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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Feb 27. 2021

제주에서 뭐 먹고살지?

서른다섯에 과외 선생님이 되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된다]



제주에 온 지 두 달이 흘렀다. 열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벌써 슬프다. 시간은 회사를 다닐 때도, 백수로 여행할 때도, 제주에서도 공평하다. 눈 깜짝하면 달이 바뀐다. 제주에 와서 보니 우리처럼 긴 여행을 다녀와 정착한 사람들이 많다. 지내보니 이유를 알 것 같다. 감히 한국에서 가장 ‘여행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눈이 쌓인 한라산은 스위스 알프스 산 같기도, 오름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우리 부부가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스리랑카와 비슷해 보인다. 중산간도로를 달리면 이탈리아 토스카나가 부럽지 않다. 십 분만 나가도 바다가 있고 웬만하면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한라산이 보인다. 비싼 주거 비용을 지불하며 좁고 빡빡하게 서울에서 지내느니 일만 가져올 수 있다면 이곳에서 지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업이 많아졌고, 우리 같은 프리랜서도 많다. 그래서인지 부동산에서 집을 구할 때 마음에 드는 곳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집 구경 약속을 잡았지만 그새 계약이 돼 취소가 된 건도 적지 않았다. 다들 제주도에서 뭐 먹고 사는 걸까? 


제주에서의 시간은 대체로 잔잔하다. 삼시 세 끼를 해 먹고 치우는 가사노동과 생업을 위한 노동 두 가지를 하면 하루가 금방 저문다. 단기로 살아보는 게 아니니 여행으로 왔을 때처럼 외식과 카페 놀이를 매일 할 수 없다. 한 달을 살러 왔다면 여행하듯 지내다 가면 된다. 이곳저곳 다니기에도 한 달은 짧다. 일상에 가까운 여행이니 가벼운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하지만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면 여행보다 일상이 주가 된다. 놀 수만은 없다. 연세도 내야 하고 한라봉, 성게, 방어 등 제철 먹거리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일거리가 필요하다. 노는 데도 돈이 있을수록 풍족해지는 것은 만국의 이치니까. 


제주에 와서 뭐해먹고 사는지는 또 다른 화두다. 제주에는 젊은 이들이 많지 않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들 했다. 길지 않은 시간 겪어보니 대체로 수긍이 간다. 우리 부부의 경우 과외를 시작했다. 또래의 다른 친구는 우연히 귤 농장에 일을 도우러 갔다 총괄 매니저로 스카우트가 됐다. 사진을 잘 찍는 다른 친구는 마케팅이 필요한 곳에 사진을 찍어주며 돈을 번다. 다이빙 자격증이 있다면 강사를, 또 다른 사진이 특기인 친구들은 결혼사진을 찍는다. 온라인으로 제주 집에서 운동을 가르치는 친구도 있다. 저마다 가진 무기를 제주에서 써먹는 듯하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한 가지,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되는 건 제주도라고 다르지 않다.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여행 때도 그랬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먹는 건 진리였다. 호텔을 예약할 때도 ‘기념일인데 아내를 몰래 놀라게 해주고 싶어요. 혹시 가능하다면 방을 업그레이드해줄 수 있을까요?’라고 메일을 보내면 적어도 케이크 하나, 와인 한 병이라도 서비스를 주곤 했다. 메일을 쓰고 안 쓰고의 차이는 분명했다. 행동을 취하는데 돈이 드는 게 아니라면 뭐든 하는 게 좋다. 





[서른다섯, 제주 과외선생님]



제주에 와서 보름 만에 남편은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영어, 수학 과외를 시작했다. 집을 구할 당시 부동산을 숱하게 다니며 제주도 학구열이 못지않게 높다고 들었다. 학원이 많은 동네가 왕복 두 시간 거리지만 매일 실어 나른다는 엄마들, 영어 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과외를 받는 저학년 학생들까지. 게다가 수도권은 작년에 비대면 수업을 하며 친구의 온기가 그리워진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코로나 19의 영향이 덜 한 제주에 많이 내려왔다고 했다. 우리가 구한 집도 마침 학원이 왕복 두 시간 거리. 그렇다면 과외 수요가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할 때도 우스갯소리로 한국 가서 회사 가기 싫으면 과외를 하자 했었다. 말이 씨가 되어 현실이 될 판이었다. 대학 졸업한 지 십 년이 다 돼가고 교육 전공자도 아닌, 대학생 때의 경험만으로 가르칠 수 있느냐는 나중 문제였다. 우선 구해보고 고민은 나중에 하자는 마음으로, 계약서를 쓰자마자 맘 카페에 글을 올렸다. 바로 모집 글을 올리면 홍보 글로 삭제되니 우회적으로 수요를 묻는 형식으로 글을 썼다. 

‘일 년 살기를 시작한 젊은 부부입니다. 남편은 수학을, 아내는 영어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 동네에도 과외를 받고 싶어 할 학생이 있을까요?’ 

바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반응은 반으로 나뉘었다. 일 년이상 장기적으로 아이를 봐줄 선생님을 선호한다는 댓글 그리고 ‘쪽지 주세요’. 

우리의 이력과 여행 이야기를 써둔 홈페이지 링크를 쪽지로 보냈다. 전화 통화 후 집으로 아이들과 상담을 오셨다. 그렇게 네 명의 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견문을 넓히고 온 젊은 부부가 예쁜 공간에서 수업을 한다는 사실이 어머니들을 공략한 듯싶었다. 수업 시간에 북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을 틀고 종류별 빵과 수제 딸기청으로 만든 음료를 주며 아이들의 마음도 공략했다. 너무 신기했다. 서른다섯에 대학생 때처럼 과외를 할 줄이야. 여행 때 장난 삼아 이야기한 게 실제가 된 것도, 이 나이에도 하면 된다는 것도. 어디에 떨어져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실감이 든다. 물론 소개 홈페이지를 만들고 커뮤니티에 홍보를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의 성공 사례에 힘입어 나 또한 요가 수업을 열 생각이다. 이 또한 ‘요가 가르쳐볼까?’ 생각만 하지 말고 홍보 글과 사진을 써서 플랫폼에 상품을 올려야 한다. 이 원고를 다 쓰고 나도 홈페이지를 만들고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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