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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r 20. 2022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_ 하

노산, 초산 임신과 출산이야기


 다시 한번 말하겠다.

 단언컨대 임신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진귀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생각했다. 내가 뭘 하고 있는거지? 이렇게까지 하는거라고??



 전편에서 예고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정말로 다루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앞에 2시간마다 크기가 변하는 투명한 농구공이 있다고 치자. 우리는 이 공을 4시간마다 입구의 위치가 달라지는 투명한 골대안에 골인시켜야 한다. 그리고 한 번 실패할 때마다 공에는 뾰족한 돌기가 튀어나온다. 몇 득점이나 가능할까?



 임신 기간 동안 호르몬의 노예로서 ‘감정을 컨트롤하고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이 나에게는 투명한 공을 투명한 골대에 넣는 것만큼 어렵게 느껴졌다.


 아가가 들으면 서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삼십수년 평생 아기를 갖고 싶다거나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거창하게 들리겠지만……전세계적인 이슈로 오랫동안 거론되고 있는 환경문제, 이로 인한 기후문제 같은, 인간으로 말미암은 재앙이지만 이제 인간의 힘으로는 돌이키기 어려운 것들을 포함한 정치, 사회, 범죄의 진화 같이 내 손으로 막을수도 예방해 줄 수도 없는 많은 문제들이 현대사회에는 팽배해 있고, 범세계적인 카오스를 만들어 낸 질병 문제까지 나는 이 세상이 더이상 2세를 내놓기에 안전하지 않다고 진단해왔다. 나는 진화론적인 관점에서도 생태계를 위해 인간의 개체수가 현상유지 혹은 증가하는데에 숟가락을 얹지 않는게 좋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내 계산으로는 몹시 어려운 확률을 뚫고 내 자궁에 안착한 아이까지 낳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남들이 볼 때는 '뭐야 한입으로 두말하네.' 싶겠지만, 이게 사실이다. ……너무 거창해서 거슬리니 자세히는 읽지 마시기 바란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우리부부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 아니었지만, 맞벌이를 하며 몇 년 후에는 우리 손으로 가게를 차려 운영하자는 포부도 갖고 있었고, 둘이 열심히 해서 마당있는 집도 장만할 계획이 있었다. 큰 개도 키우자고 말했었다. 남편은 같은 직업군에서 나쁘지 않은 연봉으로 일을 하는 중이고, 나도 쉐프라는 전문직이 나쁘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었기때문에 아주 뜬구름 잡는 것도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임신은 이 계획들이 전부 뒤로 밀려날수도 있음을 의미했다.

 나는 평생을 갖고 살아왔던 무자식상팔자 모토를 과감히 버려야 했고, 남편은 갑자기 외벌이 신세가 되었다.


 초기의 드라마 같은 일들로 임신기간에 직장으로의 복귀가 어려워지면서 나는 내 인생이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다. 태동을 느끼는 게 신비롭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어떻게 되어 가는건가 하는 물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계획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엄마가 될 준비를 하면서 내 몸은 더이상 이전의 노동 강도를 견딜 수 없게 되어 가는 것만 같았고, 그나마 쥐꼬리만하던 직업적 열정이 꺼져가는 걸 눈 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아가는 언제쯤 프리스쿨에라도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걸까? 아니 애가 거길 가면 내가 직장을 가질수는 있고? 그럼 애는 누가 데리러 가지? 그럼 애기 시간에 맞출 수 있는 파트타임 잡을 구하면 되지! 그럼 나는? 답이 나오지 않는 기분이었다. 종국에는 아 이제 나에게 붙어있던 타이틀은 이제 다 떨어져 나가겠구나. 누구누구의 엄마로 살게 되는거구나.

 좋은 의도로, 위로를 목적으로,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바라는 의미에서 건네는 말들이 내게는 다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모든 말이 삐딱하게 들렸다. 죄책감 갖지말라는건 죄책감이 드는게 당연하다는 말처럼 들렸고,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는 말은 이 모든 일이 내 업보이니 받아들이라는 말로 들렸다.

 26주경,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았을 때, 아무에게도 표현하지 못했지만 나는 벌을 받고 있구나 했다. 사실 식단 관리든 운동이든 그래 정 안돼서 인슐린을 내 배에 직접 주사해야 한다고 해도 감수할 수 있었다. 휘둘리고 싶지 않고 여기서는 써먹지도 못하기에 맘까페에도 가입하지 않았지만 인터넷에는 너무 많은 글이 있었다. '임당 산모 두명 중 한명은 현성 당뇨 환자가 된다.', '첫째 때 임당이면, 둘째 때 임당일 확률 50%.', '당뇨 산모 태아 돌연사.' 겁이 났다.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을거라지만, 일이 나기전까지는 일이 생길지 안생길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나는 아기용품을 사거나 하는 일이 행복하고 즐거우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아주 조금, 이러다 잘못되면 이 물건들을 다 끌어안고 나는 더 슬퍼지겠구나 하는 불안감에 가슴 한켠을 잠식시킨 채 임신 기간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라도 그런 상상을 떠올린 죄책감에 한 번 더 괴로워지곤 했다.

