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룰루레몬을 입는다

운동은 장비 빨, 쇼핑은 과학입니다

by 망샘



요가가 좋은 많고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간결함이다. 매트 하나만 있다면 바다, 산, 미국, 아프리카 어디서든 요가를 할 수 있다. 사실 매트가 없어도 할 수 있다.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나 요가복도 굳이 입지 않아도 괜찮다. 실제로 요가의 본고장 인도에 가면 선생님들은 모두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었고 고무 매트보다 넝마 같은 걸 깔아 둔 곳도 많았다. 하지만 모든 운동이든 개인적으로 중급 이상의 숙련자로 올라가기까지 장비의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요가원에 가기 싫은 날도 새로 산 요가복을 입고 싶어 가게 되고, 새로 산 매트가 손이 밀리지 않고 쫙쫙 달라붙으면 안 되던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같은 후굴 동작도 잘 됐다.

세계여행을 떠난 2018년의 마지막 날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요가를 했다. 역대급으로 땀을 배출한 뉴요커 남자 선생님의 하타요가 수업으로 올 한 해를 디톡스 한 느낌이었다. 요가 후 샤워까지 마치고 내려오니 룰루레몬 매장이 우리 보고 구경만 하고 가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결국 빈 손으로 들어가 나올 때는 각자 쇼핑백 하나씩 들고 나왔다. 우리에게 내년에도 (장비의 힘으로) 잘해보자는 의미로 각자에게 요가복 하나씩을 선물했다. 무려 신용카드로 질렀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뉴요커 선생님과 히잡을 쓰고 요가하던 현지인



쇼핑은 과학입니다




세계여행을 하며 이것이 마지막 쇼핑일 줄 알았으나 큰 오산이었다. 자동차를 빌려 유럽여행을 할 당시 시부모님이 놀러 오셨다. 체코 프라하에서 만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돌로미티를 지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끝나는 일정이었다. 독일은 왠지 마음이 동하지 않아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이번 여행도 그랬다. 로맨틱 가도라는 길도 큰 감흥이 없었고 디즈니 성이라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로텐부르크, 뮌헨, 뷔르츠부르크까지 갔지만 감동이 없었다. 부모님이 가고 싶어 하셔서 독일 일정을 길게 잡아서 더욱 마음이 가지 않았다. 마지막 여행지인 비스바덴까지 가는 날 역시 크게 설레지 않는 하루였다. 리슬링 와인 산지인 뷔르츠부르크의 어느 쇼핑몰 옥상에서 싸고 맛있는 와인을 한 잔씩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쇼핑을 하긴 해야겠는데 이 쇼핑몰에선 마땅한 게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 근처에 아울렛이 있나 찾아만 볼까? 마침 숙소로 가는 길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곳에 아울렛이 하나 있었다. 아버님은 가죽 벨트, 어머님은 냄비를 사고 싶다 하셨다. 두 분 쇼핑이나 보조하겠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아니 글쎄, 룰루레몬이 입점해있는 것이었다. 본국인 캐나다에서도 비싸다는 그 룰루레몬은 기본 가격도 저렴한데 3개를 사면 25퍼센트를 할인해주는 등의 파격 세일 중이었다. 게다가 독일은 외국인들에게 소비세가 면제되어 더욱 저렴했다. 룰루레몬 요가복을 거의 뮬라 웨어 가격에 살 수 있는 이곳은 천국이었다. 저만치 떨어져 있던 의욕이 갑자기 급상승하여 엔도르핀이 마구 돌았다. 역시 쇼핑은 과학이었다. 감히 독일 여행 중 가장 신나고 재밌는 일정이었다.



쇼핑은 과학이다 정말로




쇼핑에 큰 취미가 없는 줄 알았으나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옷을 입어보고 골랐다. 물욕이라는 것이 폭발했고 이미 가죽 벨트와 냄비 구매를 끝내신 시부모님은 넋 나간 며느리를 기다려주셨다. 넘치는 아드레날린을 겨우 눌러 담고 옷 4개 구매로 쇼핑을 마쳤다. 한국에서 레깅스 하나 살 가격으로 남편과 내 레깅스 2개, 재킷, 상의까지 샀다. 숙소로 돌아와 바로 요가복을 개시했다. 새 옷을 입으니 평소 안되던 후굴 동작도 잘 됐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쇼핑은 과학이다. 이 날을 위해 아껴가며 여행한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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