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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May 13. 2021

세계여행 하면 욜로 하다 골로 간다고요?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 여행 가자고 했어?







“우리 세계여행 갈래?”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구 남친이 건넨 한마디는 잔잔했던 내 마음에 돌이 되어 날아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세계여행이 꿈이었는데, 최대한 젊었을 때 가고 싶어.”
구 남친이었던 현 남편은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가면 당연히 좋긴 한데 뭐 한 50대쯤 갈 수 있는 게 세계여행 아니야젊었을 땐 돈도 없고 열심히 벌어야 하는데 어떻게 세계여행을 가?”
과연 이 남자 현실적으로 생각은 하고 말하는 건가, 다소 황당했다.

그날의 맹랑한 대화 이후 언젠가의 꿈이었지만 실현 가능성으로는 저 아래에 있던 세계여행이 급상승했다. 감히 지구인의 4분의 1은 꿈꾸지 않을까 추측하는 세계여행. 나 역시 막연하게 언젠가 꼭 가고 싶었지만 그게 지금이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다. 정작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 혼자 걱정하고 북 치고 장구까지 쳤다. 남자 친구가 남편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젊은 날의 세계여행에 대해 계산을 했다.

‘A²+B²=C²’ 수학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방정식은 이럴 때 유용했다.
방정식에서 A는 퇴사를 하고 떠난 세계여행에서 느끼는 행복과 유희라면, B는 세계여행을 다녀와서의 달라진 사고가 더해져 지금과는 다른 삶 C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다시 C는 인생의 전환점으로 제곱이 되어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학은 못해도 여기까진 쉽게 풀 수 있었다. 방정식을 풀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책을 찾아 읽는 것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독일 작가까지 닥치는 대로 탐닉하기 시작했다. 세계여행 이후의 삶이 너무 불안했기 때문에 궁금했다. 회사를 나가서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과연 잘 살고 있는지. 롤모델 팀 페리스의 책을 읽으며 몹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그었다.
 
장기간 여행을 떠났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굶어 죽고 팔자 좋은 베짱이라는 조롱을 당해야 한다면, 아마도 세상은 배가본더들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세상은 배가본더들의 글과 책, 강연, 영상,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인다.
- 팀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토네이도, 2018)

여기에 덧붙여 ‘삶을 송두리째 다 잃지 않기 위해서 얼마간의 삶을 바치는 것은 당연하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까지 빌린다면, 여행을 다녀와도 삶은 망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용기 있게 세계여행을 떠난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거나 전세금을 빼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가 심심찮게 보였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무라카미 하루키조차도 마흔을 목전에 앞두고 불안함을 타계하고자 유럽으로 떠났을 정도였다. 그들의 용기를 글로 배우며 ‘세계여행을 가도 괜찮을까.’에 대한 계산을 얼추 마무리 지었다.

 










욜로하다 골로 간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뭐 하고 살지에 대한 계산은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았다. 세계여행기(A)와 여행에서 달라진 사고방식(B)은 알겠는데, 이후의 삶(C)은 뚝 끊겼다. 한창 클라이맥스로 향하던 드라마가 중간에 조기 종영된 기분이랄까. 내 인생 스포가 궁금해 점집을 찾아다닐 정도였는데, 남의 이야기가 궁금한 건 당연지사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남의 여행 이야기는 안 궁금하고 그래서 다녀오니 어떻게 지낸다는 마지막 결론이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궁금하면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학교 다닐 때도 수학을 못해 손발을 동원해 셈을 했던 나는 세계여행 후 펼쳐질 인생 계산을 마저 하기 위해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기 시작했다. 초록 창에 검색하는 것만으로 만날 수 없는, 손에 쥐고 있던 카드들을 버리고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그들을. 가끔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이들의 인터뷰에는 빼놓지 않고 욜로 하다 골로 간다.’는 악플이 달렸다. 댓글을 작성한 사람에게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골로 간 분이세요?’ 이렇게 묻고 싶었다. 안 해봤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건지. 기분 나쁜 반대 심리를 증명해내고 싶었다.

