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일의 공백
작년 8월 말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150일이 지났다.
150일, 다섯 달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간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를 모두 겪었다. 그것도 쌍둥이라 모든 것이 2배다. 기쁨, 고됨 모두.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몸이 힘들었던 쌍둥이 임신 만삭 시절을 지나, 기침하는 것조차 아팠던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냈다. 다음주면 태어난지 백일이다. 아는 것 하나 없는 초보 엄마로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자라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근 오년동안 글을 쓰지 않은 날이 가장 길었다. 그만큼 나를 돌보지 못했다. 속절없이 울어대는 아이들을 달래며 같이 울고 싶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어쩌겠는가. 온전히 나와 남편의 선택으로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본인들의 의지라고는 배고픔, 기저귀의 축축함 혹은 졸림을 울음으로 표현하는 것밖에 없다. 우리의 의지대로 낳았으니 온 마음다해 돌보는 수밖에.
그러다보니 나의 하루는 온전히 이들 차지가 됐다. 몸은 안아픈 곳이 없고 마음은 늘 바쁘다. 내가 일한만큼 수입이 나오는 프리랜서이다보니, 마음 한켠에 늘 '일해야 하는데 어쩌지'하는 강박이 있다. 그나마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건 활자를 읽는 것. 새벽에 일어나 수유하고 트름시키며 잠을 깰 겸 다른 이들의 글을 읽고 있다. 육아일기조차 밀렸지만 무엇이든 쓰고싶어 손이 근질근질거렸다. 꺼내고싶은 문장이 많은데 우선 공백부터 채워보기로.
정부에서 지정한 고위험군에 속하는 다태아 임신.
다행히 악명에 비해 건강한 임신 생활을 보냈다. 물론 출산 5주 전부터는 정말 힘들었다. 뱃속의 두 아이 무게는 도합 5.2킬로그램에 육박했다. 온 몸 안아픈 곳이 없었다. 바지를 입으려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도 아파서 치마만 입었다. 방에서 화장실을 가기위해 걷는 것도 힘들었다. 커진 배가 온갖 장기를 눌러 잘 때 특히 불편했다. 다시는 다태아 임신을 하고싶지 않다.
임신 기간동안 일을 안하고 쉬었다는 핑계이기도 하다. 안정을 취하라는 말에 기대어 꼭 해야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일을 많이 줄였다. 요가 브랜드 운영을 제외하고는 온라인 셀러, 마케팅 일은 거의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 일들에서 오던 소득도 줄었다. 그래도 하는 수 없었다. 일은 언제고 다시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을 뱃속에서 잘 키우는 건 지금밖에 할 수 없으니.
특히 출산을 한 달가량 앞두고는 언제든 조산할 수 있다는 말에 '절대 안정'을 외치며 누워만 있었다. 할 수 있는건 수동적으로 보는 것뿐이라서 책과 핸드폰, TV를 원없이 봤다. 어차피 아이들이 태어나면 못잘테니 출산 선배들의 조언을 들어 많이 자두었다.
쌍둥이 임신의 만삭에 해당하는 37주 0일. 예정일에 맞춰 뱃속의 아이들이 세상에 나왔다.
자연분만은 엄두도 못내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남들 다하는거니까, 연예인들은 금방 방송에 나오니까 쉬운 줄 알았다. 조리원에서 나오면 살도 빠지고 수술 부위도 다 아물 줄 알았다. 그러나 수술의 여파는 백 일이 가까워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50일 가까이 꽤 오래 오로가 나왔고,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도 아팠다. 벌어진 골반과 절개한 수술부위때문인지 다리를 모으는 건 지금도 아프다. (옆으로 잘 때 늘 베개를 끼워야한다) 무엇보다 살이 빠지지 않아 절망적이다. 육아로 내 몸은 으스러질 것 같은데 살은 빠지지않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먹으면 더 찐다.
임신기간동안 18킬로그램이 쪘는데 아직 7킬로그램이 남았다. 조리원에서 마사지를 받을 때는 매일 1킬로그램씩 빠지더니 집에 오니 정체됐다. 욕심껏 운동을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을뿐 아니라 몸도 아프다. 아직 한 명은 들어있는 듯한 배를 볼 때마다 출산의 후폭풍을 실감한다.
출산 역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뛰어넘는 고됨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쌍둥이 육아.
병원에서 일주일, 조리원에서 열흘간 보낸 시간은 몸을 추스리기엔 짧았다. 생후 16일부터 집에 왔다. 내 몸도 성하지않은 와중에 현실 육아가 시작됐다.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돌봐주고 나는 가끔 수유 콜을 받고 모자동실을 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마사지받고 자던 그때가 얼마나 천국같았는지 매일 실감했다.
하지만 안락한 뱃속에 있다 추운 바깥에 나온 아이들은 더 낯설었을테다. 울음으로 모든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 길이 없어 난감했다. 물론 밤에 잠을 못 자는게 가장 힘들었다. 부모의 시간은 아이들 수유시간으로 잘게 쪼개진다. 2시간마다 먹던 아이들이 조금씩 길게 자며 현재는 5시간으로 수유 텀이 늘었다. 통잠의 기적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한번에 어른들도 두세시간은 잘 수 있다. (신생아 시절엔 한 시간도 채 못잤다ㅎㅎ)
흔히들 쌍둥이 육아는 기쁨도 2배, 고됨은 4배라고 했다. 현재까지 겪어본 바로는 남편과 둘이서 두 아이를 돌봤을 때의 난이도는 3배쯤 된다. 엄마들의 도움을 받아 셋이 둘을 돌볼 땐 1.5배 정도인 것 같다. 물론 하나만 키워본 적이 없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최악을 상상했기에 생각보다는 할 만하다. 그럼에도 남편이 일할 때 혼자 독박육아로 둘을 돌보는 난이도는 극상이다. 이건 자부할 수 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백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생후 백일이면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가 축하받지만, 키워낸 양육자들도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150일 전에는 기저귀 가는 법은 커녕 아이를 안을 줄도 몰랐던 나였다. 이제는 7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아이를 번쩍 안고 분유도 탈 줄 아는게 제법 기특하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몰랐던 감정을 느끼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모습도 마음에 든다.
비록 몸은 망가졌지만 마음은 풍성해진 150일이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아무튼 수고가 많았다 우리 가족.
이 글을 읽고계신 육아동지 여러분, 오늘도 육퇴하고 육아팅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