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샘 Feb 27. 2023

우리는 그때의 최선을 다한 거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며 든 생각




제주에서 아들 쌍둥이를 출산한 지 111일째다.


백일잔치를 위해 양가 가족들이 제주에 와주셨고, 시가 식구들에게 하루 아이를 맡기고 나 혼자 친가 식구들과 서울에 올라왔다. 가끔 한두 시간씩 혼자 카페에 가며 코에 바람 쐰 적은 있지만 1박 2일간 떨어져 있기는 처음이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은 달콤했다. 육아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절대적으로 내 시간이 부족하기에.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작년 3월 말부터 지금까지 약 11개월이 지났다. '임신했으니 무리하지 말고 안정을 취해야지'라는 말에 기대어 임신 기간 동안 일을 많이 내려놓았다.



참고로 나는 제주살이 3년 차 프리랜서다. 당시 하던 일은 제주에서 요가를 가르치고, 부모님 사업의 온라인 마케팅 일을 하는 게 주였다. 첫 임신이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 요가 수업은 대폭 줄였고, 잠이 쏟아져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것도 버거웠다. 그나마 임신 기간동안 한 일은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돼 용돈 벌이에 가깝던 요가 수업을 요가원 운영으로 사업화한 것이었다.


그렇게 여덟 달을 보내고 출산을 하니 일할 시간은 더욱 줄어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잠잘 시간도 부족했다. 그래서 산후도우미 이모님들, 양가 어머님들에게 번갈아가며 도움을 받았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짬이 날 때마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머릿속에만 있던 기획을 꺼내 실행하고, 정체됐던 온라인 마케팅 일도 사부작사부작했다. 물론 처리하는 일의 양은 욕심의 절반도 못 미친다.


요즘 일할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내내 맴돈다. '이걸 왜 이제야 하는 거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안 했지?' 과거를 복기하며 자책했다. 가끔 마트 갈 때나 끄는 자동차처럼 멈춰있던 일의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전기차가 아닌 이상 처음 액셀을 밟으면 바로 속도가 붙지 않는 것처럼 일도 마찬가지였다. 꾸준해야 노출도 잘되는 온라인에서는 더욱 그렇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좀처럼 가속이 나지 않아 아쉽던 참에 서울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나 빼고 모두가 정신없이 바빠 보이는 서울이었다. 제주에서는 시골에 살기 때문에 어딜 가나 운전을 해야 해 다른 사람들을 관찰할 기회가 없었다. 오랜만에 지하철에 타니 모두가 작은 화면에 몰두한 광경을 마주했다. 다들 뭘 그리 열심히 보는 걸까. 그리고 길가에는 차와 사람 모두 많았다.  



퇴근길 인파 속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맥락 없는 이야기를 하다 친구의 한마디에 별안간 무릎을 탁 쳤다. '그때 내가 그걸 왜 안 했을까' 후회하다가 이내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라고.


소를 잃고서 외양간을 고치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소는 잃었을지언정 그 옆에 닭은 지켰을 수 있다. 소를 잃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잃지 않은 걸 수도.


임신 당시 나의 우선순위는 일보다 뱃속의 두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었다. 일은 언제고 하면 되고, 살은 빼면 되기에 잘 먹고 잘 쉬는 게 일 순위였다. 임신 기간 동안 아무 이벤트 없이 쌍둥이 임신의 만삭인 37주까지 잘 채워 출산했다. 두 아이 모두 인큐베이터는커녕 단태아에 밀리지 않는 몸무게로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은 웬만한 단태아에 밀리지 않게 성장 중이다. (무겁다...) 소 옆의 닭을 지킨 셈이다.




그 와중에 임신 기간 동안 정부 지원사업에 지원했고, 발표도 했고, 선정돼 지원금도 받았다. 요가원 공간을 임대하고, 모든 비용 처리에 필요한 비교 견적을 받고, 선생님들을 뽑고, 광고하고 틈나는 대로 알렸다. 남의 돈을 쓰는 어려움에 직면하며 비용을 증빙하는 지루한 서류 작업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소를 열 마리 잃었는 줄 알았는데 세어보니 다섯 마리 정도 잃은 셈이랄까.


건강한 임신기간과 요가원 운영으로 내 시간과 체력은 찼기에 그 외의 일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작년의 나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그사이 스마트스토어는 파워 셀러에서 새싹 셀러로 내려가고 줄어든 매출은 아쉽지만. 어떻게 다 가질 수 있겠는가. 잃어버린 건 지금의 내가 최선을 다하면 다시 되찾게 될 것이다.




인스타그램 @mangssam




매거진의 이전글 쌍둥이 임신,출산,육아가 미치는 영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