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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May 14. 2020

세계여행으로 잃은 것.

 관계의 재개발

세계여행 종료 D+56



세계여행을 다녀와 연락처를 싹 다 갈아엎었다. 여행 중간에 공기계를 샀던지라 전화번호가 하나도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때그때 필요한 번호만 저장하고 있다. 오늘 친구 A를 만나면 외출하기 전에 A번호만 저장하는 식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목소리만 듣고 누군지 알아채지 못해 상대를 잠시 실망시켰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다.

여행 전 쓰던 핸드폰에 켜켜이 묵혀있던 10년 넘게 정리하지 않고 있던 연락처도 정리하고 있다.* 절반이 넘는 번호들을 지웠다. 그중의 반은 누군지도 기억이 흐릿해 메신저에서 프로필 사진과 대조해야 했다. 20대 초반 철없게 함께 왁자지껄하게 놀며 맺은 인연들이었다. 거의 결혼사진 혹은 아이 사진으로 프로필이 바뀌어 있었다. 그마저도 대부분 아기 사진이었고 옆으로 한참 넘겨야 결혼사진이 나왔다.

이 언니 아직 이 번호 쓰시는구나. 그런데 연락 안 한 지 8년은 넘었으니 번호 지우자.

미련 없이 번호를 지우고 나서 간결해진 친구 목록을 보니 허무하면서 시원했다.

* 아직 장 씨에서 멈춰있다. 김, 박, 이 씨 정리할 때가 제일 지루했다




어른이 되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싫은 사람을 덜 봐도 된다는 것과 친구에 덜 연연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며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도 하고 나쁜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도 관찰해보니, 행복감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이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깊이 있는 관계는 함께한 시간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나는 인간관계에서 무리하지 않는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결혼을 하면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들 하던데 세계여행을 다녀오니 또 한 번 인간관계가 재정립됐다. 거의 재개발 수준이다.

청첩을 계기로 다시 예전처럼 친해지거나 어색해졌듯, 여행으로 부재한 나를 어떻게 생각해주느냐에 따라 관계는 바뀌었다. 친한 줄 알았는데 여행 후 어색해진 사이가 있고, 반면에 별로 안 친한 줄 알았지만 여행 전후로 챙겨주는 마음에 다시 보게 된 인연도 있다.

한때 친했던 이들과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친해질 일은 거의 없다. 교우관계와 학업이 전부였던 그 시절 소우주를 사는 게 아닌 이상, 삼십 대의 삶에 예전 친구가 들어올 여유는 없다. 대출금, 이직, 출산 혹은 연애나 진로 변경 등 우리의 우주는 몇 년 사이 팽창해버렸다.

어렸을 적의 교우관계는 학연, 지연에 국한되어 취향을 찾아 커갈수록 점점 거리감이 들기 마련이다.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살아 같은 초, 중학교를 다니며 같은 반까지 됐을 뿐이다. 어렸을 땐 그 친구가 전부인 것 같고 집단에 속하느냐 마느냐가 인생 최대 고민이었다. 멀어진 친구들을 보면 속이 상했다. 그들끼리 모인 사진이 싸이월드에 올라왔을 때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던 적도 있다. ‘00 팸이었는데 나만 빼고 만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왕 유치)

예전 친구들과 멀어진 동시에 새롭게 만난 잘 맞는 친구들이 생겼지만, 이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간관계 총량 불변의 법칙’을 몰랐다. 새로운 인연이 들어오면 덜 친한 사람들은 나가는 게 인지상정인 것을. 나가게 된 인연의 대부분은 학교에서 만났다. 학교에서 친구를 만들 땐 취향, 가치관보다 좋아하는 연예인, 같이 다닌 학원이 더 큰 변수였다. 그렇게 피상적인 변수로 이어진 관계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유효하기 어렵다. 10년 지기가 될 줄 알았던 00 팸 친구들과 성인이 되어 만날 때마다 즐겁지 않았다. 관심사가 다르니 대화는 겉돌았고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기름(=나)은 걷어졌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차츰 안도했다. 안 맞는 사람들과 보내기엔 나의 시간은 너무 유한하기 때문에.

저장된 전화번호 수가 인간관계를 대변하는 줄 알았던 어렸을 때엔 생일날 자정에 12시 땡 하고 날짜가 바뀌었을 때 누가 먼저 생일 축하 연락이 오나 지켜봤다. 다음날이 다가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는지에 집착했었다. 축하 인사를 보내지 않은 친구와의 우정을 곱씹으며 우리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은 건지,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는지 셀프로 상처를 줬다. 생일에는 무조건 맛있는 걸 먹으러 가고, 다 함께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일케이크는 무슨. 초코파이로 대체한 서른둘 생일
생일날은 일출부터 보며 일찍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피곤하기만 한 나만의 의식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서른이 되던 해 생일날에 내던 연차도 내지 않고 회사를 나가 생일인 티 내지 않고 퇴근길에 요가를 했다. 비싼 레스토랑에 가는 대신 남편과 여느 날처럼 텔레비전을 보며 뒹굴거렸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맞은 만 서른 살 생일은 더했다.

스물 세명의 외국 친구들과 텐트를 치고 트럭을 타며 이동하는 투어 사흘 째였다. 아직 친해지지 않은 친구들에게 유난스럽게 생일임을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내 옆엔 남편이 있고 남편의 축하를 받으면 그걸로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싯적 관종 버릇을 못 버렸는지 시간이 지나 오후가 되고 밤이 될수록 서운해졌다.




아직 아침이라 어떤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있을까 신났던 때





나 몰래 그가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가이드 친구에게 미리 귀띔해 저녁 식사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려나?
혼자만의 공상은 커져만 갔고 밤이 되고 저녁 식사 자리가 끝날 때까지 평상시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서운함은 배가 되었다.




그러고보니 인생중 가장 이국적인 생일날이었다




하필 나미비아에서 오지로 들어온 탓에 휴대폰 전파조차 터지지 않고, 겨우 잡은 와이파이로 한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보내준 축하 메시지만 봤을 뿐이었다. 잔뜩 서운했지만 ‘나는 이제 관종이 아니야. 어른답게 생일도 의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보낼 줄 알아야 해!’ 라며 애써 위로했다.*


*물론 내색만 안 했지 마음속엔 서운함, 속상함, 실망감이 켜켜이 쌓여 며칠 후 한번 폭발하긴 했다. 나는 아직 멀었다.




생일밥은 길바닥에서 먹는 파스타. 너무 맛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여행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오니 인간관계에 한층 더 초연해졌다.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과의 만남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내 생일도 그냥 지나치는 판국인데 예전에 친했던 친구들에게 연락할 살가움이 많이 없어져버렸다. 연락하면 ‘언제 한 번 보자’로 끝맺는데 그 ‘언제’를 기약하기 힘들어 더 연락을 참았던 적도 있다. 재건축돼버린 인간관계에 약간의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친한 줄 알았는데 멀어진 인연을 보면 여전히 먹먹하다.


그러나 떠나간 인연만큼 여행하며 만난 새로운 진한 인연이 생겼다. 또 한 번 ‘관계 총량의 법칙’을 떠올리며 정신 승리를 한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라도 잘하자. 진짜 중요한 건 옅은 농도의 관계를 붙잡으려 하기보다 진한 사람들과 더 찐하게 보내는 거니까.




생일날 찍은 사진. 지금 돌이켜보니 잘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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