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로마, 터키 요가
한국인이 요가 여행을 많이 가는 태국이나 발리를 벗어나면 요가 정보가 급격히 줄었다. 이럴 땐 구글 지도에서 ‘yoga’를 검색하면 된다. 가까운 거리의 요가 스튜디오가 있다면 웹사이트나 SNS 계정을 들어가 본다. 수업 시간표와 수업료를 확인하고 1일 권을 사서 요가 수업을 듣곤 했다.
요가 수업을 투숙객에게 제공하는 숙소는 거의 무조건 예약하고 본다. 그렇게 찾다 보면 좋은 숙소일 확률도 높다. 그렇게 태국 빠이에서 비만키리 리조트라는 자연 친화적인 곳에서 머물게 됐다. 빠이에서 두 번의 요가 수업을 들었는데 혼자 하는 수련보다도 기대 이하였다. 하나는 공간이 완벽하게 좋았지만 선생님의 성의 없는 태도가 불편했고, 다른 한 곳은 너무 영적이었다. (비가 몰아치고 인센스 향이 가득하던 그곳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강렬하긴 했다)
이마저도 영어로 된 정보가 잘 없는 미얀마 같은 나라에서는 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를 보고 찾아간 적도 있다. 12월의 미얀마는 정말 더웠다. 너무 더운데 보수적인 문화에 무조건 긴 바지를 입어야 하는 곳이었다. 미얀마 수도 양곤은 빈부 격차도 어찌나 크던지 길가의 걸인들 옆으로 서양인들을 타깃으로 한 레스토랑과 모던한 요가 스튜디오가 있었다. 눈빛에 삶의 고단함이 쩌들어있어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들어 가방을 고쳐 매게 되던 양곤. 힘들어 보이는 길가의 사람들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영상 통화를 하고 있던 모순적인 풍경을 보여준 곳이기도 하다. 국제 경영은 책으로 배울 게 아니었다.
양곤에서 열 시간 동안 야간 버스를 타고 바간에 왔다. 이곳에서 해야 할 것은 일출 시간에 맞추어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 수천 개의 파고다(불탑)를 보는 것. 하지만 우리의 관심 밖이다. 대신 탑 위에 올라가 그 열기구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두 눈에 담았다.
바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보트를 타고 넘어가 아무도 없는 강둑에서 해 질 녘 했던 요가였다. 그냥 이 공간이 너무도 이질적이라 다른 행성에 다녀간 기분이었다. 온 마음 다해 느낀 햇빛과 바람, 흙. 천년 전의 도시 바간은 욕심부리지 말고 마음을 내려놓으라 말해주었다. 여행지에서 요가를 하며 몸을 움직이고 그 공간의 공기를 마시면 여행이 더욱 진해졌다. 현지인들과 호흡하며 가까워질 수 있다. 머리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거꾸로 보는 여행지의 매력은 배가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다니는 도시마다 요가 수업을 찾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요가가 아니었다면 가지 않았을 인도까지 한 달을 넘게 있는 걸 보니 요가는 몇 년 하다 말 운동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여행을 떠나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는 목적 중 하나의 길은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인도를 떠나 유럽으로 넘어오니 세 달간 단 두 번 밖에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인도에서는 5천 원도 채 하지 않던 비용이 유럽에서는 3만 원을 훌쩍 넘었다. 수업 한 번을 들으면 하루 생활비가 사라지는 금전적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안 하는 관성이 몸에 배겨 요가 매트는 점점 짐이 돼가고 있었다.
‘짐도 많은데 매트는 버릴까?’
‘그래. 아시아에서 잘 썼으니 이만하면 됐어. 버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펼쳐보자.’
그렇게 삼 개월 만에 매트 위에 섰다. 늘 요가를 하며 의레 들어야 할 것 같은 인도풍 노래 대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하고 싶은 순서대로 몸을 움직였다. 5분만 하려고 했던 게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파스치모타나아사나(Paschimottana-asana, 다리 위로 상체를 폴더처럼 접어 내려가는 전굴 자세)를 하는데 문득 돌고 돌아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울컥했다.
