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잡의 가벼움
요가는 언제까지고 나에겐 본업이 아닌 부업이다.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 스트레스로 기쁨을 뒤흔들고 싶지 않다. 그런데 요즘 이 '사이드 잡(side job)'이 나를 먹여살리고 있다.
퇴사하고 대여섯번, 여행하며 남편에게,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두세번. 도합 열 번 정도가 내 티칭 경력의 전부였다. 정식으로 요가를 가르친 지 네 달이 지난 지금은 시급 20만원의 어엿한 요가 강사가 되었다.
제주에서 우연히 일 년동안 살게된 집은 심미안적으로 아름답다.
천고가 높은 거실에는 통창으로 아침부터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주인분들이 두고 가신 식물 몇 그루가 공간의 감성을 살려준다. 하필 대형 라탄 러그까지 깔아두셔서 그 위에 매트를 깔기에도 완벽하다.
요가 스튜디오로도 손색이 없다.
문 밖을 나서면 200평 대지답게 제주스러운 돌담과 귤나무들로 둘러싸인 마당이 있다.
천연 금잔디위에 매트를 깔고 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지붕삼아 요가를 할 수 있다.
인도, 발리, 태국, 뉴욕, 심지어 코스타리카와 과테말라까지 요가로 유명한 도시는 다 다녀본 나는 직감했다.
이곳은 완벽한 요가 여행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폭설로 고립된 1월에 제주에 내려오고 3월 초까지는 뼈가 시린 섬 추위에 잔뜩 움츠려있었다.
3월이 되며 마당의 봄 동백과 매화꽃이 피며 슬슬 요가 수업 개설에 시동을 걸었다. 반신반의하며 공유 숙박 플랫폼에 '체험'으로 요가 수업을 올렸다.
올린 지 열흘 가량 지났을까, 역시나 아무도 예약하지 않았다. 집에서 하는거라 홍보를 하기에는 조금 꺼려져 플랫폼의 힘에만 기대고 있었다.
그런데 낙담한 지 몇 일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두 건의 예약이 들어왔다!
후기도 없는데 예약을 한 용감한(?) 선구자들이 4월 첫째주에 다녀갔다.
다행히도 선한 분들이 5점 만점의 후기를 남겨주셨고, 선순환이 시작됐다. 후기가 쌓이니 예약률이 높아지고 더 많은 후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작고 소박하게 수업을 하다 후기가 열 개남짓 쌓였을 무렵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에어비앤비 체험 담당자 000입니다. 이번에 제주 독립책방을 따라 떠나는 여행' 기획 기사에 함께 할만한 체험으로 호스트님의 요가 수업을 소개하고 싶어요.'
시작한지 한 달만에 운좋게 담당자 눈에 띄었다. 물론 기사가 소개되고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몇 주 후, 다시 같은 번호로 연락이 왔다.
이번엔 브랜드 행사에서 요가 수업을 할 수 있냐는 협업 요청이었다.
세계여행을 할 때도 나의 안락한 숙박을 책임진 브랜드인데 이렇게 여행 후에도 연결될 수 있음이 그저 즐거웠다.
퇴사하기 전 요가지도자 자격증을 딴 것도 어디까지나 퇴사보험이었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뚜렷한 진로가 보이지 않을 때 '문화센터에서 요가 가르쳐야지'하는 마음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이 요가 수업을 대하는 가벼운 마음덕분이다. 본업이 아닌 사이드 잡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해보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요가원에 취업했다면 시급 3만원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이동시간, 교통비, 수업 앞뒤로 준비하는 시간이 모두 포함돼 최저 시급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경력이 미천하여 나를 증명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은 요가를 가르칠 공간을 월세를 내며 빌렸다면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수업을 했을 것이다. 그러자면 한 곳에 묶여있기 싫어 퇴사한 이유가 퇴색됐을 것이다. 무자본으로 시작한 부업이라 가볍고 즐거웠고 그 에너지가 수강생들에게도 전달된다.
돈을 더 많이 벌어도 좋겠지만 지금의 속도대로 주 3~4번만 요가를 가르치며 수강생 한명 한명에게 집중하고 싶다. '좋은 한 시간을 보냈다'는 실감이 들 수 있도록 우리의 시간에 공을 들이면 내 시급은 따라 올라가지 않을까하는 믿음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