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만난 최고의 선생님

혼돈의 인도가 궁극에는 좋았던 이유

by 망샘


인도에 오면 안되던 아사나도 척척 될 줄 알았다. 물구나무서기도 하고 허리도 부드럽게 꺾어 왕비둘기 자세(에카파다 라자카포타사나, 두 손을 어깨뒤로 넘겨 발을 접는 후굴 자세)도 하게될 줄 알았다.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뼈가 시릴 정도로 추운 북인도 리시케시에서 난방이라곤 없는 요가원 바닥 위에선 잘 되던 동작마저 몸이 굳어 할 수 없었다. 인도에 오면 요가 고수가 되거나 인생을 깨우치겠다는 요행은 접어두기로 했다.

마음에 맞는 요가 수업을 찾아 새로운 아쉬람에 도전한 지 사일째만에 인도에 오며 기대했던 선생님과 수업을 만났다. 몇몇 한국인들이 블로그에 남겨준 곳 바로 옆에 있는 요가원이었지만 어찌된게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1층에 영어로 시간표와 수강료가 큼지막하게 써있고 드랍인(drop-in) 수강료가 저렴했다. 시간표와 선생님이 적혀있는 화이트 보드엔 유독 한 선생님 이름 앞에 별표가 쳐져있었다. 다른 사람은 그냥 대니, 샐리 등 이름이었고 그분은 이름 앞에 호를 붙이듯 ‘yogi’ 디네쉬였다. 이곳의 간판 강사겠거니 감이 왔다.


아침 9시에 열리는 그의 하타요가 수업을 듣게 됐고 그 날로 우리는 5회권을 결제했다. 요기 디네쉬는 늘 5분씩 지각을 했고 작은 단상 위에 향을 피우고 한 번 절을 했다. 그 후 태연하게 사과없이 수업을 진행했지만 괜찮았다. 매일 다른 시퀀스로 몸을 열어내고 초보부터 숙련자까지 모두에게 도전적인 아사나를 주었다. 요가를 처음 한다는 수강생에게도 물구나무서기를 시켰다. (물론 그가 일일이 안내하고 잡아주었다) 웬만한 내공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단 걸 알기에 더 좋았다.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수업을 풀어나가는 여유. 나는 이 여행이 끝나면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요기 디네쉬의 수업을 매일 아침 듣고 있지만 안되는 동작은 역시나 혼자서는 역부족. 특히 핀차마유라사나는 내 안의 균형을 잡는 게 이렇게나 어렵고 섬세한 작업이라는 걸 할 때마다 깨닫게 해준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못한다. 하하) 힘과 집중하는 마음을 다잡는 것,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과정이 힘이 들 수 밖에 없겠지. 오늘도 나의 한계를 알고 조금이나마 발전하고자 했구나.









인크레더블 인디아




이렇게 마음의 평화를 얻어가나 싶었지만 떠나기 이틀 전 세탁소에서 말로만 듣던 악명높은 인도인 사기꾼을 만났다. 빨래를 찾으러 갔더니 흰 티셔츠에 얼룩이 크게 묻어 있었고 빨래는 아직 축축했다. 다시 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다음 날 갔더니 타지마할에서 입으려 발리에서 공수해온 바지가 찢어져있었다. 처음엔 빨래에 바지만 쏙 빠져있길래 행방을 물었더니 횡설수설했다. 추궁하니 그제서야 자기 방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내 바지를 들고 나온 나쁜 놈. 옥상 건조대에 걸어뒀는데 원숭이가 찢었단다.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말해야할지 몰라 같은 바지를 구하려고 자기 방에 두었다는 창의적인 변명을 이어나갔다. 결국엔 세탁소 아래 층에 있던 옷가게에서 새 바지를 하나 사주는 걸로 일단락 됐다. 화가 나고 무서웠지만 리시케시에서 배운 넉넉한 마음을 마음에 새기자 다짐했다. 나마스떼-



리시케시를 떠나 혼돈의 도시 델리에 와서 하룻밤을 지내고 2시간이면 가는 아그라 기차를 탔다. 걱정보다 쾌적했다. 무려 타지마할이 (멀리서) 보이는 5성 호텔을 예약한 우리. 이때까지는 모든게 순조로웠다. 호텔에 들러 짐을 맡기고 타지마할 관광을 기다리는 사이 사단이 났다. 로비에서 가방을 멘 채 일어나다 가방에 달려있던 자물쇠가 그만 옆에 있던 유리 스탠드를 깨뜨려버렸다. 결국 체크아웃을 하며 스탠드 배상을 방값보다 60퍼센트가 비싸게 청구당했다. 그래 여긴 인도지. 착한 사람도 많지만 5성 호텔에서도 이렇게 일처리를 하는 곳이 인도였다. 3일 전 세탁소와 바득바득 싸운 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큰 돈 아니라며, 여권 안 잃어버리고 몸 다친 데 없으면 다행이라며 다독였다. 지금 내가 와있는 도시를 즐기는 우리의 다독임이 더 중요한거겠지. 어째 인도에서 도를 깨우치긴커녕 화만 느는 것 같다.


