고, 여기저기 달려 있는 줄 때문에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아릿하게 조여오는 아랫배에 손을 올리고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아가야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위로가 필요한 쪽은 나였다.

 다시 시작된 내진은... 베테랑으로 보이는 미드와이프는 거침이 없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했던가 미리부터 아프고 실제로도 낮보다 아팠다. 한 번 생각이 거기에 꽂히니 힘이들어가고 심호흡은 소용이 없었다. 진통을 하다 더러는 차라리 지금 수술을 해달라고 소리치는 산모들이 있다고 하던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궁경부는 2센티 정도 열려있고, 대체로 이런경우 이대로 자연히 진행되도록 기다리면 되니 별도의 시술은 필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의사의 컨펌이 필요하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방에 두고 온 핸드폰을 가져다주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23:00

            춥기도 하고 나를 잊어버린듯도 해서 방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고 기분나쁜 통증이 지속되었다. 소위 '밑이 빠질것같다.'하는 느낌이었다. 치골사이에 끼인게 아기 머리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쉬이 어떤 자세를 취하기도 어려웠다. 병실의 침대는 인체공학적으로 신체의 위치에 따라 공기압을 달리해 눕기 편하게 만들어 준다. 놀랍도록 고요한 입원실 안에는 응급으로 들어왔다는 옆침대 산모의 끄응끄응하는 신음소리가 병실 침대의 공기압 소리에 파묻히고 있었다.


[ 2022년 3월 6일 일요일 - D-day]

02:00

            분명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코 몇 번 골며 선잠을 자고 나니 간호사가 나와 아기 상태를 점검하러 왔다. 내 혈압도 체온도 아가의 움직임도 괜찮고, 심장도 잘 뛰고 있었다. 그리고 통증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응? 뭐라고? 혹시 리셋된 건 아닐까?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는거 아닐까? 열렸던 자궁경부가 다시 닫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아까 내진 이후로 차도가 없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진통을 대비해 체력을 비축하는 것뿐이었다. 이후로도 매시간 상태 점검을 위해 간호사가 방문했다. 나는 불안감과 기대감에 휩싸여 잠에 완전히 빠져들지 못한 채 병실안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08:00

            여섯시에 온다던 지옥은, 그러니까 내진은, 어쩐 일인지 진행되지 않았다. 밤새 잠을 뒤척인 나는 따로 묻지 않았다. 기왕에 할거지만 잠깐만 더 쉬고 싶었다. 출산일이 될지 모르는 날의 첫식사는 씨리얼였고 남편의 샌드위치와 커피를 기다리는 중이었으므로 우유만 마셨다. 밤사이 나만큼이나 잠을 이루지 못한 옆 침대의 전우가 도플러 검사를 받는다. 내 아이건 남의 아이건 중력을 벗어난 자그마한 것들의 심장소리는, 그 소리가 작지만 단단하고 빨라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잠시잠깐 나에게 허락된 내 몸 안의 왈츠 가락.

 

09:00

            '준비됐어?'. 

 아니 전혀 안됐다.

 전 날 첫 내진을 해주었던 미드와이프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진결과는 내 예상과 맞아떨어졌고, 양수를 터뜨려 진행을 빠르게 유도하겠다고 했다. 작은 칼날이 달린 손가락에 끼우는 기구를 착용한 미드와이프가 한 번 더 물었다. '준비됐어?'


09:30

            만약을 대비해 수술용 주사 바늘 위치를 잡고, 수액과 촉진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이 촉진제는 분만 시 몸에서 만들어 내는, 자궁수축을 유발하는 역할의 인공 옥시토신이며, 어쩐지 병원에서는 이를 '고고 주스'라고 불렀다. 30분마다 2,4,8,12,16,20ml/분으로 투약용량을 높일 예정이며, 양수도 터뜨리고 주스도 넣고 있으니 곧 반응이 올거라고 했다. 웬일인지 미드와이프는 '오늘 마침내 아기를 만나네.'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나보다도 더 신나보였다.


12:00

            매시간 나의 상태를 점검해주는 미드와이프의 표정도 밝지 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전혀 진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여서 중간에 남편에게 식사할 시간을 줄 수 있을 정도로 태연했는데, 심지어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어 임신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이 몸이 가벼워진 느낌도 들었다. 예정일을 열두시간 정도 남겨둔 그시각 옥시토신 용량을 분당 16미리에서 20미리로 올리던 그때였다. 갑자기 헉소리도 내지 못할 통증이 찾아왔다. 침대 머리쪽을 기울여 끝을 붙잡고 심호흡을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대략 40초 정도 지속되는 고통이었다. 목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어떻게 해줄까 하는 남편의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하는 대답이 떠오르기만 하고 입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임신 중에도 여러번 보고 연습했던 심호흡이 빛을 발할 시간이다! 아니다. 못하겠다. 할 수가 없다. 심호흡은커녕 폐로 공기가 가기는 하는 걸까 싶었다. 더욱 절망적인것은, 이건 진진통이 아니었다. 간격이라 할 수 없이 20초마다 1분마다 어떨 땐 1분이상 어떨 땐 짧고 강하게 10초 정도. 통증은 잔인했다. 두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괴롭혔다. 특별한 의학적 소견이 없어 제왕절개는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간절하게 에피듀럴을 외쳤다. 


