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샘 Sep 21. 2020

따라 하면 나쁜 건가요?

아닌척하지만 누구보다 유행을 따르는 나


세계여행 종료 D+186



요즘 노래, 요즘 유행을 깔보는 경향이 있다. 음원 차트 1위보다 예전 노래를 찾아 듣는 편이다. 요즘 뜨는 맛집 앞에 줄 서있는 사람들을 한심한 눈초리로 본 적도 있다. 유명한 맛집 가보니까 별거 없다며 깎아내리면 내 취향은 높아지는 양 굴었다.

사실 몇 년 전의 나는 신상 레스토랑과 맛집은 무조건 가봐야 직성이 풀렸다. 군산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갔을 때 유명한 짬뽕 집 앞에서 4시간을, 그것도 한 겨울에 구두를 신고 줄을 선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원조집이 아니더라도 맛은 비슷했을 것이며 길바닥에서 시간을 보낼 동안 다른 곳을 갔으면 더 즐거운 추억을 쌓았을 텐데. 맛집과 그냥 식당 맛의 차이를 감별할 정도로 미식가도 아니면서 고집을 부렸다. 물론 지금도 여행을 가면 맛집을 찾고 사람들이 좋다는 카페에도 찾아간다.  

그렇게 맛집 탐방을 하며 회사 스트레스를 풀다 결국 퇴사를 하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쉬운 선택은 아니다 보니 보통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 같아 우쭐했다. 그런데 여행지에 가서도 늘 검색을 했다. 남들이 좋은 평점을 준 숙소를 찾으려 손품을 팔았고 멋있게 사진을 찍은 포인트를 알아내려 SNS를 염탐하기도 했다. 퇴사 여행을 떠나면 다를 줄 알았지만 보장된 효용을 남들과 같이 누리려 했던 것이다.

오백 일 동안 여행을 하고 나면 남들과 다른 ‘내 길’을 걷게 될 줄 알았지만 막상 그렇진 않다. 한 번 사는 인생 즐기며 살겠다고 회사를 나와 긴 여행을 하고도 돌아가지 않는 것이 얼핏 보면 기존 질서에 반하는 행보를 걷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다녀와서 돈을 벌기 위해 주로 일과 중 하는 일은 온라인 셀러와 주식 유튜브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부업 혹은 본업으로 뛰어드는 일들 중 하나다. 누구보다 시류에 편승해 마지않은 삶이다. 퇴사 여행은 ‘욜로’, 이후의 삶은 ‘재테크’ 트렌드의 한가운데에 있는 형국이다.
 


[시류에 편승하는 삶]

퇴사를 고민하던 2016년 무렵부터 ‘욜로(You Only Live Once)’는 전국을 강타했다.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편에서 류준열이 만난 혼자서 차를 운전해 여행하는 외국 여성의 메시지가 마음을 후벼 팠다. 그러다 회사를 나올 때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인 ‘소확행’ 열풍이 불었다. 나를 위한 사치, 시간, 여가 생활과 여행이 정당화됐다. 우리는 욜로와 소확행의 트렌드 파도 위에 올라타고 세계 일주를 떠났다.

그로부터 오백 일이 지나 한국에 돌아올 때쯤 바이러스의 확산과 비례하는 재테크 광풍이 불어 닥쳤다. 부동산에서 패닉 바잉을 할 정도인 밀레니얼 세대는 조금 더 작고 빠른 판인 주식 시장에 발을 담갔다. 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에 기꺼이 동학 개미가 되었다. 아마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굳이 화장실 칸에 들어가 주식 창을 보지 않아도 되니 더욱 활발하게 거래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욜로는 한 물가고 재테크 열풍이 불어 닥쳤다. 월급은 없지만 전세금을 남겨둔 우리 부부 역시 개미 행렬에 동참했다.

한국에 돌아와 남편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수단으로써 월급을 주는 회사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떠나기 전에는 하루를 바치는 회사니까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있어야 할 거라 생각했다. 자아실현과 현실의 간극을 매울 수 없자 결국 우리는 퇴사를 했고. 그런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돈을 버는 수단으로 회사를 여긴다면 그렇게 복잡해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증권 회사에 다녔던 남편은 제대로 투자를 해본 적 없었다. 이참에 공부도 하고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그는 시장이 다시 회복된 후에야 투자를 시작했다. 큰 투자 수익은 아니지만 우리 둘의 생활비 정도는 번다. 공부한 내용을 주린이(주식 초보자, 주식 어린이)를 위한 채널을 개설해 영상으로 공유도 한다. 주식에 관심이 많은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추니 신기하게도 달러로 광고 수익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투자 수익은 들쑥날쑥하지만 둘이 생활하고 가끔 여행을 갈 만큼은 된다. 남편이 주식 공부를 할 동안 나는 온라인으로 물건을 판다. 이 역시 부업이 활성화되며 각광받는 돈벌이 중 하나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근 일년 반동안 운영하던 기존 채널은 겨우 구독자가 천 명이 넘었는데, 주식 채널은 개설한 지 반 년만에 만 명넘는 사람들이 구독을 했다. 그렇게 어렵던 것이 트렌드 파도에 올라타니 수월하게 되어버렸다.

결국 ‘마이 웨이’를 걷는 줄 알았던 우리는 누구보다 트렌드를 앞장서서 따라가고 있었다. 다르게 사는 줄 알았는데 결국 남들처럼 사는 거였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나자 마음이 편해졌다. 꽃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더니 그토록 찾아 헤맨 꽃이 내 집 마당에 피었다는 시처럼, 나 역시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세계를 일주했지만 결국 알아차린 건 시류에 따라가는 내 모습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지금처럼 남들이 좋다는 것 다 해보며 그 안에서 행복해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따라하는 게 나쁜 게 아니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