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샘 Jun 26. 2019

[퇴사하고 세계여행] 다시 똥머리가 된다.

(D+240, 프랑스) 퇴사하고 지른 단발이었는데 벌써 똥머리가 된다.


퇴사하고 세계여행, 2019.6.26

in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한 번도 귀 밑까지 오는 짧은 머리를 해본 적이 없다. 앨범을 넘겨보다 기억이 나지 않는 6살 시절 단발머리의 내 모습을 보면 나쁘진 않아 보였지만, 그건 어린이 특유의 ‘발랄함’ 프리미엄이 붙어서라는 걸 안다. 혹시나 어울릴 수도 있지만 망할 확률이 더 큰 단발머리에 모험을 걸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귀 밑  3cm’라는 두발 규정도 없었다. 늘 동경했던 단발의 세계에 서른 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시도했다. 늘 안전지대에 머물렀던 내가 평생 다닐 줄 알았던 회사도 그만두었고, 신혼집의 전세금까지 빼서 세계여행을 떠나는 판국에 단발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세계여행을 떠나기 5일 전 머리를 싹둑 잘랐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너무도 어색했지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느낌이 참 좋았다. 왜 드라마에서 여자들이 실연을 당하면 머리를 자르는지를 알 것 같았다. 버벅대던 컴퓨터에 ‘리셋’ 버튼을 눌러준 느낌이랄까.

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어울리지 않았다.
보통 한국인의 특성상 별로여도 ‘’괜찮다”라고 말을 건네는데, 새로운 머리 스타일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 했네?”에서 그쳤다. 오직 도치맘인 엄마만이 “예쁘다”라고 위로해주었다.

예전 같았다면 머리 자른 걸 후회했을 텐데, 남들이 뭐라 하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한번 ‘퇴사’와 ‘세계여행’이라는 카드를 지르고 나니 별로 두려운 게 없어진 것 같다.

예쁘진 않아도 무더운 동남아에서 치렁치렁한 긴 머리 대신 짧은 머리는 체감 온도를 2도 낮춰줬고, 머리를 감고 말릴 때마다 20분은 더 빨리 말랐다. 요가할 때는 잘 묶이지 않아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기기 일쑤였음에도 짧은 머리가 썩 마음에 들었다.




그랬던 내 짧은 머리가 이제는 똥머리가 될 정도로 길었다. 그만큼 백수로 지낸지도 오래됐다는 뜻이다. 동남아 못지않은 유럽의 무더위를 겪고 있자니 말끔하게 묶이는 똥머리가 단발보다 나은 것 같다. 역시 단발과 장발 모두 각자의 장단점이 있던 것이다.






묶이지도 않던 머리가 이젠 묶이다 못해 똥머리가 될 정도로 길 동안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이 여행이 내가 찾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아직은 여행 후의 삶은 모호하다. 하지만 머리 길이마저도 장단점이 있듯이 여행을 하며 느낀 장단점이 그 답으로 인도할 것이다.

아무래도 머리를 허리까지 기를 동안은 여행을 더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하고 세계여행] Life goes o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