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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Aug 09. 2020

우리는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둘 다.

나를 나답게 하는 건 뭘까. 오 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오백 일 동안 세계를 돌아다녀봤지만 여전히 모호하다. 요가, 글쓰기, 용기 혹은 소심함. 나다움을 규정할 그 어떤 단어도 찾지 못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나에 대해 통달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요가를 평생 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지만 본업으로 하고 싶진 않다. 떠오르는 생각을 활자로 백지 위에 풀어놓는 글쓰기도 사랑하지만 하루에 몇 시간 혹은 더 가끔 해야 재밌다.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떠난 용기가 나답다고 말하기엔 나는 아직도 안전한 선택을 고민한다. 대단한 인생의 실마리를 얻어올 줄 알았는데 여행은 답을 찾아주지 않았다.

서른이면 ‘이립’이라던데 나는 아직 무엇이 나다운지조차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꼭 한 단어로 정의를 내리지 않아도, 하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며 중고거래 어플에 큰 마음먹고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을 올리는 나, 뿌리면 금방 날아가지만 향이 좋아 향수를 지르는 나, 모두 나답다. 오래 고민하다 저지르고 다시 후회하기를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 모두 나다.

비단 물욕뿐이 아니다. 인생도 가볍게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해보고 싶어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 일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회사에서 제공해주던 건강검진, 적다고 불만이었던 성과급까지 그리울 때가 있다. 이만큼이면 둘이서 충분히 먹고살 수 있겠다, 싶다가도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랫동안 고심하다 용기를 내어 시작을 하고 잦은 실패를 하며 마음이 상하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시도하는 것. 시작과 실패,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으니 모두 해보는 과정에서 한 뼘 더 성장하고 두려움은 한 뼘만큼 줄어든다.

금 나오라며 방망이를 휘두르다 보면 은이 나올 수도 있다. 아무리 두드려봤자 금 안 나오니까 마음을 접는 태도보다는 뭐든 나올 때까지 휘두르는 결기가 더 마음에 든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한 단어는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알겠다.  


이것저것 마음 가는 대로 다리를 걸쳐놓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기 위해 소심하게 고민하는 나,

미니멀리스트가 됐다가 맥시멀 리스트도 되는 나,

모두 나다운 짓이라는 것. 우리는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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