15:00  기다림은 고통

            진통은 쉬는 시간 없이 계속되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내 담당 마취과 선생은 바쁜듯했다. 두번만 더 바빴다가는 나는 진짜 죽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벽에 등을 대고 남편에게 의지해보기도 하고, 통증과 함께 계속된 변의로 변기에도 앉아보았지만 소득은 없었다. 


15:30  천국으로 가는 길.

            드디어 무통주사 시술에 들어갔다. 하지만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를 못했다. 마취과 선생은 새우처럼 구부린 척추에 바늘을 꽂아 적당한 깊이로 넣어 양쪽 하반신 모두 운동신경은 살아있으나 감각은 사라지게 만들어야만했다. 수없이 해본 척추마취일테지만 선생에게도 짧고 굵은 동양인의 척추는 처음일거다. 선생은 시술 전, 도중에 진통이 오면 멈출 수 있도록 알려달라고 했다. 문제는 내 진통양상이었다. 진진통으로 정기적이라면 진통 중간에 잠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시술은 10분 내외로 마무리가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는 진통 간격때문에 중도에 스톱을 30번은 더 외쳐야 했다. 마주 앉은 남편의 손이 부서져라 잡았다가 진통이 사그라들면 시도를 해본다. 도중에 바늘이 신경을 건드리면 선생에게 알린다. 선생은 다시 공간을 잡아본다. 진통이 시작된다. 거의 다 왔다. 한 번만 더 가면 된다. 이 말을 스무번쯤 들었을 때가 되어서야 테스트 약물을 넣어보겠다고 했다. 이상하게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무통 시술을 시작한지 4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16:30  천국에 닿다. 

            하늘이 도운 게 분명했다. 배꼽아래로는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얼음을 문질러도 차가운 기분이 들지 않았는데, 반대로 의지에 의해서 움직임은 가능했다. 현대의학의 승리다. 진통은 그사이 규칙성을 찾았고, 소변줄도 꽂았지만 아무 감각이 없었다. 내진은--사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일 뿐 감각들은 긴장을 했을지 모르지만-- 껌이었다. 잠에 들었다.


19:00  

            별 감각도 없는 다섯번째 내진이 시작되었다. 경부가 많이 열려 오늘 아기를 볼 수도 있겠다는 기쁜소식하나, 그리고 아가가 하늘을 보며 내려와 있다는 나쁜소식하나가 있었다. 보통은 분만이 임박하면 아기들이 회전하기도 하므로 조금 더 수월하게 돌 수 있도록 오른쪽으로 누워있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감각이 거의 없었지만 짐볼과 왼다리로 짓눌린 오른 다리에 쥐가 나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22:00

            곧디 곧은 선비같은 내 딸은 돌아눕지 않았다. 도는 척은 했다고 한다. 2도정도. 

 미드와이프의 보고를 받고 의사가 한 번 더 내진을 통해 확인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 2022년 3월 7일 월요일 - D+1]

01:10  아기. 태어나다

            자궁경부 숙화 질정 투입, 유도분만 촉진제 투여, 양수 파수, 눈물의 무통주사시술의 끝은 제왕절개였다. 슬픈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던 회음부 열상은 피할 수 있어 긍정적이었다. 내 아랫배에 무언가가 스치고 당기거나 하는 것 같았지만 통증은 없었다. 뱃속에서 열심히 숨쉬기 연습을 하던 태아는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아기가 태어났다. 






 정확히 280을 보내고 첫날 세상에 발을 디딘 아가는 3.28kg으로 건강했다. 키는 평균보다 조금 크지만 나를 닮아 팔이 짧은 작은 생명. 수술로 인해 가림막이 쳐져 있었고, 나도 남편도 과정을 지켜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의 첫울음이 들리던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한다. 수술실에서 핫팩과 데워진 담요로도 해소되지 않던 강한 추위가 순간 사라짐을 느꼈다. 의료진의 배려로 아기를 안고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수술이 마무리되었다. 중간중간 '당기는 느낌이 있을 거다.', '조금 불쾌할거다.' 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함께 있었지만 너무도 그리웠던 존재가 내 눈앞에 있다. 내 가슴에 파묻혀 있는 작은 생명에게 내가 외려 위안을 받는다. 나와 내 딸의 첫번째 이별이다. 우리는 오늘 탯줄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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