결국 나는 매트를 버리지 않았고 다시 요가 수련을 시작했다. 숙소는 보통 에어비앤비가 아니면 캠핑장을 이용했는데 매트를 깔만한 작은 공간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날 이후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혼자서 하는 수련을 30일 동안 (물론 하루 이틀씩 빼먹고) 이어나갔다. ‘후굴 챌린지’라는 명목도 붙여 요리조리 몸을 움직이다 보니 절대 안 될 것 같던 왕비둘기 자세(뒤로 뻗은 무릎을 접어 양 손으로 발을 잡고 허리를 젖히는 자세)도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비록 요가원에서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움직이는 수업은 못 들었지만 매트만큼의 작은 세계에서 요가를 하며 여행이 더욱 풍족해졌다.
유럽에서 들었던 두 번의 요가 수업 중 하나는 에어비앤비 트립이었다. 로마는 길거리만 걸어도 유적지가 나오는 박물관 같은 도시다. 여자의 그 날이라 몸이 무거웠지만 로마에서만큼은 요가를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수업을 찾았다. 하지만 구글에서 찾은 요가 수업들은 모두 이탈리아어로 진행됐다. 우연히 에어비앤비 트립 서비스가 뇌리를 스쳤다. 늘 찾던 숙소 대신 검색어에 ‘yoga’를 넣었더니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 꽤 많이 나왔다. 그중 고대 로마 시대에 전차 경기장으로 사용됐던 키르쿠스 막시무스(Maximus Circus)에서 하는 요가 수업도 있었다! 이곳은 포로 로마노(Foro Romano)와 콜로세움(Colosseo)을 마주한 팔라티노 언덕(Palatino Palatine Hill)이 보이는 곳이었다. 로마에서 할 수 있는 수 백 가지의 여행 중 이것이야말로 가장 나다운 여행 같았다.
홀린 듯 수업을 신청했고 그 시간에 맞춰 모든 여행 스케줄을 조정했다. 여느 유적지를 도는 것보다 더욱 기대되는 게 요가 수업이었다. 결국 비싼 돈 주고 들어간 바티칸 투어가 예정보다 길어져 먼저 나와버렸다. 헐레벌떡 수업 시간에 맞춰 요가 스튜디오로 달려왔다. 콜로세움 근처에 위치한 고급스러워 보이는 아파트 1층에 있던 요가원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동양인 외모에 요가 장인 포스가 물씬 풍기는데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그녀와 호주, 미국에서 온 여행자 두 명과 함께 각자 요가 매트를 들고 5분 거리에 있는 키르쿠스 막시무스로 걸었다. 도착해보니 매트를 펼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안 해본 공간이었다. 전 날 시간이 없어 가지 못했던 팔라티노 언덕이 앞에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옆으로는 달리기를 하거나 반려견과 산책을 즐기는 현지인들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계단을 내려오자 차도의 소음도 크게 들리지 않는 요가 수업에 최적화된 장소였다.
한 시간 동안 선생님의 멘트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수업 직전까지 내리 5시간을 바티칸에서 걸으며 누적된 피로는 물론 그간 여행을 하며 쌓인 여독이 싹 풀어졌다. 신나게 걷고 나서 요가를 하는 건 감히 동남아 여행에서 마지막 코스로 마사지를 받는 정도의 일정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가장 나답게 로마를 여행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말랑해진 몸을 이끌고 로마 여행을 마무리했다.
터키 이스탄불을 떠나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기이한 지형이 펼쳐진 기묘한 도시였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새벽 4시 즈음 30만 원을 호가하는 열기구에 올라타 하늘 위에서 기암괴석과 일출을 만끽하는 것이다.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여행하는 날 열기구가 뜨는 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했다. 우리는 다행히 운이 좋아 매일 열기구가 떠올랐다. 하지만 아침잠을 포기하고 그 비싼 돈을 내고 열기구를 탈 열의까진 없었던 우리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대신 동이 틀 때쯤 침대에서 빠져나와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숙소 옥상 위로 매트를 들고 올라갔다.
옥상이라고 해봤자 아무것도 없는 시멘트 바닥이었지만 요가 매트를 깔기엔 충분했다. 매트 위에서 태양 경배를 하며 카파도키아의 일출을 맞이했다. 두둥실 떠오르는 열기구를 보며 몸을 움직이던 40분의 시간은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 중 하나로 꼽게 됐다. 다운 독과 머리 서기 자세를 하며 거꾸로 보는 열기구는 어떤 장면보다도 이국적이었다. 매트 위에서 해의 기운을 받고 형형색색의 열기구를 바라보며 호흡하는 시간 동안 나는 충만해졌다. 요가를 배워서 정말 다행이다. 요가는 이 여행을 완성시켜주었다. 매트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