저멀리 타지마할이 보이는 애증의 호텔




리시케시와 아그라에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애써 추스리며 우다이푸르에 왔다. 인도인들이 신혼 여행을 올 정도로 아름다운 이 도시는 에코백을 메고 다닐 수 있는 정도의 치안과 무려 뚝배기에 라면을 끓여주는 한식당이 있는 곳이었다. 심지어 압력솥밥에 닭도리탕을 요리하는 곳도 있다. 놀라운 건 요리사는 모두 인도인이다. 저렴한 물가와 다양한 한식이 있는 이 곳에서 요가를 하며 세탁소와 호텔과의 싸움으로 가득찬 화를 풀어냈다. 시티 팰리스를 보며 요가하는 수업은 단돈 8천원이었다. 혹은 도인같은 인도 할아버지 요가 수업을 듣기도 했다. 기부 형식이지만 무임 승차가 많은지 최저 기부금을 명시해둔 할아버지. ‘인도여행’하면 떠올랐던 수많은 부정적인 편견과 반대되는 하루였다. 편견에 사로잡혀 고지식한 사람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겠다고 알려준 인도였다.







아쉬탕가 안좋아하는데 굳이 마이솔에 갔다



우다이푸르를 떠나 인도 마지막 행선지인 마이수루에 도착했다. 보통 ‘마이솔’ 클래스로 익숙한 이 곳은 아쉬탕가의 아버지인 파타비 조이스의 아쉬람이 있는 곳이다. 전 세계 아쉬탕가 수련자들이 세 달전부터 그의 아쉬람 수련을 광클릭으로 예약해 한 두달씩 매일 새벽 여섯시부터 수련하는 그런 곳이다. 선생님 눈에 잘 띄는 곳에 매트를 깔기 위해 수업 시작 몇 시간 전부터(새벽 4시...) 줄을 서는 요기니들이 가는 곳이 마이수루다.


한국에선 한 번도 아쉬탕가 마이솔이나 레드 클래스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애초에 아쉬람에서 수련할 생각없이 왔다. 마이수루에 왔다고해서 안되던 아사나가 뿅!될 리 없다. 리시케시에서 이미 경험했다. 오히려 수련하지 않은 몸은 딱 그 만큼만 보여주었다. 노력하지않고 요행을 바라는 못된 마음만 버려도 인도 여행은 충분할 것이다.



그 유명한 파타비 조이스 샬라



아쉬탕가에 대한 욕심도 버렸다. 월요일 아침에 우리가 좋아하는 요가를 함께 하고 끝나고나서 400원 생과일 주스를 한 잔씩 마시는 딱 그 정도가 좋다. 비건인데도 맛잇는 브런치를 먹고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자는 일상. 이보다 몸과 마음이 편하던 때는 없었다. 심지어 인도는 배달의 민족이었다. 아이스크림조차 핸드폰으로 배달 주문할 수 있는 마이수루. 매일 늦잠을 자고 게을리 집을나서 브런치를 먹고 약간 자괴감이 빠져 5시 요가 수업을 들으러 나왔다. 매일 35도에 육박하는 열기가 조금은 식어있는 거리가 요가가는 길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다소 겁을 먹고 들어간 백벤딩&힙 오프닝 수업. 딱 내가 찾던 아사나가 팡팡 축제 불꽃처럼 터지는 수업이었다. 두 번째 들어간 후굴 수업은 더욱 빡센 남자 선생님이 진행하셨다. 취약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도전한 내가 뿌듯했다. 조금씩 가슴이 열리고 단단해지는 느낌에 요가를 한다. 마이수루라는 요가의 도시에서 땀흘릴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 날은 알람을 연기하고 늦잠자기 일쑤였던 평소와는 달리 7시에 벌떡 일어났다. 8시 아쉬탕가 수업을 듣기 위해. 역시 좋아하는 일을 대하는 자세는 이렇게 차이가 나오나보다. 네 번의 아쉬탕가 수업동안 비록 원하는만큼 마스터하진 못했다. 그래도 첫 수업 후 느꼈던 속상함 대신 성취감이 자리잡았다. 몸에 좋은 한약같아 가까이하기엔 거부감이 들었던 아쉬탕가와 다시 친해진 것 같다.

마이수루를 끝으로 인도에서의 5주 여행이 끝났다. 물갈이도 안하고 크게 사기 당한 것도, 잃은 것도없이 무사히 인도에서 5주나 보냈다. 비록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려 액정이 크게 깨져버렸지만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으니 다행이다. 요가 하나만 보고 온 인도, 대단한 인생의 깨달음 따위는 얻지 못했지만 조금은 열린 마음을 안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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