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와 돈이 만나면

홍콩 취업을 고민하게 만든 요가 스튜디오

by 망샘



언제 와도 좋은 홍콩에 다시 찾았다. 겨울이라 가뜩이나 따뜻하고 날씨가 좋은 홍콩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좋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홍콩에선 2박 3일밖에 시간이 없었지만 홍콩에서 또 언제 요가를 해보겠냐며 요가원을 찾아봤다. 제일 많이 나오는 곳은 퓨어요가. 홍콩 센트럴과 으리으리한 쇼핑몰을 걷다 보면 큰 요가 광고를 계속 마주했다. 활동적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입고 땀을 흘리는 사진 아래엔 퓨어 요가, 피트니스가 쓰여있었다. 홍콩에서 만난 두 친구 모두 이곳 회원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1회 체험만 무려 5만 원이라 바로 마음을 접은 곳이었다.



홍콩, 2018.12


홍콩 거주자는 1회 공짜로 클래스를 들어볼 수 있지만 여행자는 1회에 $350(홍콩달러), 약 한화로 5만 원을 내야 들을 수 있다. 멋모르고 홈페이지에 체험 신청을 올렸는데 메일도 안 오고 일언반구가 없길래 따로 메일을 보냈더니 역시 홍콩 거주자만 공짜라고 했다. (가보니 비싼 값을 하는 이유를 단번에 알게 됐다)

점심을 함께 먹은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가 선뜻 자신이 무료 1회 수업을 듣게 해 줄 수 있다며 잠깐만 기다려 보라 했다. 어플로 ‘뚜뚜뚜’ 하더니 됐단다. 자기가 여러 지점을 다녀봤는데 홍콩 마천루가 보이는 페닌슐라 오피스타워 점이 제일 좋으니 여기로 예약해주었단다. 재밌게 요가하고 오라는 내 멋진 친구. 어진이 덕분에 홍콩의 마천루를 보며 요가를 하는 값진 경험을 했다. 이 날 나는 잠시 홍콩 취업을 고민했다.


이런 풍경을 보며 요가를 한다니


확실히 상업화된 곳이긴 하지만 아마 요가원 시설 중에 이렇게 크고 좋은 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뉴욕, 상하이 등 여러 지점이 있던데 그곳들도 이렇게 좋을 수도 있겠다. 비싼 값하는 전망과 시설을 자랑했다. 홍콩에서 상장도 준비 중이라던데 만약에 한국에 상륙한다면 어떤 곳에 어느 시설로 들어오게 될지 궁금해졌다. 탈의실은 한국 유명한 찜질방급으로 넓고 컸는데, 화요일 오후 4시 반 수업을 들었던지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크게 해서 유지가 될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남 걱정이 제일 쓸모없다고 6시 퇴근시간 클래스가 되자 이 넓은 곳이 탈의하는 여성들로 가득 다 찼다. 대단하다 퓨어요가.

​수업하는 수련실도 열개 이상으로 많았는데 운 좋게 하버뷰로 당첨됐다. 라운지가 있는 14층이 아니라 옷 갈아입고 한 층 내려간 13층에 스튜디오가 있었다. 또 한 번 규모 큰 찜질방에 온 기분이 들었다. 기본으로 깔려있는 매트는 무려 만두카였다. ‘만두카 by pureyoga’라고 각인되어있는 볼수록 놀라운 대자본의 요가 스튜디오. 외국에선 보통 수업이 끝나면 세정제와 수세미로 각자 매트를 닦는데 여긴 일사천리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걸레로 물청소를 해버렸다.


수업은 하타요가 1로 쉬운 편에 속했다. 인도 영어 억양의 남자 선생님이 천천히 수업을 진행해주었다. 오후 4시 반이라는 애매한 시간에도 삼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온 것도 놀라웠고, 다들 요가복이 현란한 거에 비해선 아사나가 잘 되지는 않아서 또 놀랐다. (요가복만 보면 선생님들인 줄 알았는데)

무엇보다도 딱 노을이 질 때라 어느 곳보다도 멋진 풍경인 홍콩 마천루와 바다를 보며 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5만 원이라는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홍콩에 살고싶어졌다


홍콩에 와서 만난 지인 중 동갑내기 여자 친구들은 모두 이곳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퓨어 요가를 다녀오고 그들과 만나서인지 커리어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졌다. 예쁜 옷과 가방을 메고 선망받는 회사에서 일하며 커리어를 쌓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나는 퇴직금을 까먹으며 소비하고만 있는 건 아닌가? 작년에 출장 가는 남편을 따라 놀러 왔던 홍콩에서는 커리어에 대한 ‘자극’을 많이 받았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대학공부를 했던 사람들이 멋있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멋있는 사람들과 일하는 남편한테 얹혀 놀고 있는 무능력한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내 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고 커리어를 발전시켜야겠다고 다짐했던 지난 홍콩행이었다.

그렇게 돌아간 회사에서 퇴사하기까지 약 1년 반 동안 나름대로 고군분투했다. 외국계 기업임에도 한국 기업보다 제한된 출장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내 능력과 열정이 부족해서였겠지만 연공서열로 부여되는 기회들에 적잖이 실망스러웠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로 나는 마모되었고 결국 내가 선망하던 기회들이 정말 좋은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건 퇴사를 한 많은 이유 중 하나지만 결국엔 그냥 내 돈으로 내가 하고 가고 싶은 곳을 다니며 뭐가 맞는지를 찾아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생들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 멋있어 보이는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백수 신분으로 다시 찾은 이번 홍콩에서는 멋있어 보이는 커리어를 쌓고 있는 동년배 친구들이 그저 멋있어 보일 뿐 크게 부럽지 않았다. 억대 연봉을 받고, 비싼 옷과 가방을 들고 좋은 곳에서 밥을 먹는 삶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고민과 힘든 일은 수두룩 할 지어니. 이제 그런 고충들을 조금이나마 알기에 마냥 부럽지만은 않다. 오히려 지금은 그런 멋진 친구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게, 그들에게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게 좋을 뿐.


그래도 개인적으로 뉴욕만큼 멋있다고 생각하는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매일 요가를 할 수 있다면 홍콩에서 일하며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 한 번도 생각지 않은 홍콩행을 고민하게 한 건 다 요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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