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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Nov 07. 2018

[퇴사하고 세계여행]D+7, 꿈만같은 일상들

떠나오길 참 잘했다.


지난주 수요일, 딱 일주일 전에 공항에서 양가 식구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세계여행을 떠나왔다.

사실 떠나기 전 날까지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떨어지는게 아쉽기만했고, 스트레스없이 한국에서 지내는 백수생활은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웠다. 이대로 떠나지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았다. 결혼하고 2년동안 따로 살다가 다시 엄마와 지낸 보름간의 시간은 나를 다시 철없는 딸로 돌아가게 했다. 공항에서 따뜻하게 포옹을 하며 인사하는데 엄마의 글썽이는 눈을 보니 덩달아 울컥했다. 결혼식장에서 인사하던 때가 오버랩되었다. 좋은 일로 가는건데 울지 말아야지.






비행기가 실종되고 추락하는 걸 보고 절대 타지 않겠노라 다짐한 에어아시아는 배낭여행객에겐 없어선 안 될 핵심 항공사다. 최저가이기 때문에 안탈 수 없는 그 에어아시아를 타고 방콕에 가는 길,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다 난관에 부딪혔다. 직업란에 도통 적을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jobless...?

그러고보니 homeless이기도 한데...?


남편에게 물었더니 마케터와 프로듀서로 하잔다.

그래, 디지털노마드가 별건가. 우리의 여행을 콘텐츠로 만들고 (유튜버), 기록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셀링하는 것(블로거). 그게 우리의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굳이 ‘회사원’이라고 적어내는게 내가 으레 생각한 ‘직업’이 아닌것을.




우리 부부의 첫 여행지는 전 세계 여행지 1위에 빛나는 도시인 방콕. 무계획으로 떠난 방콕에서 알차게 여행을 하며 여섯 밤을 지내고 어제 치앙마이로 왔다. 치앙마이에서는 무려 한 달을 지낸다. 꿈만같은 ‘한 달 살기’를 이 멋진 도시에서 하게 되었다니 그저 매순간이 감사하다.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을 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고, 더운 날씨조차도 행복하다. 매캐한 매연냄새도 마냥 좋다.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작은 풍경조차도 사진으로 담고 싶어하는 걸 보면 아직은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젊은이의 감수성을 잃지 않아 다행스럽기도하다.

 


반면 방콕에서 여행을 한 6일은 혼란스럽기도 했다. 회사원으로 떠나온 휴가가 아니기에 마냥 좋은 것만 할 수는 없다. 편하게 택시를 타면 30분만에 갈 수 있지만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버스를 타기도 하고, 저렴한 가격이라고 해도 매일 2만원이 넘는 마사지를 받을 수는 없다. 블로그와 인스타에 넘쳐나는 핫한 곳들을 찾아다니면 이 여행은 오래도록 지속할 수 없기에 최대한 저렴하면서 좋은 곳을 찾아야했다. 그럼에도 3겹으로 서서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를 타도 마냥 재밌고, 길거리에서 사먹는 로컬 음식들도 다 맛있었다.


처음으로 무거운 배낭을 맬 때마다 이게 왠 사서 고생인가 싶기도했다. 메인 배낭 무게만 각각 13키로, 18키로였고 전자 기기를 넣은 보조배낭은 족히 5키로는 나갈 것 같다. 다행히 무겁게 이고 온 물건들은 제각기 쓸모를 찾고 있지만 우리가 18개월동안 살며 필요한 짐이 30키로가 넘는다는 건 여전히 과해보인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 따로 쓰던 화장품도 같이 쓰게 될 것이고, 여러 개를 바르는 화장품 갯수가 줄여나갈 것이고, 점점 옷도 간소화되겠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약도 결국엔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주게 되지 않을까(약 무게만 2키로는 족히 될 것 같다.) 여전히 아이러니한 것은 이미 방콕에서 일주일 간 여행을 해보니 옷이 참 없는 것 같은데도, 짐을 쌀 때보면 옷 무게만 상당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신혼살림을 정리하며 물욕을 버렸다 생각했건만 이렇게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무거운 짐을 한 달간 들지 않아도 되는 ‘한 달 살기’는 그 무게만으로도 백점이다.


여행을 떠나온 지 딱 일주일, 지금까지는 ’두려움’, ‘불안함’은 한 번도 느낄 새 없이 온 마음 다해 이 여행을 즐기고 있다.

돈은 사치할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시간을 사치하고 있는 지금 나는 정말 행복하다. 퇴사와 세계여행이라는 선택을 한 것에 전혀 후회가 없다.

오늘이 우리에겐 가장 젊은 날인데 젊음의 순간을 기록하고 느끼는 시간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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