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퇴사는 하고 싶고 세계여행도 가고 싶은데 다녀와서 뭐할지는 모르겠던 날들이 있었다. 친구들을 붙잡고 메신저로, 만나서도 징징거렸다. 인생 참 답 없다, 회사원이 답은 아닌 것 같은데 디자인이나 개발 같은 기술도 없는 내가 이 긴 인생 뭐 해먹고 살아야 할까, 마구 푸념했다. 결국에는 답이 없는 게 인생이라며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맛집을 가고 비싼 술을 마시며 월급을 탕진했다. 다음날 일어나면 남은 건 카드 값과 친구들과의 돈독해진 우정이었다.
영화 속에 내가 들어갔다면 이랬을 거다.
“하느님, 제발, 제발, 제발, 회사원 말고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직업을 알려주세요.”
참다 참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했을 거고.
“중생이여, 제발, 제발, 제발 퇴사를 하든 부업을 하든 뭐든 시작이나 해보고 와라!”
안개 속을 걷는 듯 막연하고 불만족스럽던 날에 나 또한 리즈가 이탈리아 행 티켓을 산 것처럼 불현듯 결심이 들었다. 그런데 비행기 표가 아닌 요가원에서 티켓을 샀다. ‘감히 내가’라며 꿈도 꾸지 않았던 요가 지도자 과정을 결제한 것이다.
그저 회사에서 오래 앉아 있느라 생긴 근육통을 없애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다녔을 뿐이었다. 짧고 굵은 내가 요가 강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요가가 너무 좋았다.
이 좋은 걸 주위에도 알려주고 싶고, 좋아하는 걸로 돈까지 벌면 그야말로 내가 찾던 덕업일치가 아닐까 싶었다.
때마침 내가 믿고 따르던 선생님이 지도자 과정을 밟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꼬드겨주었다. 삼백만 원의 지도자 과정을 일시불로 완납했다. 암 보험을 꼬박꼬박 납입하듯 퇴사 보험에 가입한 셈 쳤다. 걸릴지 안 걸릴지 모르는 암 보험도 20년이나 매달 몇만 원씩 넣는데, 나를 위한 보험쯤이야.
퇴사하기 6개월 전부터 매주 토요일을 할애했다. 돈만 내면 끝이 아니라 몸을 쓰고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머리도 써야 했지만 즐거웠다. 오랜만에 학생으로 돌아간 듯 이론과 티칭 멘트를 달달 외웠다. 6개월 후 나는 컴퓨터 활용능력 이후 오랜만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의 퇴사 보험은 취업용 스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땄던 자격증들보다 훨씬 값지고 유용했다.
요가 자격증이 실비 보험 같은 쓸모 있는 보험이 될 거란 확신이 왔다. 요가는 부동의 마니아층이 있고 신규 수요자도 많다. 그만큼 강사 공급도 많지만 회사를 나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매력이 있다. 요가 강사도 나름의 고충이 있고, 수업 앞뒤로 할애하는 시간과 수업 준비 시간까지 합치면 최저 시급 수준이지만, 직업 선택지가 하나 생기는 것은 생각보다 더 든든하다.
보험 특약사항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시간을 준다. 요가 강사는 이미 레드 오션이지만 파도가 끊이지 않는 마르지 않는 바다여서, 나 같은 초보자도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다. 진입장벽이 낮기에 쉽게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퇴사 보험을 든든하게 가입해두고 떠난 여행은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일 때도 나름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심지어 태국 여행을 하며 다니던 요가원에서는 자격증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일자리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 어떤 보험보다 투자 대비 수익률이 좋았다.
퇴사 보험으로 요가 지도자 자격증만 있는 건 아니다. 영상 제작, 사진 촬영, 이모티콘을 그리거나 웹소설을 쓸 수도 있고, 온라인에서 물건을 팔며 버는 수익 등 내가 좋아하는 일로 만든 사이드 잡(side job)은 뭐든 보험이 될 수 있다. 나보다 두 달 먼저 퇴사한 남편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내일배움카드’로 사진과 영상 편집 기술을 배웠다. 그때 배워둔 기술 덕분에 수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우리는 종종 간단한 진리를 망각하곤 한다. 로또를 사야 토요일 저녁에 당첨자가 될 수 있는 확률이 생기는 거다. 이번 주 로또도 안 샀으면서 당첨돼서 퇴사하고 싶다고 백날 말해봐야 신은 코웃음만 친다. 퇴사하고 싶고 세계여행을 다녀와서도 생계가 불안하지 않길 바란다면 뭐든 해봐야 하는 거다. 그게 요가든, 유튜브든, 장사든.
정작 원하는 것을 위한 기본적인 노력도 안 하는 게 복권도 안사고 당첨을 바라는 심보와 뭐가 다르냐는 사실을 자주 까먹는 나는 지금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고 있다. 여행을 다녀와도 여전히 회사가 가기 싫으니 하나라도 더 씨를 뿌려야 한다. 글을 써야 책을 내고, 온라인 스토어에 상품을 올려야 매출이 나올 가능성이 생기니까. 그러니 로또에 당첨돼 퇴사하는 게 꿈이라면 지금 이 글을 읽자마자 로또를 사러 가야 한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과 비례해 보험을 위한 정성을 들여야 한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2030 회사원,
퇴사 후 자유로운 세계여행을 꿈꾸는 직장인,
디지털 노마드와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고
행복한 반백수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
직장생활과 퇴사 사이에서 불안해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진솔한 조언!
퇴사하면 뭐 해먹고 살지?
덕업일치가 되는 삶을 찾아서
인터넷, 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 시작됐습니다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9007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