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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Dec 30. 2019

백수의 신년 목표는 책 출간

내년 여름, 생일선물로 내 책을 만들어야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때부터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책을 내고 싶었다.


유명해져야만 책을 낼 수 있는 줄 알았기에 그나마 할 줄 알던 공부를 열심히 했다. 유명인이 아닌 이상, 좋은 대학 가서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에 들어가 열심히 일해서 여성 임원이 되어야만 책을 쓸 수 있는 줄 알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언젠가에 책을 내기 위해 나의 이십 대는 엄마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좋은, 소개팅에 나가서 꿇리지 않을 스펙을 만들기에 급급했다.


열다섯부터 밤을 숱하게 보내며 특목고를,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학교를 가고,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어 하는 상위 외국계 회사에서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감사하게도 노력한 만큼 인생이 풀렸다. 하지만 어찌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렇게 녹록했으면 다들 평생직장처럼 다녔겠지? 회사 생활부터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승진을 빨리 하기 위해선 내 실력보다는 회사에서 잘 나가는 팀에 들어가는 게 중요했다. 취업준비생일 땐 회사나 직업이 중요하지, 팀까지 어떻게 알겠는가. 우선 들어와 보니 좋은 커리어를 쌓기엔 영 못 미더운 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게다가 들어와서 보니 임원, 특히 여성 임원의 일과 삶은 녹록지 않아 보였다. 회사에서 좋은 차를 받고 연봉도 두둑이 받겠지만 하나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여성이라 임원을 하는 역차별이라는 남자 직원들의 푸념과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여자 직원들의 시기까지.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겠지만 나도 그 떡 받아먹고 싶지 않아 졌다.


여성 임원을 달아야 책을 낼 수 있는데 어떡하지? 하지만 스펙을 쌓으며 나이를 먹는 동안 임원이 되지 않아도 자신만의 이야기로 책을 내기 좋아지는 세상이 도래했다. 그렇다면 굳이 따지도 못할 별을 위해 매일을 버티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회사를 나오고, 5년간 번 돈을 탕진하며 500일간 세계여행을 했다.  



책을 위한 전초기지, 카카오톡으로 아침 8시에 여행기를 보내주는 서비스를 벌써 시즌4째 연재하고있다. 일간백수부부아니었으면 글도 한자 안썼을 것 같다.





임원이 되지 못해도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좋은 세상에서 내 책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에 책을 내고 싶었다. 퇴사를 하고 세계여행을 다녀와도 망하기는커녕 잘 지내고 있는 전직 여행자들을 만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용기를 낸 것처럼, 세계여행을 마음속에 작은 불씨로만 남겨뒀을 이들에게 불씨를 지펴주고 싶었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 시간을 내어 인터뷰이들을 만나 아홉 개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퇴사 후 한 달만에 여행을 떠나며 여행 준비만으로도 벅차 결국 책은 못 냈지만.


여행 중에도 늘 책을 내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사부작사부작 일기와 SNS에 글을 썼지만 책과는 점점 멀어졌다. 게다가 초심마저 잃었다. 매해 새해 결심으로 글을 꾸준히 쓰기로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와 게으름으로 늘 꿈에 그쳤다. 그러다 여행을 떠나던 해,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나 다 되는 줄 알았던 브런치 작가에 두 번을 떨어지고 삼고초려로 드디어 브런치에 내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땐 회사에서 승진한 것만큼 기뻤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계정 아이디마저 가물가물한 지경에 이르렀다. 퇴사하기 전까지는 하루라도 빨리 퇴사하고 싶은 마음에 넘치는 화를 아침마다 브런치에 글로 풀어냈는데, 퇴사하고 스트레스가 사라지자 브런치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한국에 갈 날이 정해지고는 이제 정말 미루지 말고 하루에 30분이라도 글을 쓰겠노라 다짐했지만, 역시 결심은 작심삼일이었다. 멕시코에서 35일이나 여행을 하며 여유가 있었기에 글을 쓰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멍때리거나 SNS를 하느라 글은 못 쓴 채 과테말라로 넘어왔다. 과테말라 아티틀란 호수에선 아무것도 할 게 없어 보여 하루에 몇 시간이고 글을 쓰게 될 줄 알았다. 그것도 큰 오산이었다.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른다. 나는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과테말라에서 패기 좋게 하루에 한 꼭지씩 쓰고 한국에 가기 전까지 초고를 완성시키겠다는 야무진 계획은 점점 수포로 돌아간다.


2019년이 이틀 반밖에 안 남은 오늘, 세 번의 시도 끝에 찾아낸 브런치 계정에 로그인해 몇 번째인지 모를 다짐을 또다시 해본다. 내년엔 꼭 책을 내겠다고. 기한이 있어야 닥쳐서라도 하는 게으른 나를 잘 알기에 내년 여름, 말복날 태어난 내 생일에 맞춰 꼭 책을 완성해내겠노라고 다짐한다. 한 문장, 한 문단, 그리고 한 꼭지를 이 공간에 적어두어야지. 내년엔 퇴사와 여행이 준 영감들을 꼭 브런치 북으로 엮어서 세상에 내보여야겠다.


말하면 어느샌가 이루어진다니까? 책 쓰기 프로젝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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