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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Oct 06. 2020

자주 지치고 뒤쳐지는 나를 위해

우리는 JYP가 아니니까

퇴사하고 세계여행 종료 D+200,이자 출간 일기



원고를 마무리하기로 한 지 한 달이나 지났다. 출판사와 미팅을 할 때만 해도 원고가 거의 완성된 상태라 바로 넘길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내 글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작아졌다. 내가 뭐라고 책을 쓰지. 이 평범한 이야기를 누가 시간을 내어 읽어줄까. 책을 읽으며 밑줄 그을 문장이 하나는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원고는 뭉개졌고 자기 검열의 늪에 빠졌다.

지치고 뒤쳐지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처음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는 베스트셀러 칸에 당당히 한 칸 차지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 그런데 코로나 19는 계획에 없었다. 여행의 막바지일 때만 해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마저 이렇게 한국인이 많은 걸 보고 여행산업은 매년 성장할 줄만 알았다. 그 시류에 맞춰 우리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여행기를 태워 보내려 했다. 하지만 여행을 쉬이 할 수 없게 된 요즘엔 남의 여행 이야기에 도통 관심이 없다. 대신 서점을 강타한 우울증 이야기를 하자니 나는 우울보다는 조울에 가까운 사람이라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쓰려는 이야기가 여행기는 아니다. 의례 남들이 좋다는 노선대로 살아오다 멈춰서 다른 길을 모색하는 옆 집 친구 이야기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즈음 꺼낼 법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세계일주는 뺄 수 없는 터닝 포인트였기에 여행 이야기를 뺄 순 없다. 이러면 여행기로 묶일 수 있어 이 시국에 책을 내기가 여간 조심스럽다. 글을 탈고하고 있는 요즘엔 1쇄에서 끝나지 않기만을 바란다. 이 원고 뭉치가 한 번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번 인쇄소에 다녀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작정할수록 마음만 급해지고 원고를 열어볼 수 없게 된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글쓰기에만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책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걱정 시간을 단축시켜주고 싶어서였다. 내가 워낙 오래 고민하고 회사를 나와 새로운 길을 가보겠다는 용기를 냈던 지라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게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말해주고 싶었다. 일일이 술잔을 기울이며 말할 수 없으니까 활자로 찍어내고 싶었다.

그런 고로 초심에만 집중하면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제된 문장으로 써 내려가면 되는 것이었다. 운이 좋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 고마운 일이고, 좋은 출판사를 만나 책 한 권으로 나오기만 해도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보다 오늘 아침 글을 쓴, 매일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면 많은 것이 편해진다. 무언가 멋있어 보이는 존재가 되려 하는 욕심은 우리를 지치게 하니까. 그게 마음처럼 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몇십 년째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JYP 박진영이 아니니까.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저 매일 하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몇 번의 자기 합리화와 응원을 거쳐 드디어 추석 날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예정보다 한 달 이상 늦어지는 바람에 이 책이 언제쯤 세상에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서점에서 휘리릭 넘겨 읽는 것보다 책장에 두고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는 책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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