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퇴사할 거야.
이번엔 진짜야.
술자리에서 하던 푸념이 아닌,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한다고 하니 모두가 물었다.
불안하지 않냐고.
거기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덧붙였다.
금수저냐고.
믿는 구석이 없었기에 당연히 불안했다. 퇴사와 불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매달 들어오는 마약 같은 월급이 끊기면 습관적으로 하던 쇼핑, 깊이 고민하지 않고 영위하던 비싼 음식과 택시의 효용은 더 이상 쉽게 누릴 수 없다. 늘어난 씀씀이와 줄어든 수입 사이의 간극을 느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사표를 냈다가 후회할까봐, 더 못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됐다. 회사 밖은 정말로 지옥일까 봐.
막상 나와 보니 불안과 안정을 단단히 오해했다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안정하다고 필수불가결로 불안이 따라오는 건 아니었다. 월급의 부재는 의외로 괜찮았다. 월급은 없지만 퇴직금이 있었다. (물론 세계여행을 하며 진즉에 다 썼지만.)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없는 회사를 다니는 게 더 불안했다.
조직에 속하면 능동보다는 수동에 가깝다. 입사할 때부터 결원이 있는 팀으로 가지, 내가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상사를 선택할 수도 없다. 인사이동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슴 졸여야 했고 혹여 원하지 않는 곳으로 이동될까 노심초사했다. 성장이 멈췄다고 생각될 때, 회사 일만 하다 이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어른이’로 나이 들어가는 게 당장 월급이 끊기는 것보다 더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지금이야 나이가 어리고 상품성이 있겠지만 임신,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점점 노동 시장에서의 상품 가치가 떨어지겠지. 언젠가 회사에서 내쳐질 텐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고 사는 듯했다. 이 판에 머무는 것도 불안한 것투성이였다.
취업 준비생일 때는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만사형통일줄 알았건만, 언젠가부터 태어났으니 산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다. 요즘 어떠냐고 물어오는 말에 늘 ‘나쁘지 않다’로 일관했다. 앞으로 몇십 년 더 이렇게 살고 싶진 않은데, 막상 박차고 나올 만큼 싫지도 않은 게 문제였다. 하루를 바쳐 일하며 받는 월급으로 부자는커녕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을 것 같아 삶의 방식에 자주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오 년이 흘렀다. 설사 안정적인 직장이라 정년까지 일한들 그 끝에 무엇이 남아있을지 상상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다달이 월급을 준다는 이유로 회사를 다니는 게 안정적일까?
회사를 나와 보니 불안이 있던 자리엔 오늘의 행복과 내일에 대한 기대가 들어왔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에 무얼 하며 재미있게 보낼까 궁리하다보니 불안할 시간이 없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회사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게다가 평생 회사를 다닐 수도 없다. 아무리 정년이 보장된다 한들 길어야 환갑 즈음엔 나와야 한다.
회사 밖에서는 쓸모없는 능력치로 백세시대에 남은 사십 년은 어떻게 살 것인가. 재취업을 한다 해도 아무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무거운 직급, 연봉, 나이로는 쉽지 않다. 앞으로는 적어도 세 개 이상의 직업을 가질 거라고들 한다. 그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직업을 갖는 게 지금의 회사에서 버티는 것보다 안정적인 것 아닐까.
꼭 퇴사를 하지 않더라도, 당장 퇴사 혹은 해고를 당했을 때 생계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적어보는 것은 꽤 유용한 멘탈 트레이닝이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굶어 죽진 않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안정성 때문에 현재 회사를 다니지만 퇴사를 하고 싶은 분들, 단 5분만 내어 이 질문들에 답을 써보시길. 단, 생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종이든 컴퓨터든 어딘가에 꼭 써야 한다.
질문 1. 당신이 생각하는 일을 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악몽 같은 상황, 즉 최악의 상황을 정의해보라.
(내 대답: 지금의 몇 안 되는 복지를 누릴 수 있는 회사로의 재취업 불가, 다시 월급의 노예가 되기 힘들어질 것 같음, 은행에 갚아야 할 돈, 잘 모르는 지인들의 수근거림… 이렇게 쓰고 나서 3초 만에 부끄러워졌다. 너무 별 게 아니어서.)
질문 2. 일시적으로라도 손실을 복구하기 위해/상승세로 되돌려 놓기 위해 어떤 단계를 밟을 수 있을까?
(내 대답: 보험 영업, 서비스업종 취업, 과외, 아르바이트, 통번역 알바, 취업 컨설팅 등 잡다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돈을 모아 갚기, 다시 커리어를 쌓을 수 있게 재취업의 문 두드리기… 역시 3초 만에 ‘돈은 어떻게든 벌리겠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질문 3. 만약 오늘 직장에서 해고된다면 생활의 안정을 위해 어떤 일을 하겠는가?
(내 대답: 구인 사이트 뒤지기, 단기 아르바이트부터 구하기, 부모님 일 돕기, 비싼 취미활동 접기)
세 가지 질문에 답을 쓰고 나자 명확해졌다. 퇴사해도 괜찮겠다고. 큰일 안 나겠다고.
그리고 퇴사하기 3개월 전,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인사이동이 있었다. 이번 대상은 나였다. 좋은 기회라며 보직 이동에 대한 나의 의중을 물었지만 통보나 다름없었다. 이미 퇴사하고 한국을 떠나려고 전셋집도 내놓은 마당에 나의 대답은?
“저 두 달 후에 퇴사할 거라서 못 갑니다.”
통쾌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수동적인 인사는 이제 안녕이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2030 회사원,
퇴사 후 자유로운 세계여행을 꿈꾸는 직장인,
디지털 노마드와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고
행복한 반백수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
직장생활과 퇴사 사이에서 불안해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진솔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출간됐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바로,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주말부터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응원 감사드리며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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