‘욜로’ 하고 싶다는 답은 정했으니 원하는 답을 들려줄, 골로 가기는커녕 잘 지내고 있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행을 떠나기 전 여덟 쌍의 부부를 만났다. 첫 번째 만남부터 확신이 들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불안과 걱정이 반감되고 자신감이 생겼다. 여행을 하며 얻은 영감으로 창업해 지금까지도 잘 운영하고 있는 부부에서부터, 예전 직장에 다시 돌아가거나 새로운 직장으로 다시 취업한 사람, 여행을 계속하며 프리랜서로 잘 지내는 사람들까지. 모두 잘 지내고 있었다. 그들과의 대화로 방정식을 2년 동안 풀고 나니 홀가분하게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됐다. 떠나보니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떠나온 또 다른 동지들을 많이 만났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배낭 하나에 짐을 정리해 길 위로 나온 사람들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풀어내는 방법을 몸소 실험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동지들의 이야기까지 모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욜로 해도 골로 안 간다.

우리에게도 여행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포털사이트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애 낳고 돈 모을 나이에 누구는 못나서 여행 못 가는 줄 아냐, 애 있으면 절대 못한다, 부모 믿고 저런다, 다녀와서 고생을 해봐야지, 기타 등등 일면식도 없는 남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라 섭외 요청에 머뭇거렸다. 이전에 실린 여행자들 인터뷰 댓글을 보며 기분이 나빴던 참이었다. 우리가 좋아서 집, 차, 명품 안사고 모은 돈에 퇴직금까지 보태 떠난 여행인데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도 들을 이유도 없었다. 댓글은 예상됐지만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여행 혹은 퇴사는 하고 싶은데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 망설였던 나의 몇 년간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은 글 한 줄이라도 나에게 용기를 지펴줄 큰 불씨로 다가왔던 때처럼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한 달 후 매일 검색만 하던 초록창에 우리 사진이 실렸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스펙 믿고 회사 나왔네, 여행 후 현실 적응 못해서 떠돌다가 노후는 망할 거라는 등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는 댓글을 예상했기에 기분이 크게 나쁘진 않았다. 다만 한 내용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를 더하고 싶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평범하게 직장 다니는 사람을 겁쟁이로 만든다.’는 말은 틀렸다. 여행을 간다고 겁이 없는 것도 아니며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 혹은 새로운 직무로 옮기는 건 여행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한 명도 아니고 둘씩이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 게 용기가 가상하다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회사를 다녔고 잠시 쉬어가는 것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니다. 상당수는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다. 평범하게 직장 다니던 사람들이고 하루, 한 달, 매년을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누구보다 잘 안다. 여행이 모두에게 정답이 아니듯 모두가 퇴사하고 여행을 가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 시절 돌파구가 여행이었을 뿐이다.

평생 여행만 할 수는 없다. 여행을 하며 디지털 노마드로 살더라도 일은 해야 한다. 여행이 끝나면 다시 돈을 벌어야 한다. 다만 삶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결단을 내려 본 경험은 몸에 선명히 새겨져 있을 뿐이다. 다시 일을 하니 재밌어서, 돈을 벌어 다시 여행을 떠나겠다는 등 저마다의 이유로 다시 생업에 돌아가도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임하게 될 것이다. 언제든 다시 주체적으로 나에게 최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태도는 내가 가지 않은 길을 걸은 남을 폄하하기에 급급한 이의 그것과는 다르다. 해보지 않은 이의 조언은 내가 만들려는 작고 소중한 세계를 뭉개기 일쑤다. 설사 골로 간다 쳐도, 실컷 울고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다. 잠깐 쉰다고 지금껏 쌓은 경력과 실력이 어디 가진 않는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2030 회사원,
퇴사 후 자유로운 세계여행을 꿈꾸는 직장인,
디지털 노마드와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고
행복한 반백수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
직장생활과 퇴사 사이에서 불안해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진솔한 조언!



퇴사하면 뭐 해먹고 살지? 
덕업일치가 되는 삶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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