 코로나 상황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임신 사실을 알린 후 줄곧 산후조리를 위해 부모님과 우리 부부가 계획했던 친정엄마의 방문계획이 전면 취소되었다. 기운이 빠졌다. 불똥은 어디로 튀었을까. 남편에게 소리를 쳤다. 너의 삶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것 아니냐고, 나는 내 몸, 생각, 미래가 갑자기 다 빼앗긴 기분이라고, 나는 너에게 출산 후 망가진 내 몸을 맡겨야 하는데 전혀 믿음이 가지를 않는다고, 계획도 없지 않느냐고, 그렇다면 너는 나를 무조건 이해해야 한다고. 애타령을 한 건 내가 아니라 넌데 왜 온갖 고통은 나 혼자 감수해야 하는거냐고.

 

 내 남편은 지극히 평범한 대한의 남아다. '이거해줘, 저거해줘.' 만으로는 어렵고, '이렇게해줘, 저렇게해줘.'까지는 설명해야 원하는 결과물이 나온다. 입력이 없으면, 출력이 없다. 직장에서는 어떻게 알아서 일을 잘해 인정을 받는 걸까 의문이 든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다 내가 교육을 잘 못 시킨 탓이라고 말한다. 가만히 두면 알아서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믿어주지 않고 일일이 이래라저래라하고 답답하다며 할 기회를 주지 않은 탓이라고. 남편도 결국엔 터졌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주었다. 출근에서 퇴근까지  12시간. 남편은 업무가 많은편이다. 관리자지만 관리업무는 실무가 끝난 뒤에나 시작할 수 있는, 한편으로는 야박한 업종이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나는 먼저 각방에서 잘 것을 제안했다. 점점 심해지는 코골이에 잠귀가 밝은 사람이 조금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배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몸이 점점 무거워졌지만 퇴근하고 돌아오면 먹을 수 있게 한 끼 정도는 차려주고 싶었다. 어차피 임당 산모는 부지런한 게 운동만큼 효과가 있겠거니 하고 컨디션이 좋으면 빨래도 하고 청소도 했다. 사실 다 내가 자발적으로 한 일이다. 하지만 억울했다. 따로따로 자자고 했지만 내가 밤에 통증으로 얼마나 뒤척이고 네댓 번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지도 그는 잘 몰랐다. 소리에 예민한 사람인데 침대에서 좀 일으켜 달라고 소리를 치며 불러도 못들었다고 했다. SNS에 게시되는,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운 동영상 메들리 같은 걸 보고 있었다고 상상하면 억장이 무너졌다. 면허도 없고 외벌이인 상황에 택시비를 쓰기가 미안하고, 혼자서는 다니기 어려워 일주일 내내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데 주말에도 잠을 자겠다니 그럼 아기 옷은 언제 사고 침대는 언제 조립한다는 건가. 아니다. 그도 부담감에 피로했을 것이다. 쉬는 날에도 면허가 없는 나를 데리고 아기용품을 보러 다니고 늦잠도 맘편히 푹 잘 수 없었을거다. 아니 그렇지만 임신에는 퇴근도 쉬는 시간도 없잖아! 나를 더 배려하고 내 생각이 뭔지 묻고 자유시간은 기꺼이 반납해야하는거 아냐? 그게 일심동체로 부부로 고통 분담하는 자세 아냐?


 하루에도 수십번을 나는 자제력을 상실한 감정과 이성적인 판단사이에서 발을 동동구르며 분노와 미안함을 반죽했다. 한동안은 밤마다 울었고 울고나면 뱃속의 아가에게 사과를 하며 한번 더 울었다. 그리고 다음날 정신이 들면 임산부 우울증 같은 단어를 찾아보곤했다. 그리고 남편은 이제 다시는 나를 자극하지 않겠다며 미안하다고 나를 달랬다. 아무 잘못이 없는 그는 자궁이 없어서 나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

 지인 중 하나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나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왔다. 자신도 유독 조울이 교차하는데 그 폭이 어마어마해서 힘들었다고, 그리고 그건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졌고 가족 모두가 이를 감당하는데 오랜 시간을 썼다고. 나에게도 올지 모르니 마음 잘 다잡으라고.




 출산 후 열흘이 지났다. 열달간 심신이 정복당한 이 숙주는 피부와 근육을 갈라서 아이를 꺼냈으면서도 회복도 채 하지 못한 몸으로 아가를 안고 목욕을 돕고, 수유를 하고 있다. 자동으로 제 몸은 뒷전이다. 남편의 서포트를 충분히 받고 있지만 그냥 쉬는건 본능이 허락하지 않는 엄마의 삶. 그래도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고, 남편과 두어번 언쟁이 있었지만 충분한 위로로 보듬어지고 있다.


 여자에게 엄마가 되는건 자기 자신을 갈아 넣는 일이라고들 한다. 이는 단지 태아가 어미에게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나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닐테다. 악랄한 호르몬의 시험을 마치고 더 단단해진 엄마는 아기가 태어나면 험난한 세상을 같이 이겨나갈 지혜를 얻게 되고, 아빠도 엄마의 시험을 이겨내 이 여정에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마도 앞으로도 많은 굴곡을 지나갈테고 나와 내가족은 함께 이겨나가려 무진 애를 써야할거다. 보이지 않는 공을 튕겨 생겨난 모서리들을 다시 깎아내고 부숴낼 모든 날들에 안녕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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