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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Jul 25. 2021

운이 좋은 백수부부

제주 일년살이. 남편의 시선

어쩌다 보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아마도 계획한 시기에, 계획한 만큼 세계여행을 하다 귀국했기 때문이리라.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은 해외여행을 나가기 어려워졌기에, 우리 또한 참 운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세계여행을 계획한 기간만큼 다 채우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행하던 곳에서 고립되어 고생 끝에 겨우 귀국한 친구부부, 세계여행을 떠나기 위해 직장을 퇴사하고 이제 막 첫 나라를 여행하던 중 코로나가 심해져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친구부부 등 주위에 코로나로 인해 여행 아니 인생계획이 바뀐 친구들을 보면 더욱 우리의 여행을 감사하게 된다.





제주살이를 시작하는 날짜도 참 운이 좋았다. 우리는 새해의 첫 월요일인 1월 4일 목포에서 짐을 가득 실은 차를 배에 실고 제주에 입도했다.

목포로 내려가는 길 군데군데 눈이 쌓여있었지만, 제주로 향하는 뱃길은 파고는 낮았고 하늘은 맑았으며 바다빛은 푸르렀다.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날 날씨가 맑아 기분이 좋았고, 올해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서울에서 가지고 올 수 있는 건 최대한 차에 실어 내려왔지만, 여전히 필요한 생필품이 많았기에 우리는 다음날 제주시에 있는 이마트로 향했다. 허기진 상태로는 쇼핑하면 안 된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났지만, 아침식사 후 여유롭게 움직인 우리가 이마트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 점심시간이었다.


혹시 모를 코로나 걱정에 외식하기보다는 장을 얼른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걸 택했다. 배가 고팠기 때문일까, 아니면 앞으로 1년이나 살게 될 거란 사실 때문이었을까. 우리의 카트는 1개만 뽑아온 게 아쉬울 만큼 가득 차다 못해 넘쳤고, 계산할 때 본 영수증에는 결혼 이후 마트에서 장보며 쓴 금액 중 최고금액이 찍혀있었다. 그렇게 한 달은 족히 먹을 식량과 생필품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 다음 날 저녁부터였던 것 같다. 제주도에 한파와 대설경보가 내려지고, 주요 도로들이 통제된 것은.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1100도로와 5.16도로가, 한라산 산간도로인 제1산록도로 등이 전면통제되었고, 비자림로와 서성로, 번영로 등 제주의 소도시들을 잇는 도로들은 체인이 있을 때만 운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6일 밤부터 9일까지 나흘 동안 눈은 쉬지 않고 쌓여만 갔고, 우리 집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작은 도로는 눈으로 막혀버렸다. 하지만 걱정될 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눈이 오기 하루 전날 한 달 치 식량을 사뒀던 덕이다. 직장에 매여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온 것도 아니기에 집에만 있어도 일을 할 수 있는 덕이었다.





세계여행부터 제주도 일년살이까지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가 2018년이 아닌 2019년에 세계여행을 계획했었더라면, 제주도 이사날짜를 하루만 뒤로 미뤘더라면 우리는 운이 없는 백수부부가 되었을까?

상황은 조금 더 힘들게 변했을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길을 찾지 않았을까?

때로는 소소한 일들로, 때로는 조금 더 큰 일 속에서 소소한 행복과 행운을 찾지 않았을까?

그 속에서 '우리는 참 운이 좋은 부부야'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운이라는 건 어찌보면 누군가를 따라오기 보다는, 같은 선택을 두고도 결과를 긍적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과 결과에 대해, 좋았던 부분만 초점을 맞춰 살아간다면 누구나 '운이 좋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폭염이 강타한 요즘, 때아닌 폭설 이야기라니 새로우시죠?

1월부터 카카오톡으로 월, 목요일 아침 8시에 연재하는 '주간백수부부'의 세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백수부부 남편과 아내가 번갈아 서로 다른 시선으로 제주살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총 59개의 에피소드가 발행되었으며, 올해 말까지 연재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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